샴푸거품이 잔뜩 묻은 머리를 수건으로 싼 이유
드라마 주인공이 된 줄..
내내 초고온을 유지하다 이번주부터 비가 조금씩 오기 시작한다. 우기로 접어드는 모양이다.
집안일하기가 싫어서 빈둥거리다 11시나 돼서 빨래를 널었는데 슬슬 구름이 끼기 시작한다. 그래도 바람이 살랑살랑 부니 밖이 낫겠지 싶어 그대로 둔다.
오후 1시경 뜰에 나가 빨래를 만져보니 얇은 옷들은 말랐고 조금 두께가 있는 옷들은 아직 조금 젖어있어 그냥 두고 거실로 들어간다. 혹시 몰라 하늘을 관찰하며 할 일을 하고 있다.
갑자기 해가 반짝하고 나온다. 앗싸! 조금 덜 마른빨래를 말리기 딱 좋은 하늘이닷!
집안일을 하느라 여기저기 돌아다녔더니 피부가 끈적거린다. 공기 중에 습기가 많아졌나 보다. 얼른 샤워를 하고 와야겠다 싶다.
샤워하기 전에 대충 화장실 청소를 한 후 온몸에 물을 뿌린다. 머릿속도 땀이 나서 샤워기로 머리카락을 흠뻑 적시고 샴푸를 두 번 펌핑해서 머리카락에 묻힌다.
젖어있는 두 손으로 최선을 다해 머리카락을 온통 새하얗게 거품으로 가득 채울 무렵, 밖에서 갑자가 후드득 소리가 난다. 분명 해가 쨍쨍한 걸 보고 들어온 건데..
큰일이다. 헹구고 나가면 내 빨래는 온통 빗물에 젖은 생쥐꼴이 될게 뻔하다. 현명하게 판단하고 조치를 취해야 하는데 온몸은 물에 젖어있고 머릿속과 머리밖도 온통 새하얗다.
에라 모르겠다. 일단 거품 가득한 머리카락을 마른 수건으로 싸고 젖은 몸은 그냥 아까 벗어둔 원피스로 대충 가리고 후다닥 내려간다.
'아무리 급해도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히 내려가자' 속으로 다짐하며 최대한 빠른 속도로 내려간다. 분명 햇볕에 널어둔 빨래들은 내리는 굵은 빗줄기에 서로 구해달라고 아우성이다.
비를 뚫고 빨래들을 구해 거실에 던져놓고 얼른 다시 샤워를 마무리하러 욕실로 들어간다.
더러 새파란 하늘을 확인하고 잠시 장을 보러 간 사이 해를 보이겠다고 널어둔 이불을 적셔버려 다시 세탁을 한 적은 있지만 이렇게 몇 분 사이에 당하기는 또 처음이라 당황스럽다.
<태양의 후예>에서 송혜교가 머리를 감으려 거품을 잔뜩 묻혔는데 단수가 돼서 그냥 태연하게 거품 묻은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감싸고 송중기 앞에 나타난 장면이 떠오른다. 정말 이런 일이 생길 수가 있다니..
인도네시아의 우기는 정말이지 지금의 하늘을 믿으면 안 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