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나의 불완전한 20대_인간관계
나는 누가 힘들지 않냐고 물어보면 늘 반사적으로 ‘괜찮다’고 말했다.
이유는 다양하다. 힘들다고 하면 무거워지는 공기가 싫어서. 내 눈치를 보게 하는 게 싫어서 이해받지 못할 것 같아서. 약하고 의존적인 사람이 되는 것 같아서. 남들의 위로와 동정을 받으면 내 자존심이 무너져 내릴 것 같아서.
이때 '괜찮다'는 한 마디는 이 모든 상황을 미리 차단해주는, 마법의 방패막이다.
반면, '힘들다'는 말 한 마디는 내 커다란 콤플렉스다. 멋지게 포장한 나를 완전히 해체하고 나약한 나를 드러내는 말이다. 그래서 차마 가볍게 뱉어낼 수 없는, 너무나도 무거운 말이 된다.
사실, 나는 겁이 많아서였다. '힘들다'는 말이 내 나약함이 드러나고, 그게 내 약점이 될 것만 같았다. 내 나약함을 보고 상대가 내게 실망해서 나를 떠날 것이라는, 혹은 내 약점을 이용해서 배신할 것이라는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
이런 두려움의 이면에는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 내가 있다.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나는 강인하고, 뭐든 척척해내는 사람인데, 현실의 나는 너무나 나약하고 부족하다. 이런 내 모습이 내가 봐도 멋있지가 않다. 이런 나를 들켜 버리면 다들 나에게 실망할 것만 같다. 그래서 진짜 나를 철저히 숨기고, 이상적인 나만 보여주려 한다. 주변에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솔직한 마음을 보여줄 수 없었다. 그래서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도 없었다. 나의 감정을 적절하게 표현하고 상대와 나누는 방법도 모르니, 자꾸 반쪽짜리 소통만 하게 된다. 관계는 피상적인 머무르게 된다. 그래서 외로워진다.
수백 번의 '괜챃다' 끝에, 나는 이제 '힘들다'고 할 수 있다. 눈 딱 감고 했던 나의 서툰 자기 고백, '힘들다'는 말이, 누군가에겐 아무것도 아닐 수 있음을 깨달아서다. 그냥 '힘들어'라는 말 한 마디로 사람들은 나를 쉽게 동정하지도 않았고 쉽게 실망하지도, 떠나지도 않았다. 대신, 그 말은 내게 큰 자유를 가져다 주었다. 적어도 그들에게만은 내 나약함을 숨기려 아등바등하지 않아도 되었다.
아직도 '힘들다'고 말하는 게 어렵다. 그래도, 안 괜찮은 나를 '괜찮다'고 포장하며, 언젠간 그 포장이 전부 벗겨지지 않을까 걱정하기 싫다. 더 겹겹이 포장할수록 포장이 벗겨진 나는 더 작아보일테니까. 두렵지만 지금이라도 포장이 없는 나를 마주할 것이다. 초라해도 자유롭게 나로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