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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ssy Jun 20. 2022

서 호주 끝 퍼스를 다녀오다.

남편의 실업상태에서 가게 된 호주 서부 끝자락에 있는 퍼스.

아무 정보도 없이 일주일 만에 급히 기획한 호주 여행이었다. 남편에게도 아이들에게도 무엇보다 나에게 꼭 필요한 여행이었다.


일주일 만에 온라인으로 비자발급받고 비행기 티켓팅하고 저렴한 숙소 예약하고 짐을 꾸렸다. 아이들도 신이 났다. 4시간 정도 인도네시아 국적기인 가루다를 타고 깨끗한 호주 퍼스 공항에 도착했다.


8월이었으나 호주는 남반구라 계절이 반대였다. 퍼스는 겨울이었지만 한국의 늦가을 날씨 정도였다. 깨끗한 호주 환경은 그야말로 힐링 그 자체였다. 숙소까지 타고 갈 우버를 불렀다. 할아버지 기사가 도착했다. 할아버지 인상은 너무 좋고 친절하고 위트도 넘치는 분이었는데, 킹스파크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며 꼭 가보라고 권해주셨다. 그러나 커브를 돌 때는 몸이 왕창 쏠릴 정도로 속도를 줄이지 않는 모습이 웃기기도 하고 살짝 두렵기도 했다.


도착한 숙소에서 문제가 생겼다. 큰아이가 고등학생이라 소방 안전문제로 매일 호주달러 50불씩 추가로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추가로 돈만 지불하면 네 명이 들어가도 안전해지나 싶었다. 참 웃기는 합리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물도 더 쓰니 추가 경비를 내야 한다고 설명을 했으면 나을 뻔했다. 그런데 우리가 도착한 시각이 저녁이라 환전을 못 한 상태라 지불을 못 하니 여권을 맡기라는 것이었다. 얼떨결에 맡기고 숙소로 올라가니 내내 찝찝했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내려가서 오늘까지 추가 비용을 낼 테니 여권 돌려 달라고 했다. 어젯밤 그 불친절한 여자는 없고 매니저가 있었다. 상황설명을 하고 여권을 돌려받았다. 그 매니저는 어제의 일에 대한 친절한 설명과 사과도 빠뜨리지 않았다. 옆에 있던 동남아인 같아 보이는 직원이 남일 같지 않은지 나에게 와서 아주 친절하게 말해 주었다. 호주나 미국 같은 선진국에선 까다로우니 조심해야 한다고. 사실 싱가포르에서도 이런 일이 생긴 적이 없었던 터라 좀 당황하긴 했다.


퍼스는 무료 버스 켓버스를 운영하고 있었다. 무료니 일단 타고 여기저기 근처 탐방을 했다. 그런데 그 깨끗한 차 안에 무슨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것이었다. 냄새의 원인을 찾아 두리번거려보니 노숙자로 보이는 사람이 몇몇 있었다. 냄새가 너무 심했다. 캣버스가 무료라 그런지 그런 사람들이 더러 이용하는 것 같았다. 유색인종인 우리는 행여 공격이나 받지 않을까 살짝 두려운 마음이 들어 더 조심해야 했다. 시내의 벤치에는 동아시아 사람으로 보이는 노숙자가 누워 있었다. 누가 신고를 했는지 경찰이 와서 데려갔다. 점심을 먹으러 맥도널드를 갔는데 역시나 노숙자가 달팽이처럼 커다란 짐 뭉치를 질질 끌고 들어와서 무언가 주문을 하고 있었다.


숙소 주변에 있는 킹스파크에 갔다. 너무나도 크고 깨끗하고 아름다웠다. 아이들도 잔디 위를 마음껏 뛸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하던지. 내가 지금껏 보았던 어떤 공원과도 비교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완벽 그 자체였다. 중간지점에 쏫아 오르는 분수와 어린 왕자에서 본 바오밥 나무. 아.. 여기서 그냥 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사람들도 하나같이 깔끔하게 차려입은(오히려 정장에 가까웠다) 신사 숙녀 같은 분위기였다. 너무나도 평화로운 분위기에 반해버렸다. 여행 마지막 날 본 킹스파크에서의 일출 또한 잊지 못할 추억이다.

 

인도네시아의 지저분한 동네에 살다가 너무 깨끗한 호주로 오니 정말 그야말로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아이들도 신나 있고 날씨가 좀 추우니 오히려 걸어 다니기에 너무 좋았다. 더운 날씨에 익숙해져 버린 아이들은 너무 춥다고 난리다. 시내를 걸어 다니며 서브웨이에서 빵을 사고 (서브웨이를 처음 가 본 나는 너무 신났다. 빵도 입에 딱 맞았고) 한인마트에서 라면도 사고 (한인 마트에서의 결재는 좀 불편했다. 느긋해서 답답했던 인도네시아와는 달리 조금이라도 지체하면 눈치가 보이는 게 마치 한국에 온 듯했다.) 환전도 하고 여행 안내소도 가 보았다.


여행 안내소에서 만난 직원은 또 얼마나 호탕하던지.. 내가 이것저것 궁금한 부분에 대해 질문을 쏟아내니, 손가락으로 자기 가슴에 있는 이름표를 가리키며 자기도 신참내기라 모르는 게 아직 많으니 이해해 달라며 명랑한 웃음을 크게 웃어 보인다. 첫날 숙소에서 받았던 불편한 맘이 다 날아가는 듯한 시원하기까지 한 웃음이었다. 거기서 찾은 정보들을 기반으로 여행지를 정리했다.


우리는 네 명이 움직이다 보니 두당 계산하는 패키지는 좀 부담스러운 가격이었다. 피나클 사막의 쏟아지는 별들은 보고 싶고 돈은 없고.. 일단 근처의 동물원을 가보기로 했다. 우버를 불렀다. 미얀마에서 왔다고 했다. 영어 발음이 부정확해서 알아듣기 좀 힘들었으나 소통은 되었다. 기사 아저씨는 미얀마의 복잡한 정세와 불안한 미래가 싫어 가족을 모두 데리고 퍼스로 왔다고 했다. 동물원 입장권을 사는 곳엔 또 다른 유쾌한 여자분이 우리를 맞았다. 얼마나 밝은 에너지로 맞아 주시는지 같이 밥이라도 먹으면서 얘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다. 아이들이 몇 살인지 묻고 할인도 해주고 '솔' 톤의 목소리로 따뜻하게 안아주는 그분을 잊을 수가 없다.


동물원 탐방을 마치고 다시 우버에 올라 탄 우리는 피나클에 가보고 싶은 마음을 접을 수가 없어 기사님께 문의해 보았다. 혹시 피나클을 갈 수 있는지.. 벌써 10년 넘게 살고 있지만 자기도 피나클 사막은 가본 적이 없다고 했다. 아저씨도 한 방에 돈을 많이 벌 수 있으니 왕복 비용 미화 200 불 정도로 맞추고 가기로 했다. 가는 길이 너무 좋았다. 미리 준비를 했더라면 렌트를 하는 게 훨씬 나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나클 사막 가는 길은 뻥 뚫려있어 그야말로 시~원했다.


입장료와 주차비는 아저씨가 내주셨다. 피나클에 도착해서 들어가 보니 딴 세상이다. 대자연이 만들어낸 엄청난 황토 모래 위에 석회 돌 조각품들이 여기저기 많이도 널려 있었다. 마치 지구가 아닌 화성이라도 온 게 아닌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어떻게 만들어진 건지.. 마치 누군가 마술이라도 부려놓은 듯 신기 방기 했다.                                           


다행히 비가 오지 않아 해가 지면 곧 별들이 쏟아질 것 같은데, 애들은 슬슬 춥다고 난리다. 바람이 부니 춥긴 추웠다. 드디어 어둠이 깔리고 하늘은 그야말로 대 축제다. 내 평생 보아 온 별들은 별이라 말할 수도 없을 정도였다. 우주가 통째 들어있는 느낌이다. 은하수와 여러 별자리들.. 아.. 어떻게 표현하면 될까.. 누가 장식한 건지 하늘이 온 통 별천지다.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특수 카메라가 아닌 이상 담아지지 않았다. 너무 이쁘다. 너무...


별들을 보고 아쉬움을 뒤로한 채 다시 차에 올라탔다. 한참을 달려도 별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점점 도시의 불빛이 하나둘씩 보인다. 도시의 불빛이 하나 둘 생기면서 하늘의 별들도 하나 둘 사라진다. 아쉽다 너무. 다음을 기약해야지.. 여행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남편도 퍼스는 너무 맘에 드는지 꼭 한번 더 오자고 했다.


이제 늘 웃고 있는 모습이라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동물로 알려진 <쿼카>를 만나러 로트네스트 섬으로 향했다. 화요일이라 뱃삯이 반으로 할인된다는 데 우리는 정가를 주고 티켓을 구매했다. 큰아이가 제일 아쉬워하는 부분이다. 어쨌거나 아름다운 로트네스트 섬으로 향했다. 배 안에서의 크루들도 너무 친절했다. 혹시 모를 뱃멀미에 대비하는 봉투를 원하는 사람들에 한해서 나눠주길래 나도 하나 받았다. 바다가 너무 이쁘고 하늘도 구름도 무엇하나 시비 걸만 한 게 없는 완벽한 대자연이었다.


쿼카와 사진을 찍고 싶어 하는 아이들은 숨은 쿼카를 찾느라 정신이 없다. 드디어 만난 쿼카. 너무 귀엽다. 애들이 경계심도 없고 먹는 거라면 아주 정신을 놓는 모습이다. 작은 편의점 같은 곳엔 쿼카가 들어오지 못하게 동물 안전문 같은걸 만들어 놨는데 실수로 문을 닫지 않고 들어가는 사람들 때문에 여기저기 쿼카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쿼카와 신나게 노는 아이들의 모습이 너무 이쁘다.


돈은 거의 다 써버려서 자전거를 빌리지 못하고 그냥 걸어서 섬을 돌아다녔다. 좀 아쉬웠다. 그래도 걸어 다니면서 이쁜 섬을 구경하는 것도 나쁘진 않았다. 그런데 아직도 풀리지 않은 의문이 있는데, 너무 아름다운 바다 해변 쪽에 거품들이 가득했다. 마치 거대한 누군가 하얀 거품목욕을 하려고 풀어놓은 것처럼 여기저기 거품이 가득했다. 오염일까 대자연 현상일까...


마지막 코스로 애주가 남편이 너무나도 기대하는 프리맨틀 맥주공장을 갔다. 사람들이 가득했다. 거기서 주문받고 맥주를 테이블마다 갖다 주는 키 155 정도밖에 되지 않는 왜소한 체격의 젊은 여자가 두 손 가득 500cc 호프 잔을 10개 정도를 한 번에 가져오고 가져다 놓는다. 마치 서커스를 방불케 하는 모습이다. 다른 사람들도 신기한지 박수를 치며 환호한다. 그녀는 어디서 그런 에너지가 나오는 건지.. 맥주가 들어 있으면 무게도 훨씬 더 나갈 텐데.. 그것도 거의 달리는 속도로 테이블을 겨 다니는 것이다. 남편은 종류별로 작은 잔으로 3.4잔을 시켜서 맛을 본다. 너무 맛나단다. 안주거리도 너무 맛있었다. 여기 오기 직전 해변에서 먹은 기름 범벅의 피쉬 엔 칩스 세트에 돈을 써버린 게 아까웠다.


이제 퍼스 여행도 막바지다. 마지막 날 아침 킹스파크에서 일출을 보고 싶었다. 다들 피곤해해서 그냥 혼자라도 가려니 남편이 부스럭 거리며 일어난다. 일출은 그야말로 찰나라 놓칠까 두려워 빠른 걸음으로 올라갔다. 다행히 아직은 어두웠다.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드디어 하늘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장관이다. 피나클에서의 별 잔치 다음으로 최고다. 매 분 하늘의 색이 바뀌고 몸을 돌리면 방향마다 또 다른 색들의 향연이다. 동서남북의 일출 모양이 다르고 초당, 분당 색깔과 분위기가 다르다. 마지못해 따라나선 남편도 아름답다고 감탄했다.


너무 예뻐 어린아이처럼 내내 탄성을 지르고 있으니 멋지게 차려입은 백인 할아버지가 사진을 찍어 주시겠단다. 새벽에 나오면서도 거의 정장에 가까운 차림이다. 감사의 인사를 하고 포즈를 취했다. 나는 대자연의 아름다움이 정말 너무 좋다. 아이들과 함께 왔으면 더 좋았을 텐데 조금 아쉬웠지만 좀 더 자라면 자기들도 스스로 찾아다니겠지.. 남편이랑 같이 와서 그나마도 다행이다 싶었다.

킹스파크의 일출. 감탄하느라 정신이 팔려 사진을 많이 못 찍었다

숙소로 돌아와서 아이들을 깨우고 호텔을 나섰다. 이렇게 평화로운 호주와 이제 작별을 해야 한다. 너무 아쉽다. 퍼스 여행은 그야말로 천국을 체험한 여행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행복한 여행이었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우버를 불러 공항으로 이동했다. 이번 우버 기사는 중동 사람이었는데 너무 불친절했다. 여태껏 좋은 사람들을 많이도 만났으니 이 정도야 뭐 그냥 옥에 작은 티 정도지라고 생각하고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에서 마지막 남은 호주 돈을 최대한 쓰고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가 이륙하니 창공에서 보는 저녁 붉은 하늘도 그림이었다. 아.. 다시 인도네시아에서의 일상을 시작해야지.. 남편도 새로 받은 좋은 기운으로 좋은 회사에 취업하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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