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던 엄마는 6.25 전쟁의 불안과 혼돈 속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평화로운 시절이었다면 천천히 신중하게 결혼을 준비할 수 있었겠지만, 전쟁의 소용돌이는 모든 것을 재촉하게 만들었다. 외할아버지는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불미스러운 일을 염려해 과년한 딸의 결혼을 서둘렀고, 마을 방방곡곡에 사윗감을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엄마는 꽃다운 스물세 살에 아버지를 만났다. 고모님의 주선으로 이루어진 결혼이었지만, 엄마는 신랑 얼굴을 한 번도 보지 못한 채 결혼식 날을 맞이하게 되었다.
결혼 날짜가 다가오자 동네 어른들이 짓궂은 장난으로 만들어 낸 불안한 소문들이 엄마 귀에 속속 들려오기 시작했다. “신랑이 눈 하나가 없단다”, “다리 하나가 없어서 절름거린다더라”라는 근거 없는 말들이 엄마에게 전해졌다. 물론 장난으로 퍼뜨리는 소문이라 생각했지만, “아니 그 집은 먹고살 만하면서 왜 멀쩡한 딸을 그런 병신한테 시집보낸대”라며 쉬쉬거리는 말에 어쩌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엄마의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하지만 숫기 없고 부끄럼 많은 엄마는 그 누구에게도 진실을 묻지 못한 채 밤마다 불안에 잠을 설쳤다. 그동안 꿈꾸어왔던 멋지고 당당한 신랑의 모습이 아니라, 보잘것없이 초라하고 어디든 하나가 부족하여 남 앞에 내세우기 어려울 것 같은 그런 신랑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눈앞에 그려지는 신랑의 모습은 걱정과 불안으로 흐려지기만 했다.
결혼식 날, 밤새 뜬눈으로 지새 잔뜩 부어오른 얼굴로 엄마는 연지곤지를 찍고 초례상 앞에 섰다. 억지로 떠밀려 나오는 눈물을 애써 삼키며 서 있었던 그 순간, 엄마의 마음은 불안과 걱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정말 눈 하나가 없는 사람이라면 어쩌지? 정말 다리가 하나밖에 없는 사람이라면 어쩌지? 하는 마음에 용기를 내어 슬쩍 고개를 들어 신랑의 모습을 살폈다. 초례상 건너편에 사모관대를 하고 서 있는 신랑이 보였다.
온전했다.
눈도 두 개, 다리도 두 개, 모두 멀쩡했다. 그것이면 되었다. 순간 숱한 날 동안 걱정과 불안으로 지새웠던 지난 시간이 한순간에 사라짐을 느꼈다. 멀쩡한 것만으로도 안도감이 밀려왔다. 저절로 올라간 입꼬리를 들키기라도 할까 봐 들어 올린 손을 살포시 내려 입을 가렸다. 양어깨를 부여잡은 수모(도우미)에 이끌려 절을 하고 또 하고 하면서 결혼식이 끝났다.
신방으로 들어가 아버지와 둘이 남겨졌을 때, 엄마는 아직 부끄러움에 차마 아버지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낯선 사람과 삶을 함께한다는 것이 엄마에게는 두려움이었지만, 그것을 대면할 용기는 없었다. 그렇게 사흘이 흘렀고, 엄마는 그제야 처음으로 아버지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그의 얼굴은 낯설었지만, 다정한 눈빛 속에 어떤 따뜻함이 느껴졌다.
결혼 생활이 시작되었고, 엄마는 그 삶이 행복으로 채워질 거라 믿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는 며느리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고 행복한 결혼생활을 이어갔다. 아버지 위로 네 자식을 잃고 겨우 건진 아버지이니 귀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자식 사랑은 아버지에게뿐만 아니라 며느리인 엄마에게도 이어져 엄마를 무척이나 아끼셨다. 하지만 그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할머니께서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다. 마을 사람들 사이에선 “이사를 잘못해서 귀신이 씌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엄마를 아껴주시던 할머니의 죽음은 엄마에게 커다란 상실감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그 슬픔도 잠시, 할아버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젊은 여인을 집에 들이셨다. 아버지는 사범학교에 입학하여 타지에 나가계셨고 엄마보다 늦게 시집온 새할머니의 시집살이는 엄마에게 새로운 고난을 안겨주었다.
새할머니는 단순히 엄격한 시어머니 역할에 그치지 않고, 할아버지와 엄마 사이를 이간질하기 시작했다. 할아버지 앞에서는 자신을 억울한 피해자로 만들며 엄마를 비난했고, 그럴 때마다 할아버지는 엄마에게 냉정하게 대했다. 집안일을 도맡아 하며 시집살이를 견뎌야 했던 엄마는 할머니를 잃은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새할머니로 인한 감정적 소외와 고통을 겪는 날들이 이어졌다. 하지만 엄마는 하루하루를 묵묵히 견뎌내야만 했다. 새시어머니의 혹독한 시집살이로 엄마 눈에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지만 하소연할 그 누구도 곁에 없었다.
할아버지는 충북 수안보에서 철물점을 운영하셨다. 장사 재주가 있으셨는지 꽤 큰돈을 버셨고 충북 상모면에서 세금을 두 번째로 많이 내는 분으로 상을 받으실 정도였다. 할머니는 수안보 시내에 사는 어린 여자아이를 몸종으로 두셨다. 부모가 장애가 있어 자식 공부시킬 줄도 몰라 그 아이는 한글도 모르는 채 우리 집에 들어와 할머니 시중을 들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엄마를 향한 할머니의 시집살이는 점점 더 심해졌고 몸종보다도 못한 취급을 당하며 엄마는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을 매일같이 하며 지냈다. 수많은 파도가 몰려오는 바다처럼 한 파도가 물러가면 더 큰 파도가 밀려왔고, 그 파도 속에서 엄마는 쓰러지지 않기 위해 힘겹게 버둥거려야 했다. 새할머니의 차가운 시선과 할아버지의 오해, 그리고 끝없는 시집살이는 엄마의 삶을 매일 거센 파도 속에 던져 넣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엄마는 포기하지 않고 버텨냈다. 고단한 나날이 계속되었지만, 엄마는 그 고통을 꾹꾹 눌러 담으며 자신을 지켰다.
엄마가 입버릇처럼 하던 말 “내가 살아온 얘기를 하자면 열두 권의 책으로도 부족해.” 그 말 속에는 엄마가 겪었던 수많은 고난과 눈물,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견디며 살아온 엄마의 강인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파도는 멈추지 않았지만, 엄마는 쓰러지지 않았다. 살아온 날들이 비록 고통의 연속이었을지라도, 엄마는 그 모든 순간을 묵묵히 견디며 열두 권의 책으로도 부족할 자신의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눈물로 얼룩진 페이지가 있었고, 작은 웃음이 스며든 페이지도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이야기 속에는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희망과 인내, 사랑과 헌신이 녹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