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자일의 배신

스타트업 출시일이 밀리는 이유

by 장수석

안녕하세요.

국가공인 기술지도사이자 국제 PMP(프로젝트 관리 전문가), 국제 ACP(애자일 실행전문가), AX 컨설턴트 장수석 입니다.


스타트업 업계에서 흔하게 들리는, 마법의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애자일(Agile)'입니다.

사실 수년전부터 애자일은 S/W 업계, 스타트업 업계를 넘어, 온갖 분야에서 차용됩니다.


"저희는 애자일하게 일합니다. 그래서 문서화된 정해진 WBS는 없어요. 코딩이 우선이고,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합니다."

현장 경험이 길지 않은 개발자 출신 대표님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제 머릿속에는 작은 알람이 뜹니다.


잠시 딴 이야기로 넘어가서 제 경험을 얘기하겠습니다.

25년전 중소벤처에서 여러 시스템을 개발하다 대기업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해당 기업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한가지였습니다. 작은 회사에서 시스템과 프로세스가 없이 개발을 하다보니 '관리 체계'에 대한 부족함이 너무 크게 느껴졌고, 업계 선배들에게 물어서 '관리'의 기업이라는 곳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체계적인 시스템을 많이 배웠지만 그 곳 역시 우리나라에 소프트웨어 개발의 체계성은 덜 잡혀있었고, 운이 좋게 그 시스템의 발전을 중심에서 겪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너무 관리가 지나친 '시스템' 과 '프로세스'가 만들어졌고, 나중에는 이를 극복하고자 '애자일'을 도입하는 시도를 하기도 했습니다. (정확히 애자일 탄생의 히스토리와 일치하지요)

거두절미 하고, 저는 '체계없는 시스템'과 '견고한 시스템'을 겪었고, '애자일'의 실패도 겪었으며, 소규모 사업부에서 '테일러링 된 견고한 시스템'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난제를 극복하고자 쳬계적인 이론을 공부하여 PMP와 ACP 자격을 얻었습니다.


그런 제가 확실히 말씀드리는데, 계획 없는 무질서를 '애자일'이라는 멋진 단어로 포장하는 순간, 그 프로젝트의 출시일은 영원히 오지 않습니다.


1. 무계획을 '유연함'으로 착각하기

스타트업은 자원(시간과 돈)이 극도로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애자일하게 움직여야 한다는 명제 자체는 맞습니다. 하지만 애자일은 '내 마음대로 요구사항을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진짜 애자일은 철저하게 통제된 시간(Timebox)안에서,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부터 잘라내어 실행하는 '심플하고 타이트한 규칙'입니다. 마일스톤이나 최소한의 WBS없이 "일단 개발"하는 것은 유연한 것이 아니라 그냥 지도와 핸들없이 액셀을 밟는 것입니다.

열심히 개발은 하는데, 방향은 산으로 가거나, "기능 추가하려면 구조를 처음부터 다 엎어야 하는" 절망적인 상황이 올수도 있습니다.


2. 잦은 변덕을 '피봇'으로 착각하기

스타트업은 피봇에 오픈되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스크럼을 지킨다고 잦은 변경을 허용하는 것은 애자일이 아닙니다.

'어제 멘토님이 이 기능이 트렌드라고 하셔서 기획을 다시 했습니다.' '유저 한명이 이 기능이 불편한거 같다고 해서 UX를 변경하고 있어요.'는 피봇이 아니라 '방황'입니다.

피봇이란 단어는 농구 기술에서 왔습니다. 축이 되는 한발은 땅에 고정하고, 다른 한발을 움직여 방향을 전환하는 기술입니다. 굳이 이 단어가 차용된 이유는 고전적인 프로젝트 방식에서는 방향의 전환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고정된 축의 발은 '회사의 본질적인 비전' 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피봇은 대부분 'MVP' 라는 것이 고객에게 전달된 이후여야 합니다.

스타트업의 최대 리스크는 '시장 출시 지연(Time to Market)'이며, 시장의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시간을 늘리는 일은 최대한 막아야 합니다.


3. 코딩 속도가 아닌 '시장 피드백 속도'를 높여라

애자일은 '빠르게 코딩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목표나 피드백없이 많은 코드를 '빠르게' 구현해 나가는 것은 마치, 수험생이나 취준생이 헬스장에서 에너지를 다 쓴 후 '오늘도 열심히 살았네' 라고 착각하는 것과 같을 수 있습니다.

애자일 방법론의 핵심은 '개발자의 코딩 속도'를 높이는 것이 아니고, '시장의 피드백을 수용하는 속도'를 높이는 비즈니스 전략입니다.

'기민하게 움직이는'것은 현상일 뿐이고, 근본적인 목표인 '고객에게 좋은 결과물을 전달'하는 것이라는 것을 잊지 마셔야 합니다.


스크럼이나 린과 같은 하나의 방법이 '애자일'도 아니고, 형식이 없는 '변경'이 애자일도 아닙니다.

애자일 선언문의 의미를 항상 잊지 마시길 당부드리며 이번 글을 마칩니다.

작가의 이전글"개발만 잘하면 창업은 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