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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ssy Feb 18. 2023

중증 척추측만이라니..

병원도 가끔은 가는 게 맞나 보다

나는 병원 가기를 극도로 싫어한다. 그러다 보니 갔다 하면 중증일 때가 많다. 나와는 달리 작은 아이는 작은 이상에도 병원을 가보고 체크를 해보려 하는 편이다. 하지만 지금 사는 곳이 인도네시아에서도 수도 자카르타에서 떨어진 외곽에 위치하다 보니 병원을 가기가 더 불편하다.


지난해 초에 작은 아이의 등이 불균형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식탁에 앉아 밥을 먹고 있는 아이의 오른쪽 등이 왼쪽보다 조금 더 솟아 있다. 아이를 너무나도 아끼나 섬세한 감각이 떨어지는 남편은 자기 눈에 전혀 이상이 없어 보이니 너무 예민하게 굴지 말라고 했다.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냥 등을 똑바로 곧게 세우고 앉으라고 잔소리 조금 더 하는 것 밖에 없었다. 그래봤자 아이는 잠시 등을 곧게 세웠다가 다시 구부정해지기 일쑤였지만 물론 짜증과 함께.


지난해는 3월에도 한국을 방문했으나 여전히 코로나로 분위기가 폐쇄적인 데다 아이는 온라인으로 정상수업을 하 있었고 한국 방문 때마다 그렇지만 일정이 늘 바빠 병원을 가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이번 12월 한국 방문 때 아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엄마, 어쨌거나 병원 가서 확인은 해보자. 혹시 이상이 있는 건 아닌지.."

말이 나온 김에 동네 정형외과를 방문했고 엑스레이를 찍었다. 외관상 그렇게 심하게 이상하진 않았는데 엑스레이 결과는 중증 척추측만으로 나왔다.


컴퓨터 모니터에 띄워진 아이의 척추사진 두 곳에 포인트를 찍어 각도를 알아보는데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달리 중증이라며 의사도 놀란 표정이다. 바로 소견서를 써 주며 대학병원을 가보라고 추천해 주셨다. <대학병원>이란 단어에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아직 단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인데 나의 방관적 태도로 이렇게까지 돼버린 게 아닌가 하는 자책이 들었다.


동네병원을 나서면서 바로 대학병원에 예약을 위한 전화를 걸었지만 일주일 후가 제일 빠른 날짜였다.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리는 방법 외엔 달리 수가 없었다.


일주일이 지나고, 추운 겨울에 마음까지 얼어붙은 채 대학병원으로 향했다. 척추측만은 대부분 원인불명의 특발성이고 40도가 넘어가면 수술을 고려해 본다고 했다. 엑스레이 결과를 본 교수님 역시 보기보다 각이 너무 심하게 틀어졌다며 이것저것 상세한 설명과 더불어 몇 가지 당부를 해주셨다.


(1) 척추측만은 대부분 원인을 알 수 없는 특발성이고 아이의 평소 자세와 상관없이 발생하니 아이를 나무라지 말 것.

(2) 운동요법이 크게 의미 없으니 거기에 너무 매달리지 말 것. 물론 스트레칭을 해주면 좋지만 아이를 너무 닦달해서 스트레스를 주지 말 것.

(3) 보조기는 몸 외부에서 압박을 가해서 척추가 더 이상 휘지 않게 도와주는 것이고 교정효과는 거의 없다고 본다. 하지만 성장기 아이들은 성장과 동시에 척추가 계속 틀어질 가능성이 높으니 최대한 장시간(하루 20시간 이상) 착용을 권장함.

(4) 몸을 꽉 조아주는 보조기의 특성상 샤워 후 아이 몸을 잘 마사지해서 자주 풀어줄 것.


그로부터 일주일 후 척추측만증 보조기를 받았다. 120만 원이나 하는 보조기는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마치 플라스틱 코르셋 같았다. 착용하고 집으로 오는 길에 아이는 숨을 쉬기가 너무 힘들다고 했다. 보조기는 호흡 시 늘어나고 줄어드는 신체기관의 변화에 상관없이 그저 같은 모형으로 온몸을 감싼 채 붙잡아 두고 있으니 힘들 수밖에.


의사도 적응하는데 최소 일주일 최대 한 달까지 걸리기도 한다고 했다. 아이가 힘드니 짜증을 많이 낼 것이고 그렇더라도 이해하고 포용하며 슬기롭게 대처할 것을 신신당부하셨다.


이미 자신의 상태를 감지한 아이는 감사하게도 힘들지만 스스로 최대한 착용하고 있으려 노력했다. 우리가 사는 인도네시아는 사시사철 더우니 적응만큼은 추운 한국에서 하는 걸 목표로 가능한 한 샤워할 때와 식사 때 외엔 벗지 않으려 애썼다.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선 공항에서 신체검사도 필요한데 이런저런 예외를 두면 보조기를 제대로 쓰지 못할 것 같아 의논 끝에 그냥 쓰고 비행기를 타기로 했고 아무 문제 없이 통과도 잘했다.


더운 나라의 학교생활도 많이 걱정했는데 다행히 얇은 여름교복 안에 보조기를 착용하고도 불평 없이 학교를 잘 다니고 있다. 오히려 집에 오면 긴장을 풀고 잠시 벗어놓는다. 


보조기가 교정기가 아닌 이유는 교정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워서인데 그래도 이렇게 각고의 노력을 하고 있으니 조금이라도 교정되는 기적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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