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리추얼(retual)이라는 말을 자주 만나게 된다. 단순한 습관을 넘어서 의미 있는 반복 행위라는 의미의 이 단어. 나는 나의 마음을 위해 어떤 의식을 반복하고 있을까. 나의 리추얼은 한 치의 의심도 없이 필사다. 나는 필사를 통해 마음을 돌본다.
나는 이것저것 관심있는 분야가 많고 욕심도 많은 편이라, 대부분 여러가지 일을 동시에 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갓생, 미라클 모닝과 같은 키워드와는 거리가 멀어서 적당히 바쁘지 않은 상태를 유지하길 바란다. 물론 일정은 항상 내 마음대로 조정되는 게 아니라. 일들은 한가하다가, 휘몰아치기를 반복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다 하면서 적당한 정도의 바쁨을 유지하는 것이 목표인데 언제쯤 그런 모습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지난 6월 동안 나는 주어진 일 말고는 아무것도 챙기지 못할정도로 바쁜 날들을 보냈다. 최소한의 잠만 자고 집도, 몸도, 마음도 챙기지 못했던 때. 일들을 마치고 나니 한바탕 몸살도 앓았다. 그리고 그럴때면 어김없이 부정적인 마음이 되어 있다.
부정적인 마음이 올라올 때 가장 먼저 챙기는 것은. 8시간 이상의 충분한 수면 시간과 균형잡힌 식사의 여부. 그런 기본적인 생활을 챙기고 나서도 마음이 좋지 못하다면 마음을 돌보는 일이 필요한 때란 걸 생각한다. 7월. 바쁜 일들이 몰아치고 난 후 잠시 소강 시간이 찾아왔을 때 나는 마음을 돌보기로 했다. 정말 휘몰아친다는 단어 밖에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바빴다. 그럴때면 나는 다 해낼 수 있을지 불안한 마음으로 시간을 보내고, 일이 끝나고 나서도 아쉬움과 허한 마음으로 무력해진다. 힘든 마음들을 어쩌지도 못하고 가득 끌어 안은 채로 여러 날들을 보내고 나면 마음을 정화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럴 때 가장 먼저 책을 읽는다. 그동안 읽고 싶었지만 읽지 못했던 책들을 읽는다. 핸드폰 메모장에 리스트로 만든 목록들을 넘겨가며 마음에 드는 책을 고른다. 가장 좋아하는 분야는 언제나 한국 문학이다. 특히 최근에 나온 한국 소설들에 관심이 많다. 만들어 놓은 리스트에서 너무 무겁지는 않지만 또 너무 가볍지는 않은 적당한 무게감을 가진 소설을 골라 읽는다. 나의 선호를 고려한 책을 몰입해서 읽다보면 그 동안 억압 되었던 마음들이 한 번 풀리는 기분이 든다. 일을 할때면 감정을 억압하고 힘든 마음을 굳이 보지 않으려 하지만, 책을 읽을 때는 그럴 필요가 없으므로.
그렇게 책을 읽는 것만으로 좋은 때가 있다. 그러나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책을 읽으면 어떤 식으로든 기록을 남기려고 하는 편이다. 요즘은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에도 올리기는 하지만, 그래도 내 독서 기록의 시작이자 오랫동안 지속해온 방식은 손으로 남기는 독서기록이다. 필사를 하고 느낀점을 손으로 기록하는 일. 나는 손으로 무언가를 쓰는 일 자체를 좋아하는 것 같긴 하다. 대부분의 일을 노트북으로 하는 요즘 나는 손 끝으로 감각을 느껴가며 쓰는 일이 종종 그리우니까. 손으로 무언가를 쓰는 일은 거의 좋아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가장 좋아하는 건 좋아하는 책의 문장들을 쓰는 일이다. 정말 오랫동안 변치 않은 마음이다.
내가 좋아하는 장르의 책에서 기억하고 싶은 문장들을 골라 손으로 쓰며 마음에 기록하는 일은 언제나 묘한 쾌감을 준다. 작가님들의 문장을 다 흡수하게 된 것 같은 기분. 그들의 생각을 통해 한층 더 발전된 마음을 갖게 된 것 같은 기분. 결국엔 나도 그들과 같은 마음으로 그런 글을 쓸 수 있게 된 것 같은 기분. 쓴다고 해서 전부 기억하는 것은 아니다. 아마 전부 잊었다고 말해도 과장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냥 읽고 지나치는 것이 아니라 한 글자씩 뜯어서 맛보며 나는 몇 배 더 큰 감동을 얻는다. 그것만으로도 큰 수확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 문장들을 전부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도 분명히 배워가는 것이 있다고 믿는다. 필사하는 과정을 통해 발전된 문장을 쓰게 될 것이라 믿는다.
문학을 읽다보면 지식적으로 전혀 모르던 새로운 것을 얻게 되는 일은 많지 않다. 그러나 아는 것이라 할지라도 현실의 삶을 살다보면 자꾸 잊게되는 가치들이 있다. 사실은 알고 있고 기억하며 살고 싶지만 자꾸 잊게 되는 것들이 있다. 마음처럼 잘 되지 않는 삶을 살다보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내 모습에 나를 자책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올라온다. 때로는 누군가를 미워하게 되기도 한다. 그럴 때면 무슨 책이든 꺼내들어야 한다. 우리의 삶은 원래 그런 것인데. 나는 지금껏 그런 삶을 살아왔고 그럼에도 앞으로도 잘 살아낼 텐데. 순간의 감정이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니까.
책과 글을 가까이 하는 때에는 나와, 나와 다른 누군가를 이해하는 마음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눈으로 글을 보고 손으로 따라 쓰는 행위를 반복하며 감정을 가라앉힌다. 잠깐이라도 반복하다보면 당장의 급한 감정들은 사라지고 평소처럼 평온한 상태의 마음을 마주할 수 있다. 감정에게 시간을 준 다음에 나의 마음과 책의 생각들을 더해 감상을 남긴다. 감정을 마주하고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큰 발전이다.
그래서 나는 바쁜 삶 속에서도 책을 가까이 하려 노력한다. 좋은 감정이든 나쁜 감정이든, 책속의 인물을 통해 마주하지 못했던 감정을 들여다 보게 되는 기회가 되니까.
필사 하는 시간은 마음을 챙기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