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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ssy Mar 25. 2023

다단계에 걸려들다

가슴 시린 옛 경험이다.

다단계 관련 글을 읽고 나도 이십여 년 전으로 돌아가 당시 겪었던 일에 대해 써보려 한다.


대학교 4학년 때이다. 영문과를 다니던 나는 영어 회화는 물론이고 토익, 일반상식 등 그 당시 취직을 위해 필요한 공부를 부지런히 하고 있었다. 과방에 있던 취업자료도 하나하나 면밀히 검토해 가며 어떤 준비들이 필요한지 내 성향은 어떤 곳이 더 어울릴지 등등 알아가며 정말 열심히 했다. 학교 방송국에서 운영하던 영어방송 진행도 하며 성실히 살았다. 협은 합격했지만 여자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 한국 회사보다는 외국계 회사로 가닥을 잡고 계속 준비하고 있었.


대학교 4학년인데도 나는 여전히 두꺼운 안경을 쓰고 다녔다. 학교 가려고 버스를 기다리다 우연히 중. 고등학교 때 친구들을 만나면 꾸미지도 않고 다니는 촌스런 내 모습에 핀잔을 주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고등학교 때 친구로 부터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학교 다닐 때 친하게 어울려 다닌 친구는 아닌데 얼굴이 어렴풋이 기억나서 앨범을 뒤져 보기까지 했다. 버스 정류소에서 나를 봤단다. "너, 하나도 안 변했더라. 학교는 재미있니? 취업준비는 잘 돼 가고?" 뭐 친한 아이도 아니고 평소 연락하던 아이도 아니어서 그냥 대충 얼버무리고 전화를 끊었다. 그 후로 조금 자주 전화가 왔다. 이상했다.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가 선배나 동기들과 차를 마시러 가면  친구 이야기를 꺼냈다. 친한적 없는 친군데 요즘 자주 전화를 걸어온다고. 다들 거기에 대해서 살짝 의아해하기만 했지 아무도 조심하라는 말을 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 누구도 다단계일 거라 예측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또 그 아이로부터 전화가 왔다. "너도 남들처럼 공무원 공부나 하고 있는 거 아냐?" 나는 살짝 화가 났다. 말투부터.. 공무원 준비가 나쁜 게 아니라 남들처럼 이라던지 뭐 좀 비아냥대는 말투가 기분 나빠 "아니야. 난 외국 회사에 취업할 거야.", "아, 영어를 잘하나 보다. 부럽다야." 그렇게 몇 마디 더 주고받고는 전화를 끊었다. 바로 이 대목에서 내가 미끼를 문 셈이었다.

 

그로부터 일주일 정도 후였나? 또 전화가 걸려왔다. 살짝 다급하기도 하고 활기에 찬 목소리다.

"우리 삼촌이 외국 회사에서 일하는데 급히 사람을 구한대. 원래 자리가 잘 안 나는데, 진짜 운 좋게 한 자리가 난 거야. 너는 영어를 잘하니까 꼭 될 거야. 일단 일주일 정도 연수를 해야 하니까 엄마께 말씀 잘 드리고 일주일 지낼 짐 챙겨서 내일 당장 여기로 와라. 내가 마중 나가 있을게."

학과방 취업 책자에서 외국회사는 대부분 상시 채용이라는 걸 보아온 나는 갑자기 생긴 기회에 눈이 멀어 친구의 말대로 다음날 즉시 가방을 꾸려 그곳으로 갔다


친구는 정장을 입고 있었다. 그러고는 연수를 한다는 곳으로 나를 데려갔는데, 현관문이 열리고 들어가니 한 손에 두꺼운 노트를 들고 정장을 입은 젊은 남녀들이 아주 많았다. 얼떨떨했다. 외국인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화이트보드가 있는 어느 작은 교실 같은 곳으로 안내되었는데, 나처럼 '연수'를 받으러 온 사람들이 열명 정도 되었다. 벽 쪽에는 사람들이 여럿 둘러 서 있다. 한 손엔 모두 두꺼운 까만 노트가 들려있다.


강사로 보이는 사람이 한 명 들어오자 벽 쪽에 둘러 서 있던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노트를 두드리며 큰 박수로 환호했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드디어 강사가 화이트보드에 보드마카로 적어 내려간다. <자석요>라는 글자가 써지자 머리에 번개라도 맞은 듯 아파왔고 열이 나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 어쩌다 여기에 와 있는 건지 어지럽고, 걱정되고, 두렵기만 했다. 약속한 연수기간 7일은 꼭 채워야 한단다. 폭포같이 눈물이 쏟아졌다. 사람들이 달랜다. 내가 숨쉬기가 힘들어 창쪽을 바라보니 여기 높은 곳이라 뛰어내리면 죽는단다. 무서웠다.


첫날의 연수(?)가 끝나고 주변사람들의 감시하에 건물밖에 대기 중인 봉고차에 올라탔다. 아무리 틈을 찾아봐도 화장실까지 따라붙으니 탈출구가 없다. 그렇게 봉고차를 타고 다음날 또 연수(?)다. 자포자기 한 마음으로 멍하니 앉아 설명을 들었다. 요는, 고층 아파트에 사는 우리는 땅으로부터의 좋은 에너지를 받지 못해서 건강이 점점 나빠지고 있으니 이 <자석요>로 고층에서도 일층에와 같 땅의 기운을 받아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유명 연예인이 수억을 받고 써보지도 않은 물건을 대본에 충실해 떠들어대는 과장 광고가 아닌 우리가 직접 써 보고 그 느낌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며 제대로 된 물건값을 지불하합리적인 방식이라며 유통구조를 설명한다. 오만가지 생각이 오가는 와중에 뭐 틀린 말은 또 하나 없었다.  


거기엔 소위 명문대생들도 많았고, 나보다 잘 난 사람들 천지였다. 다들 뭔지는 몰라도 열심이었다. 중앙에 대강당 같은 곳에선 전체 미팅이 열렸고, 사람들과 서로 활기차게 인사도 나눈다. 무슨 이런 세상이 다 있을까. 약간 종교 모임 같기도 했다. 내가 여태껏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 한 세상이다. 지금생각해 보면 그런 식으로 이단에도 빠지나 싶다.


임용을 포기하고 온 사람, 나처럼 농협을 합격하고도 여기에 와 있는 사람(자의가 아니었는데, 그곳 사람들은 어이없게도 내가 농협 같은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이곳을 선택해서 와 있다고 떠들어 댔다. 황당했다), 좋은 스펙들을 가졌는데도, 모두들 여기서 보다 나은 꿈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했다. 일주일 정도를 들어보니 뭔가 무릉도원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강의실과 숙소를 오가며 혼란에 빠진 내 모습이 어찌 집에 보고 되었나 보다. 집에서 할머니가 위독하시다는 전화가 왔다. 자연스럽게 탈출할 수 있는 기회라 티 나지 않게 대충 짐을 챙겨서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으며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돌아와 보니 엄마가 누구에게 들었는지 눈치를 채고 가족이 작전을 짠 거였다. 그렇게 나의 황당한, 아니 어이없는 너무 가슴 시린 경험은 종지부를 찍었고  충격으로 한 학기 휴학하고 다시 복학해 대학생활을 마무리했다.


사실 그 당시 일은 기억하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이런 바보 같은 나의 경험을 털어놓는 이유는, 우리 딸을 비롯한 혹시 이 글을 읽을지 모르는 모든 청년들을 위해서다. 졸업할 시기에 취업이란 참으로 무거운 짐이다. 20여 년 전 그때도, 지금도 취준생의 마음 조급다. 세상은 넓고 악마의 유혹은 우리의 빈틈을 노린다. 세상에 공짜란 있을 수 없고, 손쉽게 돈 버는 일도 있을 수 없다. 한 일주일만 반복해서 들어보면 <설득>당하기는 너무 쉽다.


유혹의 손길은 너무 많다. 뭔가 의심스러운 일이 생기면 주변의 믿을 만한 어른들과 상의해야 한다. 물론 나의 경우는 아쉽게도, 부지런히 여기저기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사라지기 전까진 아무도 나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아차려 주는 사람이 없었지만..


바보들만 그런 곳에 가는 건 절대 아니다. 지금도 사라지지 않고 성행하고 있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철저히 짜인 대본으로 여럿이 한 팀을 이뤄 미끼를 던져가며 사람들을 낚는다. 그런데 더 무서운 건 그들은 그들이 하는 일들이 잘 못 되었다고 생각을 하지 않는 점이다. 마치 사이비 종교와도 같다.


사람들의 잘못된 선입견 때문에 처음엔 거짓말을 해서라도, 소위 <선의의 거짓말>을 동원해서라도 그들을 이끌어 와야 한다고 말하며 시작하는 것들은 전부 사기다. 막상 가보니 <거짓말이었더라>를 깨달았으면 빨리 빠져나가야 한다. 물들지 않을 수 없다. 처음엔 너무 두려울 수 있지만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빠져나갈 구멍이 있다고 하지 않는가. 그들이 일주일 약속을 지키라 큰소리쳐도 처음부터 거짓말이었음을 말하며 바로 빠져나와야 한다. 무조건!!


타인을 의심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좋은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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