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함과 특별함 사이에서

by 윤슬

특별한 취향을 가진 사람과 일반적인 취향을 가진 사람. 어느 쪽이 좋은가. 앞서 말한 문장으로 생각한다면 특별한 취향쪽에 마음이 끌린다. 그러나 다르게 말해서 뭘해도 눈에 띄는 사람과 무던하게 스미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나는 무던하게 스미는 사람쪽에 마음이 끌린다. 어떤 사람이 좋은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앞에서 나는 아직 갈팡질팡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 겪은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그 고민은 더 깊어졌다.


나는 글씨가 특이한 편이다. 글씨가 예쁜가 하면 그리 예쁘지는 않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특이함의 정도는 분명히 높다. 여태껏 내가 쓴 글자를 본 사람들이 내게 한 말들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모두 내 글씨를 보고서 한 마디 말을 건냈다는 점에서는 모두 같았다. 내가 보는 내 글씨는. 나란하고 가지런한 편. 그래서 조금 지루하고 재미없는 편. 그리 못쓰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나라에서 글씨를 제일 예쁘게 쓰는 사람 5명 안에 손꼽히지는 않는 정도. 그리고 좀 진지한 편.


학생 때는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글씨를 쓰는 일이 많았다. 그리고 시험지나, 제출하는 글을 쓸 때에는 알아보기 쉽게 또박또박 예쁘게 써야한다는 말을 워낙 많이 듣다보니 그래야 한다는 강박? 집착? 비슷한 것이 생기기도 했다. 혹시 주관식 시험지에 쓴 내 글자를 알아보지 못하고 틀리면 어쩌지, 글씨를 바르지 못하게 썼다고 혼나면 어쩌지. 하는 그런 마음들. 보이기 위한 글자는 알아 볼 수 있게 해야한다는 말에 동의하기도 해서 반발없이 바른 글씨를 쓰기 위해 노력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선생님들이 했던 말들의 대상이 나는 아니었을 텐데 말이다.


글씨를 또박또박 정성들여 쓰려는 마음은 꽤 오래갔다. 나는 유난히 손에 힘이 없었고. 긴장도 많이 하는 사람이라 조금만 긴장하면 손에 땀이 다 났는데. 그러다보니 손으로 글씨를 쓰는 일은 특히 더 힘들었다. 땀이 흐르는 손바닥. 그래서 자꾸 미끄러지는 펜. 땀을 닦고 펜을 붙잡느라 정신이 다 없었다. 아직도 손에 힘이 없는데… 지금보다도 더 약하고 작았던 시기에 긴장까지 한 나. 매일이 너무 고생이었네.


나 혼자보는 필사 노트에서도 글자 하나하나를 정성들여 쓰고, 마음에 들지 않는 글자가 하나라도 생기면 몇번이고 지우고 다시 썼다. 참 피곤한 성격이다. 그렇게 글자 하나를 놓고 고민하던 날들이 이어지다 어느순간 깨달았다. 이제는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글, 평가받기 위한 글들을 쓰고 있지 않는다는 걸. 정성들여 쓰는 것은 좋지만은 그것이 나를 힘들게 하는 일이라면 좋을 것도 없다는 것을. 사실 예쁜 글자에만 집착해 글을 쓰는 것은 공부에도 도움이 되지 않고, 문장들을 느끼는 것에도 좋지 않다. 순간 찾아온 깨달음 이후로. 이제는 마음을 내려놓고 글자를 쓴다. 그동안 긴장해서 썼던 시간이 수련의 시간이 되었는지 편한 마음이어도 나의 글자는 그리 흐트러지 않는다.


나로써는 편하게 쓰는 글이지만 내 글씨는 여전히 눈에 띈다. 대단히 특이할 것도 없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다. 그러나 꾸준히 여러 명에게서 글씨 칭찬을 듣고, 내 이름을 써 놓지 않아도 내 글씨인 것을 알아보는 일이 반복되다 보니까 이제는 그 특이함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게 되었다. 그런데 특이한 글씨는 쓰는 일은 정말 좋은 일일까? 특별함이라는 건 좋은 것 같다. 나만의 색이 없다고 생각해서 고민했던 시기도 있었다. 한 가지로 정의되는 나의 색을 가지고 싶었다. 그런 특징이 내겐 없다고 생각해서 고민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정말 무색무취에 가까운 사람이었을까. 지금 생각해 보건데 아마 아니었던 것 같다. 사람을 한 가지로 정의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누구나 그들만의 특징을 가진다. 나 역시 그랬다.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나를 알아보게 만드는 특징. 글씨는 나의 특징에서 큰 부분을 차지했다. 이름이 쓰여있지 않아도 많은 공중들 사이에서도 나인 것을 알아보게 만드니까. 나만의 특별함. 이것은 내가 바라는 일이었다. 아니 내가 바란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를 절대 찾지 않았으면 하는 사람이 날 알아봤다는 표현을 전했을 때. 그 특별함이란것의 어두운 면을 알았다. 사실 나는 유명하다라는 말 근처에도 가지 않았는데. 끔찍하게 느껴지는 관심을 만나버렸다. 특별하고 개성있는 것을 최고의 가치라 여겨왔던 내가. 왜 사람들이 무난하고 평범하게 것을 바라는지 이해하는 날이 왔다.


아 눈에 띄지 말걸. 그냥 숨어있을 걸. 눈에 띄는 글자인 걸 알면서도 정체를 드러내다니. 생각하며 평범하고 무난하고 조용하게 사는 것의 미덕을 깨달았다. 그것이 현실에 안주하는 희망없는 상태가 아닌. 어느 하나의 미덕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대체로 평범한 사람이어서. 그것이 너무 당연해서 왜 평범함을 바라는지 이해하지 못했는데. 그것이 누군가는 바라고 원하는 상황일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건 나를 보호하는 방법이었다. 또 하나의 마음을 배웠다.


사실 나는 피하고 싶지 않다. 나를 괴롭히는 상황에 싸우고 싶다.

그러나 정말 큰 일이 생겨서 내 사람들을 힘들게 할까봐 숨죽이며 정황을 살펴야 한다.

내가 정말 혼자라면 절대 원하지 않을 일.







누군가의 눈에 띄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날이 올까.

감정을 누르거나, 싸우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내 길을 갈 수 있는 날이 올까.

바른대로 돌아가는 세상이 정말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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