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필사 이전에 먼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 엄마와 나 모두의 기억에서 나는 책을 가까이 두는 아이었다. 스스로가 책을 좋아한다고 인식하기 시작하던 때는 초등학교 3-4학년 쯤이었다. 그때쯤 나는 좋아하던 책이 있었는데 “스파게티라면 지지 않아”라는 동화책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이 읽기에는 쉬운 동화책이었다. 당시 나도 그 사실을 알고 있어서 이런 동화책을 가장 좋아하는 책으로 여기고 있다는 것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는 비밀이었다. 엄청난 서사의 내용은 아니었다. 생각나는대로 요약해보자면 스파게티를 너무 좋아하는 아내가 있었고, 아내를 무척이나 사랑했던 남편은 스파게티를 같이 먹어주었다. 몸집이 불어나 집 문을 고쳐야 하는 것도 상관없이 남편은 아내를 사랑했다. 마지막엔 아내가 거인과의 싸움에서 스파게티로 이긴다는 그런 내용이다. 다만 이 책을 좋아했다는 사실만을 기억할 뿐 왜 좋아했는지 이유는 잘 기억하지 못한다. 그 뒤로부터 한참 시간이 지난 지금. 이 이야기가 좋았던 이유를 다시 상기시켜보려 한다.
이 책에는 아내가 사랑받을 행동을 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그 자체의 모습을 좋아하는 남편이 있다. 그리고 세상에는 사랑을 이유로 사람이 바뀌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 서로 맞춰가야 한다는 말조차도 별로 이해하고 싶지 않은 나는 사랑이란 말을 방패막 삼는 일을 싫어한다. 자기 방식대로 바꾸려드는 것이 정말 사랑인가. 그런 점에서 이 책의 남편은 아내를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사랑의 형태를 가진 인물이라 생각한다. 아내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남편. 이 책의 사랑스러움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받은 사랑에 보답하듯 거인과 싸움에 나서고 결국엔 이겨내는 아주 사랑스러운 여성이 있다. 심지어 이 여성이 싸워서 이기는 방법은 스파게티를 먹는 대결이었다. 그녀는 어떤 폭력 없이 싸워 이겼다. 그리고 모든 과정에서 사랑스러움을 잃지 않았다. 기꺼이 싸우러 나가서, 전혀 폭력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마침내 이기고 돌아오는 모습은. 내가 되고 싶은 모습 그 자체다. 물론 스파게티로 싸워 이긴다는 건 현실에서는 가능하지 않은 일이겠지만, 과격하지 않은 방법을 찾아 이겨내는 것은 매순간이 전쟁인 우리가 바라는 모습이 아닐리 없다.
“스파게티라면 지지 않아” 속 인물들의 사랑과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지금의 내가 바라는 모습 그 자체다. 처음에는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어 이 책을 좋아했던 거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어쩌면 이 책의 이야기가 먼저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아주 여러번. 읽고 또 읽다보니 이야기 속 인물의 가치관이 나의 것이 되고 그대로 되기를 꿈꾸게 된 것이 아닐까. 사실은 한참이나 잊고 지냈던 책이다. 그러나 과거에 읽고 좋아했던 경험은 어떤 식으로든 내 안 깊은 곳에 남아 잊혀지지 않는 모양이다. 내게 잠재되어 있던 기억은 그렇게 남아 나의 생각을 만들고 가치관 형성에 일조했다. 다른 책들도 마찬가지로 내용을 전부 기억할 수는 없어도 전부 내 안에 쌓이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야기들은 읽고 나면 소화되어 조금씩 분해되 내 안에 일부로 남는다.
나는 그때도, 지금도 책을 좋아하고 책의 문장 하나하나를 너무 사랑한다. 그래서 그 문장들을 전부 기억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이제는 모든 걸 생생하게 떠오른 채로 기억할 수는 없어도 내 안에 남아있을거라는 걸 생각한다. 눈으로만 읽었던 책도 기억하고 있으니. 이야기 속 교훈들은 기억에 남아있을 뿐 아니라 나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다. 그러니 눈으로 보는 일에서 끝나지 않고 손끝의 감각으로 느끼고 맛본 문장들은 내게 얼마나 깊이 새겨질까. 필사는 내가 오래 기억하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그 방식의 효과를 진심으로 실감한다. 문장을 읽고 남기면 분명히 기억하게 되고 더 나아가 내 것이 된다.
본가에 내려가면 제일 처음 썼던 독서기록을 한번 찾아봐야겠다.
나는 어떤 문장이 되고 싶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