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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ssy Jun 20. 2022

첫 아이가 태어니다. 출산기

태아가 자라는 만큼 배도 점점 커다랗게 솟아오른다. 첫애라 그런지 이러다 '뻥' 터지는 건 아닌지, 혹시 영원히 뱃속에서 나오지 못하면 어쩌지.. 황당하기 짝이 없는 온갖 걱정거리가 머릿속을 지배한다. 막달에 태아가 자세를 거꾸로 돌리는 바람에 기도하는 맘으로 고양이 자세를 매일 했고 통했는지 다시 정상으로 돌아가는 행운을 얻었다.

예정일이 5일이나 지났지만 아직 아기가 내려올 준비가 되지 않았단다. 산모 덩치가 큰 편도 아니고 태아도 후반기로 접어들면 급속도로 커지니 그냥 유도분만을 하는 게 낫겠다고 의사가 조언을 한다. 예정일 일주일 전 남편의 '마라톤을 참석하게 허락해준 것' 빼고는 200% 만족감을 주신 분이라 마지막까지 믿고 따르기로 했다.


드디어 유도분만을 하기 위한 준비를 위해 밤 10시 병원에 입원하기로 예약을 했다.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그런데 남편 놈은 그런 복잡한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회사 직원 집들이가 있다며 다녀온다고 한다. 내가 정영 저런 놈과 결혼했단 말인가.. 회사에 유도분만으로 출산을 한 분이 계신데 고작 몇 시간 만에 애가 나오지도 않거니와 하루 이틀 더 걸릴 수도 있다나 뭐라나.. 참나.. 어이가 없고 너무 한심했다.


입원 예정 시각이 다 돼서야 집으로 온 남편..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없다. 챙겨 둔 짐을 차에 싣고 병원으로 향했다. 여러 가지 검사를 먼저 하고, 내진, 제모, 관장을 했다. 촉진제를 맞기 위해 링거를 꽂았다. 내 평생 처음 맞는 링거 주사다. 다음날 아침 남편은 잠시 회사 가서 조퇴하고 온단다.


남편도 함께 출산에 동참할 수 있도록 가족분만실을 예약했다. 본격적으로 슬슬 진통이 시작되었다. 간호사가 들어와 양수를 터뜨렸다. 태아를 감싸고 있던 따뜻한 물이 왈칵 쏟아졌다. 점점 통증의 강도가 세어지기 시작했다.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았다. 하지만 책에서 본 내용이 통증을 견디게 해 주었다. 산모가 느끼는 고통의 강도가 1이라면 태아가 느끼는 통증은 50이라는 말. 아기가 지금 세상 밖으로 나오느라 얼마나 힘들까.. 견뎌내야지.. 간호사가 와서 무통주사를 맞겠냐고 물었지만 혹시라도 아기에게 해가 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냥 마다했다.


왜 통증이 허리로 오는 건지.. 허리가 정말 끊어질 듯 너무 아팠다. 그러다 5분 정도 정신없이 잤다. 또 아파서 깨고 끊어질 것 같은 허리를 남편에게 좀 만져달라 했다. 호흡이 너무 힘들었다. 숨 쉬기가 힘들어 입으로 깊은 호흡을 하다가 또 너무 아프면 호흡을 잠시 좀 참았더니 간호사가 와서 보고는 "산모가 정상적인 호흡을 하지 않으면 아기에게 산소공급이 안돼서 큰일 납니다. 그리고 입으로 호흡을 하면 입술이 다 부러 트니 가능한 한 입을 닫고 코로만 호흡하세요!" 아기에게 위험해질 수 있다는 말에 깜짝 놀라 너무 힘들었지만 아기를 위해 시키는 대로 입술을 꾹 다물고 코로만 젖 먹던 힘을 다해 쉬지 않고 호흡했다. 허리는 여전히 부서질 것 같았다. 의사와 간호사가 왔다. 남편이 "집사람이 너무 많이 아파하는데 괜찮습니까?" 묻는다. 의사가 대답한다. "많이 아프죠. 많이 아파요.. 근데 자궁이 아직 많이 안 열렸네요. 가능하면 화장실을 조금씩 다녀오세요."


화장실이 가고 싶지는 않았지만 행여 이 죽을 것 같은 고통으로부터 빨리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르니 링거 바늘을 꽂은 채 화장실을 다녀왔다. 간호사가 또 왔다. 자궁이 좀 열렸단다. 그때부터 온 몸의 힘을 쥐어짜며 화장실을 다녀왔다. 다녀올 때마다 자궁이 조금씩 더 열렸다. 그렇게 표현하기도 힘든 허리 통증, 고통의 호흡, 잠깐의 잠 그리고 또 화장실.. 이렇게 반복하다 저녁 5시 30분경 간호사가 와서 보더니 이제 분만실로 가도 되겠단다.


그렇게 남편과 함께 간호사의 안내에 따라 분만실로 향했다. 새로운 공간으로 가서 누웠다. 갑자기 너무 추웠다. 근데 이상하게 통증이 하나도 없다. 여태 소리 지르며 진통했던 사람이 아닌 듯 그냥 가만히 누워있었다. 의사를 모시고 온 간호사가 당황해하며 혼잣말처럼 '자궁문이 다 열렸고, 진통이 계속 있었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내가 이렇게 가만히 누워 있으면 의사에게 간호사가 혼이 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 통증도 없었지만 그냥 소리 지르며 힘을 줬다.


어라.. 아기가 나온다. 의사가 바로 받을 준비를 했다. '물컹물컹' 뭔가 나오는 느낌이 두 번 들더니 어렵지 않게 밖으로 빠져나오는 느낌이 들었다. 3.2킬로의 두상이 작은 여아라 그런지 진통이 힘들었지 아기가 나오는 순간엔 아프지도 않았고 너무 쉬웠다. 태어나면 울어야 되는데 울지도 않고 커다란 두 눈으로 멀뚱멀뚱 거리기만 한다. 마치 '여기가 어디지?'라고 묻는 표정으로.. 그때 의사와 간호사가 조치를 취하고 드디어 울음이 터졌다. 남편에게 탯줄을 직접 자르시겠냐고 물었다. 그러겠단다. 가위를 받아 든 남편은 탯줄을 자르고 아기를 바라보았다.


21년 전 출산기라 요즘과는 좀 다르지 않나 싶은데, 그땐 잠시 아기를 안아 보게 하고 바로 데려갔다. 아기가 나오고 나니 몸이 사시나무 떨듯 떨렸다. 간호사가 온풍기를 가까이 갖고 왔다. 그제야 좀 참을만했다. 의사 말이 쉽게 나와서 회음부 절개를 따로 하지 않고 살짝 건들기만 해서 조금만 꿰매면 되니 마취 없이 잠시만 참으면 된단다. 살짝 따끔거리더니 끝이다.


이제 안내에 따라 2박 3일 입원할 입원실로 가는데 남편이 아기가 누워있는 모습을 커다란 통유리창으로 바라보고 있다. 저 아기가 우리 아기라는 게 믿기지 않는 듯, 세상에 아무것도 없고 저 아기만 존재하기라도 하는 듯 하염없이 바라만 보고 있다. 친정엄마가 옆에서 한 마디 하신다. "강서방, 아기가 참 이쁘지?"


그렇게 세상에 나온 우리 아기 너무 사랑스럽다. 남편도 아기가 너무 이쁘게 생겼다고 난리다. 친정엄마는 집으로 가시고 남편은 온돌방으로 되어있는 병실에서 함께 지냈다. 저녁이 되자 남편이 배가 너무 고프단다. 병원 건물 바로 밖에 분식점이 있어 떡볶이, 순대, 어묵 같은걸 파는데 내가 자극적인 음식을 먹으면 안 돼서 못 먹겠다했다. 내가 괜찮으니 먹으라 했다. 5분 후 남편은 떡볶이, 순대, 어묵을 한 아름 사 와서 풀더니 하루 종일 못  먹은 사람처럼 (지금 생각해 보니 계속 내 곁에 있어 하루 종일 못 먹은 게 맞네...) 이건 뭐 시트콤도 아니고 아무튼 허겁지겁 자기의 주린 배에 음식들을 집어넣고 있다. 음식을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 방금 첫 출산한 아내 앞에서 텔레비전 화면에 두 눈을 꽂은 채 우걱우걱 집어넣는 남편의 모습이 너무 철없어 보였고, 지금까지도 한 번씩 그때 이야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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