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assy Jan 15. 2023

엄마 엉덩이의 반창고

이제 좀 쉬엄쉬엄 하셔도 됩니다

3주간의 한국 방문 동안 친정엄마와 두 번 목욕탕을 갔다.  양쪽 무릎 수술 전까진 목욕탕을 가시면 돌아가신 당신의 엄마 같다며 홀로 오신 처음 본 노인들의 등을 찾아다니며 밀어주시곤 하셨던 친정엄마는 이제 자신의 등에 있는 때도 밀어줄 사람이 없다. 짧은 기간이지만 한국에 있는 동안 엄마 등의 때를 밀어 드리기 위해 함께 목욕탕을 향했고 벗은 엄마 몸의 뽀얀 엉덩이 한 귀퉁이에 숨겨진 동그란 스티커 밴드를 보고야 말았다.

"엄마, 이거 뭐야?" 주사 자국을 가리는 밴드임을 확신한 나는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놀란 눈으로 물었고, 엄마는 놀라시며

"뭘 자꾸 알라고 드노?" 언짢은 표정으로 대답하셨다.

그러자 곁에서 누군가 내편이 되어 한마디 부드러운 목소리로 거드다.

"딸이 엄마 걱정돼서 묻는데 왜 그렇게 말씀하세요?"


8년째 해외 사는 우리 가족이 한국을 방문할 때면 최소 3주 정도는 머물다 보니 장소가 늘 문제. 그나마도 한국에서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일도 보면서 편히 머물 수 있는 곳은 친정이다.


팔순의 엄마가 홀로 지내시는 아파트는 25평 정도라 홀로 지내시기에 불편한 점은 없으나 우리 가족과 그에 따른 짐이 추가되면 아파트의 공간을 거의 잠식해 버린다. 시골에 계시는 시어머니는 아들이 하루라도 더 자고 가길 간절히 원하시지만 시골에 있으면 바쁜 한국 일정동안 일을 전혀 볼 수 없.


달 정도 임시 거주지를 임대해 볼까도 고민해 봤지만 엄마가 서운해하실까 걱정되고 비용면에서도 쉽지만은 않다. 결국 이번 한국 방문 임시 거주지도 친정으로 정했다.


양쪽 무릎을 수술하신 지 이제 6개월 남짓 지난 엄마는 돌침대를 쓰시는데 집에 침대가 하나뿐이니 우리가 잘 곳이 마땅치 않아 언니에게 고민을 살짝 털어놓으셨나 보다. 언니는 엄마가 편하게 지내시는 게 우선이고 우리는 알아서 잘 머물다 갈 테니 신경 쓰지 마시라고 했단다. 다행이다 싶었다.


한겨울에 방문한 우리는 잘 때마다 무거운 이불을 방바닥에 깔고 일어나면 개어서 장에 넣기를 반복해야 했다. 난 보통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은 해주지 않으려 하는 편인데 엄마는 당신 집이라 그그렇지 않으셨나 보다. 우리가 하면 어렵지도 않고 후딱 해릴 수 있는 일이지만 엄마는 자신이 미리 이불을 깔아 놓으려 애쓰셨다. 허리 아프시다면서 그냥 좀 계시라 해도 자신이 할 수 있는 걸 하는데 못 하라한다고 오히려 나를 나무라신다.


아파트에서 층간소음 문제로 관리실에서 자주 방송을 하는데 그 탓인지 저녁이 되면 전보다 더 조심히 행동하셨다. 주로 어린아이들의 쿵쿵거리는 소리가 문제일 텐데 밤 9시 이후에 사람의 움직임 때문에 나는 소리들에 너무 예민하게 신경 쓰셨다. 그동안 저녁 9시면 주무시며 조용히 사시다가 밤늦은 시각에도 여전히 깨어있는 우리가 신경 쓰이게 해 드린 건지도 모르겠다. 사실 이번에 유독 한국의 아파트 생활이 불편하고 성가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도네시아로 이주하기 전까진 아파트가 아닌 다른 곳에서 산다는 건 위험천만이고 불편하기 짝이 없을 거라 확신했지만 막상 주택에 살아보니 불편한 점도 물론 많지만 위아래층 신경 쓰지 않고 집안에서 농구공을 튀길 수도 있고, 태권도도 할 수 있으며, 쿵쿵거리며 댄스도 할 수 있다는 많은 장점들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밤에 내는 어떤 소리 외에도 생활습관도 좀 문제가 되었다. 아침식사는 그냥 야채나 과일로 넘기기도 하는 우리와 달리 반드시 곡기로 시작하고 혈압약을 드시는 엄마는 우리의 조금 무질서한 모습이 불편하셨을 것이다. 아침에 찬거리가 준비되면 밥을 푸로 가셨는데 전기 압력 밥솥의 무게 탓에 바닥에  조그만 낮은 상을 두고 그 위에 올려두다 보니 주걱질 할 때마다 허리를 숙이셔야 했다.


그냥 "밥 퍼와라" 하시면 될걸 잠시 다른 일을 하는 동안 당신이 가서 밥을 푸시는 거다. 나는 지금 허리가 많이 좋지 않으신데 왜 자꾸 허리에 무리를 주냐며 타박을 했고 밥솥의 위치를 높은 곳으로 좀 바꾸자고 말을 했지만 엄마 나름의 안 되는 이유들이 있으셨다. 엄마의 살림이기에 내가 마냥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었고 답답함만 계속 쌓여갔다.


어쨌든 엄마는 계속 자신의 방식대로 집안일을 처리하고 싶어 하셨고 내가 돕더라도 다시 정리하시기를 반복하셨다. 그러다 보니 홀로 계실 때보다 몸을 더 많이 움직이게 되고 몸살이 날 것 같으셨는지 내 잔소리를 피해 혼자 작은 동네병원을 들러 엉덩이주사를 한 대 맞고 오신 것이다. 


주사 자국을 본 나는 기분이 좋지 않았고 괜스레 나 때문에 진통제 같은 걸 맞고 오신 게 아닌가 싶어 다음엔 엄마집에 오지 말아야 되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또 그건 아니라며 다른 곳은 더 불편할 거라며 다음에도 꼭 엄마집으로 오라 하신다. 팔십 평생 힘든 일을 많이 하시면서 살아오셨고 이젠 좀 쉬엄쉬엄 하셔도 될 텐데 왜 일을 쉬질 못하시는 건지.


엄마는 자신이 양쪽 무릎 수술 후 조심해야 하는 행동들 (예를 바닥에 주저앉거나 무릎을 쓰는 일) 때문에 그동안 걱정과 두려움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오신 모양이다. 집안일은 맘에 들게 처리해야겠고 무릎은 조심해야 하니 허리를 꺾어서 낮은 곳의 일들을 처리하셨다. 엄마보다 30년이나 젊은 나도 그런 자세로 일을 하면 힘든데 허리가 안 좋으신 분이 그런 자세를 한동안 유지하신 채 일을 하시니 너무 걱정이 되었다. 그래봤자 그 걱정의 말들은 모두 잔소리로 받아들여졌고 우리 모녀는 내내 신경전을 어갔다.


인도네시아로 복귀하는 날엔 공항까지 마중 나오셨는데 뒷짐 진 자세로 지팡이도 없이 혼자 힘으로 걸어 따라오셨다. 내가 곁에서 부축이라도 할라치면 괜찮다시며 뿌리치셨다. 나이 들어 병약해짐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시는 모습이 씁쓸하고 쓸쓸해 보였다.


누구나 늙고 누구나 힘이 없어진다. 그리고 누구나 자신의 약한 모습을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번에 우리와 함께 지내는 동안 사람 사는 것 같아 좋다고는 하셨지만 자신의 정해진 하루 일과가 망가져 기분이 이상하다고도 하셨다. 이제 우리가 떠나고 나면 또 홀로 어떤 일상으로 하루를 채워갈지 미리 고민하시다 특별 새벽 기도를 참석하시기로 결정하셨고 일주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 다섯 시에 차를 타고 교회를 향하시고 집에 돌아오시면 아침 식사를 하시고 약을 드시고 성경을 읽으신다고 하셨다.


팔십 평생 일에 파묻혀 자신을 돌볼 겨를도 없이 사신 엄마의 지금 감정이 어떠하실지 가늠하기 조차 어렵다.






작가의 이전글 대중목욕탕에 경찰이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