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게으른 완벽주의자다. 기왕 할거면 완벽하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완벽하게 하려다보니 작은 것 하나에 신경쓰다 결국 끝에는 힘이 빠져 대충 넘어가는 일도 많지만. 일의 시작 전에는 언제나 완벽을 생각한다. 학생 때 나의 목표는 항상 100점이었다.(그렇다고 그렇게 공부를 잘했다는 말은 아닙니다,,,) 심지어 그런 생각은 대학교를 졸업할 때가 다 되어서야 조금 깰 수 있다. 100점이라는 것은 언제나 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그렇게 나는 안하면 안했지 하기로 한 일이라면 내 기준에 충족할 정도로 에너지를 다 쏟아야 만족하는 사람이다. 좋은 표현으로 책임감이 있는 사람이라 할 수 도 있을지도 모른다. 모든 것에 완벽해야하는 나는 준비하는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그헐게 시작하지 못하고 앞에서 망설이는 모습은 내가 좋아하는 모습은 아니다.
완벽주의자들이면 공감할 것 같다. 무언가 일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긴 준비 시간이 필요하다. 물론 그 준비는 대부분 마음의 준비이다. 완벽하고 싶은 마음을 불안을 불러온다. 완벽하고 싶은데 완벽하지 못할까봐 걱정하는 과정에서 나는 정말 수만가지의 불안 요소를 떠올린다. 그리고 하나하나에 대한 해결 방안을 생각한다. 그러다보면 시간이 늘어진다 그렇게 늘어지고도 해결되는 문제는 없고 답답하기만 하다. 해보지 않은 일에 대한 완벽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 일은 정말 많지 않으니까.
그런 내가 살아남는 방법은 그 모든 안될 이유에도 불구하고 그냥 눈 감고 시작하기. 그냥 저질러 버리는 것이다. 걱정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어떤 일이든 해봐야 늘고, 문제에 대해 대처할 수 있는 능력도 생긴다. 물론 걱정이 많은 사람들에게 저질러 버린다는 것 자체가 쉽지는 않은 일이라는 걸 안다. 하고 싶은 일은 많지만 처음부터 전부 완벽하려는 마음으로 그 주위를 맴돌기만 한 것이 바로 나니까. 온갖 잡념들은 자꾸 앞으로 가지 못하게 막는다. 앞으로 나서지 못하고 망설이는 답답한 내게. 나는 내게 매일 말한다. 뭐가 그렇게 어려워. 그냥 해.
좋아하는 일을 잘하고 싶은 것은 당연하지만. 시험을 볼 것도 아닌 일에, 직업으로 삼을 것도 아닌 일 앞에서 그렇게 망설일 이유가 있을까. 심지어는 그런 일 조차도 언제나 처음은 못하는 게 당연하니까. 일단 그냥 해보자는 마음은 시작 앞에서 언제나 도움이 된다. 못해도 되고. 마음에 안들면 없었던 것처럼 다 지우고 다시 시작해도되고. 해보다가 아닌 것 같으면 그만 둬도 되니까. 일단 해보기나 하자.
필사를 하다보니 언젠가부터는 욕심이 생겨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것이 많아졌다. 감상의 분량도 어느 정도는 됐으면 좋겠고, 글씨도 예쁘게 쓰고 싶었다. 문장의 감정을 제대로 느끼기 위해 영상은 절대 틀지 말고, 딱 잘 어울리는 노래 리스트를 만들어 틀어 놓아야지 생각했다. 취미 생활이니까 할 일은 다 끝내고, 넉넉한 마음으로 늦은 저녁 시간에. 나름 만들어 놓은 필사 루틴이다. 별 거 아닌 루틴인 것 같기도 하지만 생각해보면 일단 모든 일을 다 끝낸다는 것 부터가 어려운 일이다. 또 일을 다 마친다고 해도 그 시간쯤엔 피곤해서 취미 생활 같은 여유를 느끼는 마음이 남아있지 않을 경우가 많다. 거기다가 많은 양의 분량을 정성을 다한 글씨로 쓰려고 하면 한 권의 책의 기록도 남기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나는 루틴에 얽메이지 않기로 했다. 나의 필사에는 노트와 펜, 수정테이프만 있으면 된다. 책을 읽으며 마음에 드는 구절을 표시해 놓는다. 소장한 책에 실물책이 있는 경우엔 플래그로 표시해 놓기도 하고,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거나 전자책같은 대부분의 책들은 마음에 드는 구절을 사진으로 찍어 놓는다. 그리고 나면 마음에 드는 펜 하나를 골라 노트에 책의 마음에 드는 문장들을 따라 쓰는 일이 전부. 시간도 상관 없다. 그냥 하고 싶은 때에. 남는 시간 동안에. 가능한 분량을 써볼 뿐이다. 보부상 나에게는 얇은 노트 한권, 펜 하나 정도는 짐도 아니므로. 장소에도 구애받지 않는다. 이제 나는 언제 어디서든 필사를 할 준비가 되어 있다. 내게 필사는 마음의 정화하는 일이다. 그래서 무언가 하는 중간에 좋은 문장을 하나씩 만나고 나면. 감정의 평정심을 유지하는 게 도움이 된다.
그러니까 사실 필사는 대단한 일이 아니다. 나 혼자 소장하게 되든, 개인 SNS에 올리든. 그냥 필사를 하면서 내가 좋으면 되는 취미로써 여기면 된다. 잘하고 못하는 것 따위는 없다. 그러니 그냥 끄적여본다는 마음으로. 틀같은 것에 묶이지 말고. 남기고 싶은 문장을 쓰자.
사실 이 모든 이야기가 나를 위한 말이었다.
나는 아직도 자꾸 반복해서 말해서 나를 세뇌 시키는 중이다.
그렇게 말하다보면 정말 그렇게 될 날이 올까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