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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ssy Nov 13. 2023

색다른 새벽풍경

얼핏보면 고요한데 자세히 보면 바쁜

어젯밤에 비가 엄청 쏟아졌다. 우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모양이다. 더위는 조금 꺾이니 좋은데 습도가 너무 높아지니 쾌적하진 않다. 그나저나 요즘 들어 유독 더워서 퍼붓는 비가 싫지만은 않다.


새벽에(인도네시아는 새벽 5시면 이미 환하다) 조금이라도 걷기 위해 옷을 갈아입고 양말과 운동화도 신고 현관문을 열었다. 그런데 이게 뭔가 불을 보고 모여드는 벌레들이 기어 다니고 떨어진 날개들도 여기저기 떨어져 있다. 어젯밤 비 온후 벌레들이 등불을 따라 모여들었나 보다.


사실 한 두 마리면 그냥 괜찮을 만도 한데 이 벌레들은 떼로 다니기에 그냥 징그럽다. 하루살이처럼 어느 순간 대거 출몰했다 사라진다. 함께 걷는 언니는 혐오감을 느끼기 싫어서 인지 <팅커벨>이란 이쁜 이름을 붙여줬다.


벌레 몸통 길이 1센티가량 너비 0.3센티에 날개는 2센티 길이 정도로 두 쌍이 있다. 짝을 찾으러 나온건지 바닥에서 짝을 찾으면 스스로 날개를 떼버리고 둘이 마치 한 마리가 된 듯 세로로 길어진 모양으로 바쁘게 걷는다.  


날갯짓하며 사방으로 날아다니는 <팅커벨>들은 고양이들이  두 개의 뒷다리로 점프하고 두 개의 앞다리로 낚아채서 입으로 가져간다. 오늘은 양이들의 단백질 섭취 폭탄이다. 이미 배불리 먹었는지 거들떠보지도 않고 구경만 하는 양이도 몇 있다.


아직 모두 잠든 시각에 단지 내 길은 야단법석이다. 평소 보이지 않던 두꺼비도 몇 마리나 나와서 기어 다니는 <팅커벨>들을 먹어 재끼느라 바쁘다. 두꺼비에 질세라 도마뱀들도 끼어든다. 배가 너무 부른 도마뱀들은 몸이 무거운 나머지 미처 지나가는 차량을 피하지 못하고 사고를 당해 이승에 하직 인사를 하기도 한다.


새벽에 단지 전체를 순찰하듯 여러 바퀴 걸었는데 길마다 모습이 좀 다르다. 양이들이 많이 모여있는 곳은 <팅커벨>이 날개만 낙엽처럼 남긴 채 모습 보이지 않고 양이들이 없는 길은 사방에 자신의 짝을 찾는지 분주히 걸어 다닌다.


단 하루.. 아니 잠시 날갯짓하기 위해 땅속에서 날아오르는 <팅커벨>들이 징그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대거 출몰한 팅커벨을 먹기 위해 잔치라도 벌어진 양 여기저기서 뛰어다니는 양이들, 바쁘게 걸어 다니며 뚱보가 된 채 계속 먹어 재끼는 두꺼비들, 그리고 누가 이렇게 한 상 차려놨나 하며 바삐 먹다 세상을 떠나기까지 하는 도마뱀들까지..


인간의 세상도 이와 다른 게 뭐 있나 싶기도 하고 온갖 잔상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얼핏 보면 평화로운 새벽 모습이 자세히 들여다보면 얼마나 바쁜 모습인지.. 우주에서 보는 내 모습도 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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