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는 떡국을 기다렸다.
설날 아침, 부엌에서 풍기는 사골 냄새가 집 안 가득 퍼지면 그렇게 신이 날 수가 없었다. 하얗고 동그란 떡이 둥둥 떠다니는 국물, 그 위에 올라간 고명들. 계란 지단, 파, 김가루. 어머니는 항상 내 그릇에 떡을 수북이 담아주셨다.
“많이 먹어야 키 크지.”
그 말씀 듣고 두 그릇, 세 그릇 해치웠다. 그래서 키가 컸냐고? 글쎄, 172센티가 큰 건지는 모르겠다.
떡국 한 그릇 먹으면 나이 한 살 먹는다고 했다. 그게 그렇게 좋았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으니까. 한 살이라도 더 먹어서 어른들 사이에 끼고 싶었다. 그래서 떡국 안 먹으면 나이 안 먹는다던 그 말을, 나는 코웃음 쳤다.
“떡국 두 그릇 먹으면 두 살 먹는 거야?”
어머니는 웃으셨다.
그랬던 내가 떡국을 피하기 시작한 건 마흔 넘어서였다.
설날 아침, 아내가 떡국을 내왔다.
“여보, 여기요.”
나는 슬쩍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나 아직 배 안 고파.”
거짓말이었다. 배고팠다. 그런데 이상하게 먹기 싫었다. 이걸 먹으면 또 한 살 먹는다는 생각이 들어서. 유치한 거 안다. 떡국 안 먹는다고 나이를 안 먹나. 그래도 괜히 그랬다.
쉰 넘으니까 더 심해졌다.
이제는 숫자가 무섭다. 오십일, 오십이, 오십삼… 해마다 올라가는 숫자가 마치 카운트다운 같다. 무엇의 카운트다운인지는 말하지 않겠다. 다들 알 거다.
떡국의 유래를 찾아본 적이 있다.
설날에 떡국을 먹는 건 오래된 풍습이다. 흰 떡은 새해의 깨끗함과 순수함을 상징한다고 한다. 가래떡을 동전 모양으로 써는 건 재물이 불어나라는 의미고, 국물은 장수를 뜻한단다. 떡국 한 그릇에 별의별 의미가 다 들어있는 셈이다.
근데 '나이 한 살’은 어디서 나온 걸까.
옛날에는 모두가 설날에 한 살씩 먹었다. 지금처럼 생일날 나이 먹는 게 아니라, 전 국민이 동시에 한 살 올라가는 거였다. 그러니까 설날에 먹는 떡국은 일종의 통과의례였던 거다. 떡국을 먹어야 비로소 새해를 맞이한 거고, 나이를 먹은 거다.
그래서 어르신들은 나이를 물을 때 이렇게 말씀하셨다.
“떡국을 몇 그릇이나 먹었냐?”
재미있는 표현이다. 요즘은 누가 저렇게 물으면 무슨 말인지 모를 사람도 많겠다. 만 나이 쓰는 세상이 됐으니까.
아버지는 떡국을 참 좋아하셨다.
설날뿐 아니라 평소에도 자주 드셨다. 어머니가 가끔 떡국을 끓여놓으시면 아버지는 꼭 두 그릇을 비우셨다. 배가 부르셔도 국물까지 깨끗이 드셨다.
“떡국은 이게 국물이 진해야 맛이지.”
그러시면서 호호 불어 드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소박한 행복이었다. 떡국 한 그릇에 저렇게 만족하시다니, 그때는 이해가 안 됐다. 지금은 안다. 나이 들수록 입맛이 단순해지고, 익숙한 것에서 위안을 얻게 된다.
같은 레시피인데 뭔가 허전했다. 아내는 똑같이 끓였다고 했다. 맞다, 맛은 같았다. 달라진 건 맛이 아니라 식탁이었다.
요즘 아이들은 떡국을 별로 안 좋아한다.
우리 아들도 그렇다. 설날 아침 떡국 내놓으면 한 숟가락 뜨고 만다.
“아빠, 나 이거 별로야. 라면 먹으면 안 돼요?”
처음엔 화가 났다. 설날 아침에 라면이 뭐냐고.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내가 잔소리할 처지가 아니었다. 나도 떡국 피하는 사람이잖아. 이유는 다르지만 결국 피하는 건 마찬가지다.
며느리가 올 집안은 떡국 끓일 줄 알까.
요즘은 젊은 사람들이 떡국을 잘 안 끓인다고 한다. 명절에 밀키트로 해결하거나, 아예 외식으로 때운다고. 그게 나쁘다는 게 아니다. 시대가 변했으니까. 그래도 어딘가 아쉽긴 하다.
떡국 끓이는 냄새가 사라진 설날, 그게 과연 설날일까.
작년 설날 아침이었다.
밥상 앞에 온 가족이 모였다. 아내, 아들, 딸. 네 그릇의 떡국이 김을 모락모락 피우고 있었다. 나는 잠깐 숟가락을 들지 않고 그 풍경을 바라봤다.
아들이 물었다.
“아빠, 왜 안 드셔요?”
“응, 먹으려고.”
그 순간 깨달았다. 떡국 한 그릇에 나이 한 살 먹는다는 말, 그게 두려울 게 아니었다. 이렇게 같이 먹을 사람이 있다는 게 감사한 거였다. 내년에도, 그다음 해에도 이 식탁에 둘러앉아 떡국을 먹을 수 있다면, 나이가 뭐가 무섭겠나.
그날 나는 두 그릇을 먹었다.
아내가 놀랐다.
“어머, 오늘 왜 이렇게 많이 먹어요?”
“나이 두 살 먹으려고.”
농담처럼 말했지만 반은 진심이었다.
떡국 한 그릇에 담긴 건 나이만이 아니다.
그 한 그릇에는 새해 첫날 가족이 모인다는 의미가 있다. 멀리 사는 자식들도 이날만큼은 돌아온다. 바쁜 일상에 흩어져 살던 사람들이 한 밥상에 모인다. 그 핑계가 떡국이다.
떡국이 없으면 뭐 하러 모이겠나.
아무 이유 없이 명절에 모이기란 쉽지 않다. 떡국이, 차례가, 세배가 있으니까 모이는 거다. 번거롭다고 없애버리면 모일 이유도 사라진다. 풍습이라는 게 그래서 의미가 있는 거 같다. 사람을 모으는 힘.
올해 설날에도 떡국을 끓일 거다.
아내가 하겠지만, 나도 옆에서 거들 거다. 가래떡 썰고, 계란 풀고, 대파 송송 썰고. 별거 아닌 것 같아도 함께 준비하면 그것도 추억이다.
이제 곧 쉰셋이다.
떡국 쉰세 그릇째. 숫자로만 보면 많이도 먹었다. 어릴 때 그렇게 빨리 어른 되고 싶었는데, 막상 와보니 별거 없다. 여전히 모르는 것투성이고, 여전히 허둥대고 있다.
그래도 괜찮다.
떡국 한 그릇에 나이 한 살 먹으면서, 그만큼 추억도 한 겹씩 쌓이는 거니까. 올해의 떡국도 내년이 되면 추억이 된다. 그렇게 쌓인 떡국들이 내 인생이다.
내년에는 쉰넷 그릇째다.
그때도 이 식탁에서 가족들과 떡국을 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 국물 한 숟가락 뜨면서 “또 한 살 먹었네” 투덜거릴 수 있으면 좋겠다. 그 투덜거림이 사치라는 걸, 이 나이 되니까 안다.
어릴 때는 떡국이 나이를 주는 줄 알았다.
지금은 안다. 떡국이 주는 건 나이가 아니라 함께 먹는 시간이라는 것을.
올 설날도 두 그릇 먹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