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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ssy Jun 20. 2022

병원에서 도망가다

내가 어릴 때 우리 동네 분위기는 마치 공동육아를 방불케 할 정도였는데, 우리가 좀 어렵게 살아 주변 분위기가 더욱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또래끼리 모여 같이 공부하는 건 일상이고, 행여 아이가 아프면 동네에서 데려갈 수 있는 큰 아이에게 부탁을 하기도 했다.


나는 병원이라면 학을 뗀다. 정말 죽을 만큼 아프지 않으면 병원 근처는 가기도 싫었다. 지금도 그렇다. 아직 국민학교를(지금의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 감기에 걸렸는데 제법 아팠던지 엄마가 동네 오빠에게 나 몰래 부탁을 했나 보다. 평소에 잘 지내던 오빤데 붕어빵을 사준단다 (요즘 같으면 상상하기 힘들지만 예전엔 그냥 다 식구다).

쫄래쫄래 동네 오빠를 따라나선다. 그런데 한참 걷다 보니 병원 입구다. 설마 했는데 그 오빠가 병원에 가야 해서 온 거라고 나랑은 상관이 없다고 했다. 어린 마음에 믿고 병원의 길고 푹신한 의자에 앉아서 기다렸다.


간호원(예전엔 간호원이라 불렀다) 언니가 다음 환자 이름을 부른다. ooo 아뿔싸.. 내 이름이다. 나는 속은 걸 분해하며 '걸음아 나 살려라!' 재빠르게 병원 밖으로 도망 나왔다. 나보다 두배나 큰 그 동네 오빠가 더 빠르다. 지금 생각해보면 친동생도 아닌데 그렇게까지 성가신 동네 동생을 챙겨주다니 너무 고맙다. 나를 달래서 주사도 없고 (그 당시엔 동네의원은 가면 무조건 주사 두방은 기본이었다) 그냥 약만 받아 가는 거라고 착하게 잘하면 진짜 맛있는 붕어빵을 사 준다고 했다.


할 수 없이 동네의원 안으로 다시 발을 디뎠다. 간호원 언니가 나를 잡아챘다. 엄지 손가락 만한 투명한 컵에 담긴 빨간 액체가 내 입안에 쏟아져 들어갔다. (아직도 그 빨간 액체의 용도를 모르겠다)우웩~ 맛도 더럽게 없다. 그러고 바로 나는 주사실 침대 위에 눕혀졌다. 이제 빠져나갈 구멍도 없다. 할 수 없다. 너무 무서워 엉덩이에 힘을 '빡'주고 작은 두 손은 주먹을 '꽉'쥐었다.


큰 주사 바늘이 엉덩이에 닿는 순간 '탁'하고 다시 튕겨나갔다. 깜짝 놀란 간호원 언니는 내 쪼끄만 벗겨진 엉덩이를 찰싹 때리며 화를 낸다. "얘! 이렇게 엉덩이에 힘을 주고 있으면 큰일 나! 주삿바늘이 엉덩이에 꽂힌 채 부러지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래? 힘빼!!!" 아이고야.. 바늘이 엉덩이에 꽂힌 채 부러진다고? 너무 무서웠다. 이번엔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힘을 빼고 시체처럼 다시 누웠다. 두 개의 주사를 다 맞고 그 동네 오빠와 붕어빵 사 먹으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 오빠는 엄마께 무슨 보상을 받았길래 그렇게 험한 일을 해줬을까...지금 생가하면 너무 미안하고 고맙다.


그런 내가 결혼을 해서 두 딸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작은 아이는 병원을 너무 좋아하는데, 큰 아이는 나를 닮았는지 병원 주삿바늘을 너무 무서워한다. 아니 병원 자체를 무서워한다.


큰 아이가 6학년 때 충치 치료 때문에 치과를 갔다. 겨우 달래서 치과 의자에는 앉혔는데 의사가 입 안을 보자고 도구를 챙겨 가까이 다가오니 황급히 오른손으로 입을 가려버린다. 이런.. 입을 손으로 덮어 버리면 입안을 볼 수가 없으니 내가 바로 오른손은 잡아채서 내렸다. 그러자 즉시 남아 있는 왼손으로 입을 가려버린다. 제발 치료 좀 하자.. 에고.. 이런 것도 엄마를 닮냐..


유전자의 힘은 정말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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