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을 떠나온 지 7년 만에 드디어 엄마의 정원이 생겼다. 이 정원에 아들 꽃과 딸 꽃들이 자라났다. 그리고 나란 꽃도 피기 시작했다. 엄마의 정원은 꽃들만이 아닌, 우리 가족의 사랑과 시간이 쌓여가는 소중한 터전이었다.
어린 시절, 내가 자라난 곳은 충청남도 논산군 벌곡면 수락리였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작은 마을. 가을이 되면 동네마다 쌓이는 볏짚 더미, 어머니들이 정성껏 말리던 감. 내 기억 속에 그려진 그 마을은 추수 끝에 새 지붕을 입고, 탱자나무 담이 둘러싸인 아담한 초가집이었다. 감나무와 호두나무가 뒷마당에 자라나 아침이면 떨어진 열매를 주우러 다녔고, 높은 지대에 있어 동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풍경이 펼쳐지곤 했다. 그곳은 우리 가족의 작은 천국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중학교 2학년이 될 때까지, 11년을 보냈다.
아버지는 초등학교 교사였다. 당시, 농업이 주된 생계였던 동네에서 ‘선생님’은 나름의 대접을 받는 직업이었다. 아버지는 존경받는 존재였고 나는 늘 아버지의 명성 아래 자랐다. 어딜 가나 ‘선생님 딸’이라는 말과 함께 내가 해야 할 책임감이 따라왔다. 동네 아이들보다 더 예의 바르고 공부도 잘해야 한다는 무거운 기대 속에서 나는 흔들리지 않기 위해 내 자리를 지키며 성장했다.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나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큰 전환점을 맞이했다. 벌곡면에 새로 생긴 중학교에 가지 않기 위해 나는 대전 외갓집으로 전학을 가기로 한 것이다. 당시 벌곡면에 중학교가 없어 인근 진산면에 있는 중학교 입학이 기정사실이었는데, 벌곡면에 중학교가 생기면서 나는 그 학교의 첫 번째 입학생이 될 예정이었다. 벌곡중학교에 가면 운동장에서 매일 돌을 주워야 한다거나, 교실 바닥에 초를 발라 광을 내야 한다는 뜬소문들이 돌곤 했다.
이런 풍문 속에 초등학교 6학년 무렵, 주변 친구 중에도 대전으로 전학 가는 아이들이 하나둘 생겨났다. 내 옆집 단짝 친구네는 아예 대전에 집을 사서 자식들 모두를 전학시키고, 할머니가 그곳에서 살림을 맡게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 역시 전학 대열에 끼게 되었고, 6학년 2학기부터 대전 외갓집에서의 새로운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내 인생의 또 다른 장이 열렸다. 외갓집에서의 생활은 낯설었지만, 동시에 새로운 가족과의 관계 속에서 나 자신을 발견하는 여정이었다.
대전 외갓집은 본채와 사랑채가 있는 큰 집이었다. 본채에는 외삼촌 내외와 사촌 동생이 기거했다. 외사촌 언니 둘이서 사랑채 방 하나를 사용했고, 외할머니와 나는 사랑채의 다른 방에서 함께 지냈다. 외할머니와 함께 지내던 작은 방은 나의 새로운 쉼터였다. 하지만 화장실은 여전히 나의 공포였다. 돌계단을 네댓 개 올라가야 하는 뒤뜰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폴폴 풍겨 나오는 암모니아 가스 냄새는 그나마 참을만했다. 푸세식이다 보니 끝을 알 수 없는 깊이에 빠질까 두렵기만 했고, 짐승이 나타날 것만 같은 무서움에 낮에도 화장실 가기가 꺼려졌다.
외갓집에서 2년여를 보낸 후 드디어 우리 집은 대전으로 이사를 했다. 처음에는 외갓집 근처에 전세를 얻어 살다가 7년 만에 대지 55평에 건평 20평 정도의 작은 이층 집으로 이사를 했다. 아버지와 엄마는 이 집의 작은 마당에 장독대를 만들고 고추장, 간장, 된장독을 올려두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작고 앙증맞은 엄마의 정원이 자리 잡았다. 이 정원은 단순히 꽃을 심는 장소가 아니었다. 그것은 엄마의 손끝에서 자라는 사랑의 공간이었다. 엄마는 매일 물을 주고, 때로는 비료를 주어 꽃들이 잘 자라도록 보살폈다. 그 정원 속에서 우리는 모두 각자의 색깔을 가진 꽃으로 자라났다.
아들 꽃은 엄마의 기대처럼 강하게 뿌리를 내렸고, 딸 꽃들은 서로 다른 향기를 풍기며 자라났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란 꽃도 피어났다. 엄마의 정원 속에서 나는 나 자신으로 피어나는 법을 배웠다. 엄마의 정원은 단순히 흙과 꽃들만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 가족의 사랑과 추억이 고스란히 담긴 공간이었다. 엄마는 자신의 삶 속에서 우리가 잘 자라도록 늘 손길을 아끼지 않았다. 그 정원 속에서 자라난 나는, 이제 나 자신만의 삶 속에서 또 다른 정원을 가꾸고 있다. 하지만 그 뿌리는 여전히 엄마의 손끝에 있다. 엄마가 나에게 주었던 사랑과 정성은 여전히 내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되고 있다. 나란 꽃은 그렇게 피어났고, 이제는 나 또한 누군가에게 따뜻한 손길을 전해줄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나는 엄마의 정원에서 자란 나란 꽃이다. 그리고 이제 나의 삶 속에서 또 다른 꽃들을 피워내며, 그 뿌리 깊은 사랑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