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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ssy Mar 22. 2023

가르치는 일은 쉽지 않아

혼란스럽다

한 달 전부터 새로운 아이를 하나 가르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영어가 많이 서툴다. 5~6학년 정도되는 남자아이인데 기본적인 단어도 잘 모르다 보니 영어로만 이루어지는 학교수업 및 생활에 많은 문제가 생긴 듯하다.


나와 이렇게 인연이 되었으니 최선을 다하고 싶었고 지금도 그렇다. 학교 수업이 도저히 불가능해서 두 달가량 쉬게 되었다고 했다. 아주 기초적인 단어도 이해하지 못하고 들어간 국제학교에서 얼마나 답답했을까 안타까웠다. 그 답답한 마음을 나한테라도 터놓을 수 있도록 친근하게 대했다. 아이는 자신의 힘든 점을 조금씩 털어놓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곧 다시 학교를 들어가야 하고 교과서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라 아이 수준보다 좀 어렵지만 억지로 조금씩 가르쳐야 했다. 오늘은 과학책에 있는 단어를 위주로 정리하고 뜻을 이해하고 발음할 수 있도록 지도했다.


나와 만난 지 이제 한 달 정도 되어가는데 어려운 내용을 다뤄서 그런지 오늘은 아이가 폭주한다. 정리된 단어를 읽게 하니 내가 하라고 한 단어 말고 다른 단어를 읽는다. 마치 나를 화나게 하려고 작정이나 한 듯이. 영어단어를 읽으라고 하니 고장 난 CD처럼 한국어 뜻을 무한 반복한다. 나도 가르친 경력이 십수 년이고 그동안 숱한 아이들을 봐 왔기에 당황하지 않고 태연하게 대처했다.


"난 시간이 많아. 이 단어를 읽어. 그리고 시키는 걸 할 때까지 기다릴 거야." 아이를 가르칠 때 기싸움에서 지면 더 이상 수업은 불가능하다. 화가 났지만 포커페이스를 하고 '그래봤자 난 어떤 자극도 받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아이도 태연한 내 모습에 당황했는지 한동안 버티더니 다시 읽으라고 한 단어를 읽는다. 단어를 다 읽으면 마친다고 한 말을 기억했는지 다 읽은 후 가방을 챙겨서 인사도 없이 떠난다.


아이가 떠나는 뒷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너무 아팠다. 이 아이에게 나는 마지막 한가닥 동아줄인데 아이는 대체 왜 저러는 건지. 이번에 다시 학교 가는 걸 실패하면 아빠만 두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수도 있는데 사춘기라 그런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다. 엄마는 마음이 너무 여리며 착한 사람이고 여동생도 학교에 적응해서 아주 잘 다니고 있다. 자기만 노력하면 이 가정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왜 이렇게 엇나가려 하는 건지 모르겠다.


당장 다음 주부터 학교를 들어가야 되는데 너무 걱정되고 답답하다. 그래, 마음을 비워야지.. 내가 이렇게 온 마음을 다해 지도하고 이끌어본들 본인이 싫으면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내려놓자. 애태우지도 말자. 그냥 무탈하게 잘 헤쳐나가도록 기도하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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