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부쩍 필사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필사의 즐거움을 사람들이 알기 시작했나보다.
사람들이 각자의 글씨로, 각자의 이유로 필사를 하는 모습을 하나씩 보며 나의 필사는 어때왔는지 돌이켜보게 되었다. 나는 어떤 이유로 필사를 하게 되었나.
벌써 1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나는 10년, 그 이전부터 손으로 책을 읽고 남기고 싶은 내용을 필사하고, 또 느낀점을 남겨왔다. 그것을 취미라고 해야하나 습관이라고 해야하나 조금 헷갈리지만 오랫동안 그 일을 반복해왔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나는 10년째 필사중이다.
필사를 처음 시작했을 때를 돌이켜 보면 그때 나는 매일 지나가는 하루들을 잊고 싶지가 않았다. 그래서 일기도 쓰고, 읽은 책 필사도하고, 사진도 많이 찍었다. 아주 어린 시절에는 잊어버리고, 기억하는 것의 개념이 희미했던 것 같다. 정말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던 시절이 있었다. 무엇을 지우고, 간직하는지의 개념이 희미해서 어떤 것을 기억하고 있는지도 알지 못했다. 조금 더 자란 후에 나는 마치 내가 겪은 일들을 전부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했고, 기록을 시작하던 시기에 나는 내가 어린 시절의 기억을 서서히 잊어버려가고 있다는 것을 자각했다. 초등학교 1학년때 담임 선생님 성함이 기억나지 않았고, 2학년때 번호가 기억나지 않았고, 유치원 때 함께 놀던 친구들의 이름 몇개가 기억에서 사라졌다. 내게 분명 존재했던 기억들을 잊을 수도 있다는 것을 한번도 생각한 적 없던 나에서, 이 모든 것이 희미해 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내가 되었을 때. 그때 나는 기록을 결심했다. 과거의 기억들도,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도. 무엇하나 잊어버리지 않겠다고. 그러기 위해 기록하겠다고. 그렇게 나는 기록을 시작했다.
지금 나는 모든 순간을 다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수준을 지나 잊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그러나 필사를 시작하던 시기의 나는 어떤 것도 잊고 싶지 않았다. (기록을 시작 하던 그 시기의 나는기억을 잊을 수도 있다는 것까지는 알았지만, 그럼에도 모든 것을 다 기억할 수는 없다는 것까지 생각이 닿진 않았던 것 같다.) 지금 나는 어떤 것도 잊고 싶지 않던 그 시절의 마음이 궁금하다. 얼마나 즐거움으로 가득 채워진 매일을 살아기에 그런 생각을 했을까. 나의 행복이 얼마만큼이었는지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아서 그때 나의 마음은 정말로 알 수가 없게 되었다. 기록은 아무리해도 부족하다. 아무리 열심히해도 그 시절의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으니. 그것이 나의 마음이라 할지라도. 뭔가 좀 많이 잊고 싶은 지금의 나는 그 때의 나. 뭐가 얼마만큼 좋았는지 더 기록해둘 걸 하는 후회를 한다. 유난히 상상력이 풍부했던 나. 내 머릿속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흐르고 있었는지. 어떤 행복한 생각이 떠다녔는지. 또 왜 그 모든 슬픔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잊고 싶지 않았는지. 지금 내가 궁금해 하는 것들에 대한 답은 알 수 있는게 없어서. 나는 더 많은 것들을 기록해야 겠다 다짐한다. 이 정도면 내가 정말 잊고 싶어진 게 맞는지 의문이 드는데…… 사실 여전히 잊고 싶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요즘 나는 늘 그랬던 것처럼 여전히 많은 것을 기록하고 싶어 하지만, 또한 많은 것을 잊고 싶어하기도 한다. 완전히 잊기 위해 흔적들을 모두 지워버리기도한다. 물론 기록을 남겨두려하는 관성으로 인해 그 과정이 쉽진 않지만 그 힘을 이겨내고 지워낸다. 버리자, 비워내자, 그렇게 가벼워지자. 이런 말의 주문을 외워가며 종이를 찢고, 기록을 삭제한다. 하나씩 계속 지워내다보면 나는 어떤 기록을 남기게 될까. 내가 마지막까지 없애지 않을 기록은 분명 필사했던 기록일거다. 다른 기록들은 이미 존재하는 나에 대한 기록이라면, 필사만은 내가 되고 싶은 모습들의 기록에 가깝기 때문에. 오늘보다 더 나은 모습에 대한 기대. 지금의 나보다 한 발자국은 더 나은 모습의 나. 그것들을 모은 기록은 지우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모든 것을 잊지 않기 위해 필사했던 처음의 마음과는 꽤나 멀어진 것 같은 답이다. 여전히 필사를 하고있는 나를 보면 하나도 멀어진 것 같지 않은데. 사실 여러모로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가깝진 않다.
기록하는 일은 오랫동안 이어온 취미이자 습관. 나에겐 고치고 싶은 습관도, 욕심을 버리고 싶은 취미도 있다. 그러나 기록하는 것만큼은 바뀌지 않고 싶고, 더 잘 하고 싶은 일이다. 그래서 변화하는 마음속에서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기록하는 일. 특히 마지막까지 지우지 않을 기록에 대한 마음들을 남겨보려한다.
오랫동안 혼자 해오던 일이었는데, 아니. 그렇다고 생각해왔는데,
주변의 많은 동지들을 보니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눠볼 때가 온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