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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ssy Feb 15. 2023

역대급 기내 소란 사건

기차 안인지 비행기 안인지

한 달 전쯤 비행기에서 일어난 일이다.


3주간의 한국일정을 마치고 인도네시아로 돌아왔다. A 항공이 예약되어 있었는데 인도네시아에서 한국으로 갈 때 기내식이 과일마저 하나도 먹을 수 없을 정도로 최악이었기에 인도네시아로 돌아가는 장시간의 비행을 위해 인천공항에서 비빔밥으로 미리 든든히 배를 채워뒀다.


탑승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고 나와 작은 딸은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인도네시아발 한국행 비행에서는 식사가 엉망이었어도 최신 영화들이 많아 좋았는데 돌아가는 비행기에선 영화도 별로 없고 시스템도 너무 구식이었다. 로나 전까진 기내 종이 신문도 넉넉히 구비하고 있어 덥고 습한 인도네시아 기후에 에서 요긴하게 쓸 수 있었는데 이제 그것마저 사라졌다.


우리 좌석은 중간쯤에서 끝자리로 화장실 바로 앞이었다. 여러 가지로 살짝 불편한 마음으로 기내에 올랐는데 주변에 앉은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뭔가 심상치 않다. 두 세 가족 정도가 합쳐진 듯했는데 아주 옛날 중간급 기차 여행을 떠올리게 하는 모습이다. 타기 시작할 때부터 일반적이지 않음을 승무원이 눈치챘는지 이륙준비 때부터 그 가족 주변 손님들께 귀마개(earplug)가 필요하시겠냐고 묻는다. 아이 것과 내 것 두 세트를 받아놨다.


아이들은 왔다 갔다 하고 부모와 내내 실랑이를 했다. 잠시 후 곧 이륙한다는 기내방송이 나왔고 그 가족도 강제 착석하고 벨트를 매야했다. 잠시 후 안전벨트 등이 꺼지고 움직임이 허용되었고 그들은 즉시 일어나 다니기 시작했다. 간식은 또 뭘 그리 많이 챙겨 왔는지 여기저기 다니면서 나눠 먹는 모습이 비행기 안이 맞긴 한 건지 헷갈릴 정도였다. 계속 먹어대서 그런지 화장실도 돌아가며 자주 다닌다. 여간 거슬리는 게 아니다. 자주 비행기를 타고 다니는 편이지만 이런 광경은 인도네시아 국내선에서도 보기 드문 모습이다.


대각선 앞자리에 앉은 남자 손님이 수면안대를 승무원에게 요청해서 받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도 바로 하나 요청했다. 근데 아무리 기다려도 갖다 줄 생각이 없다.


앞자리 그 소란스러운 가족 아이가 무슨 탈이 났나 보다. 승무원들의 모습이 더 부산스러워 보인다. 아이가 토를 한 모양이다. 아이가 토를 한건 그럴 수 있는데 뒤처리하는 부모는 집에서 보모에게 전적으로 맡겨서 그런지 육아 무능 그 자체였다. 기류도 몇 번이나 있었는데 좌석벨트 불이 들어와도 즉시 앉지 않아 승무원이 와서 주의를 줄 정도였다.


기분도 꿀꿀하고 스크린도 정지되어 있고 뭐 할 게 없다. 잠도 잘 오지 않았다. 그때쯤 기내식이 제공되었다. 한국행 때와 같은 기종이라 갈 때 기내식 상태와 비슷할 거라는 생각에 기대는 아예 접어뒀다. 그래도 맛이나 보자 싶어 두 가지 메뉴를 아이와 각각 하나씩 시켰고 살짝 열어 먹어 보았다. 눈이 번쩍 뜨였다. 어라, 너무 맛있다!


인도네시아에서 출발할 때와 한국에서 출발할 때 제공되는 기내식 업체가 달라서 그런지 맛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너무 기대를 하지 않아 만족감에 상승효과가 가해졌는지도 모르겠지만 최고의 기내식이었다. 과일도 얼마나 달고 맛있는지 아이와 나는 감탄을 자아내며 용기들을 말끔하게 비워냈다. 역대급 나쁜 기내환경을 역대급 맛난 기내식이 모두 정화시켜 버렸다.


가만 생각하니 먹는 거 하나로 치유받는 우리 모습이 너무 우스스러워 딸아이와 나는 서로 마주 보며 킥킥댔다. 그렇게 맛나게 먹고 부른 배를 두드리며 주변을 살피니 스크린으로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화질이 많이 나쁘긴 했지만 다시 영화를 볼 수 있게 되었다. 한참 영화를 보는 중 다시 맛있는 냄새가 코끝을 솔솔 간지럽혀 주변을 살피니 따뜻한 피자 조각을 제공하는 중이다. 오~ 피자조각도 너무 맛있었다. 기내식은 그야말로 그냥 대충 먹어도 그만인 식사인데 이번엔 밥도 간식도 정말 최고였다. 비행기를 타면서 이렇게 맛있게 먹은 건 처음이다 싶을 정도였다.


대충 서비스를 마치고 덜 부산한 모습으로 승무원이 지나가길래 기대없이 다시 한번 수면안대를 부탁해 보았다. 바로 갖다 주면서 귀에 대고 소곤소곤 양해를 구하는 게 아닌가.

"아.. 손님, 아까 말씀하셨는데 앞쪽 손님들에게 문제가 생겨 너무 정신없어 깜빡했네요. 정말 죄송합니다."라고. 

'아, 그랬구나..' 괜스레 죄송한 마음까지 들었다.


이렇게 최악이 될뻔한 비행을 최고가 되게 해준 기내식과 승무원의 친절에 감사하며 다시 일상으로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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