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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ssy Jan 26. 2023

싱글벙글 도서관 사서

8년 만에 도서관 카드가 생겼다

한국을 떠난 지 8년. 그러니까 8년 전까지는 집 다음으로 많이 가는 곳이 도서관이었다. 도서관으로부터 다독상도 받았다. 한주도 빠지지 않고 네 명의 가족 구성원 대출가능 도서를 모조리 빌려서 집으로 갖고 왔으니 그럴 만도 하다. 론 대부분 아이들용 도서였다.


인도네시아로 이주하면서 제일 힘들었던 점 중 하나는 가 이용할 수 있는 도서관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인도네시아에도 국립 도서관이 있고 학교마다 아이들이  도서관도 있지만 내가 이용할 수 있는 곳은 아니다. 다행히 전에 살던 동네 집 근처에 한인교회에 작은 도서관을 운영해 신간은 아니지만 오래된 책이라도 가서 빌려 읽 수 있는 행운을 누리긴 했.


새로운 동네로 사한 지 2년 반, 여기도 한인교회가 있고 책도 빌릴 수 있지만 차를 타고 한 시간 정도 가야 하니 선뜻 가기가 쉽지 않다. 마음이 아직 닿지 않아서인지도 모르겠다.


2022년 12월 중순, 추운 한국의 날씨에도 체험 삼아 작은 아이와 걸어서 40분 정도 거리의 도서관을 다녀왔다. 한국은 인도가 낙 잘되어 있으니 운동삼아 걷기에 너무 좋다. 추운 날씨도 몸을 움직이면 열이 나니 오히려 더운 것보단 걷는데 도움이 된다. 더운 곳에 사는 나에게 추위가 감사하게 느껴져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걷는 동안 아이가 조금 투덜거리긴 했지만 우리는 도서관에 잘 도착했고 이방인 아닌 이방인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보려 했다. 우선 도서관증을 만들어야 했다. 안내하는 곳에 사서로 보이는 분이 계셨다. 얼른 거기로 가서 여러 가지 문의를 했다. 그분은 몸이 좀 불편하셔서 온몸을 꼬아가며 설명을 하셨고 발음도 정확히 알아듣기 어려웠지만 내내 싱글벙글 웃는 미소로 기분을 좋게 해 주셨다. 루종일이라도 대화를 하고 싶게 하는 미소였다.


그분을 보면서 내 고등학교 친구 미정이가 떠올랐다. 미정이도 어릴 때 소아마비를 앓아 신체의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웠지만 성실하고 머리도 좋아 공무원이 되었다는 소식은 들었다. 성격은 또 얼마나 밝은지.. 하지만 서로 사느라 바빠 연락이 끊긴 지 어느새 20년이 훨씬 넘어버렸다. 갑자기 그 친구가 너무 보고 싶어 졌지만 이젠 연락할 방법이 없다.


친절한 사서 덕분에 우리는 도서증도 만들고 여러 가지 필요한 정보도 많이 들을 수 있어서 참 즐거웠다. 아이와 나는 잠시 앉아 책을 읽었는데 따뜻한 실내온도에 내가 잠시 졸았나 보다. 아이가 그 찰나를 놓치지 않고 사진으로 남겨 나를 놀린다. 도서관에서 졸음이 온 적은 정말 처음이다.


다음 날도 도서관을 들다. 마칠 시각이 되어 우리는 빌릴 책을 정리했다. 아이가 다음 학기에 문학 시간에 배울 <멕베스>를 한번 볼까 하고 찾아봤는데 어디 있는지 찾기가 어려웠다. 컴퓨터로 검색도 해 보고 열심히 찾아봤지만 쉽지가 않아 대출 담당하는 직원으로 보이는 분께 문의를 했는데 너무 바쁜지 무표정인(살짝 화난 표정 같았다) 얼굴로

"청소년 도서 코너로 가보세요" 했다. 전 날의 생글생글 웃으며 설명해 주시던 그 분과 너무 달라 살짝 불편했지만 바쁘면 그럴 수 있지 싶어 청소년 코너로 가서 다시 찾아봤다. 역시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아 부담 가득이었지만 할 수 없이 정신없이 바빠 보이는 사서를 향해 다시 걸음을 옮겼다.

"죄송한데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 않아서요.."

"잠시만요." 역시 무표정한 얼굴로 청소년코너로 가더니 바닥 쪽에 꽂혀있는 책을 꺼내주고는 쌩하니 자리를 떠난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받을 짬도 없을 정도로 너무 많이 바쁜 듯했다. 그래도 얼굴의 너무 경직된 근육은 조금만 풀어주지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어쨌거나 우리는 도서관증도 만들었고 신간도서도 몇 권이나 대출했다. 기분이 너무 좋았다. 한국은 정말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것들이 참 많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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