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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ssy Feb 19. 2023

파파야가 열렸어요!

먹고 남은 씨앗을 뿌리기만 했을 뿐인데.,

집 앞 조그만 공터에 심심풀이로 먹고 남은 파파야 씨앗을 뿌려봤다. 흙을 파내고 씨앗을 심고 다시 흙으로 덮어두는 수고도 하지 않았다. 그냥 흙 위에 씨앗을 던지고 내버려 뒀을 뿐이다.


까만 씨앗은 스스로 땅속에 몸을 숨기고 뿌리를 내리고 작은 새순을 만들어 내는 기적을 보이더니 급기야 몇 달 새 이렇게 한 그루의 나무가 돼버렸다. 그 조그만 씨앗 속에 저렇게 커다란 나무가 숨겨져 있다는 사실이 정말 얼마나 신기하고 놀라운지. 한국 아파트에서 살 땐 씨앗을 심어본 적이 없었기에 쑥쑥 자라는 생명의 대단한 힘과 에너지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이젠 수박, 포도, 방울토마토 심지어 딸기를 먹을 때도 전과 다르게 씨앗이 눈에 들어온다. 씨앗 속에 이렇게 대단한 한 그루의 나무가 들어있는데 그냥 버리기가 마치 살아있는 생명을 하찮게 여기는 것처럼 너무 안타깝다. 그렇다고 마냥 다 키울 공간도 없고 가꿀 자신도 없다. 일을 먹을 때마다 전에 없던 딜레마에 빠진다.


나는 식물을 그렇게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다. 친정엄마가 아파트 베란다에 온갖 화초들을 갖다 놓고 영양제도 주고 물도 주고 이파리 하나하나 닦으 대화를 주고받는 모습을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었는데 이제 뭔가 그 뜻을 알 것 같다. 반갑다고 꼬리를 흔들어 대지도 않고 똘망똘망한 눈망울로 나를 바라보지도 않지만 식물에게서도 동물 못지않게 명의 숨결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파파야가 익으면 단맛이 나긴 할지는 모르겠다. 최소한 일 년은 넘어야 맛이 난다는데 달지 않음 또 어떤가 그저 멋지게 커가고 자신의 아리따운 꽃망울과 열매로 생명의 위대함을 보여주며 사랑과 감사를 느끼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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