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보같았던 엄마의 팬티
“엄마! 궁상떨지 말고 이 팬티 좀 제발 버려. 배기지도 않아?”
악을 쓰는 나에게
“아직도 한참은 더 입을만한데 왜 버려. 하루종일 땅 파봐라 돈 십 원 나오나.”
라며 슬쩍 감춰버리던 우리 엄마.
엄마의 옷장 구석에 고이 접혀 있는 궁상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팬티를 보고 있으면 화가 나면서도 가슴 한편이 먹먹하다. 성한 구석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야 보일까말까 할 정도로 여기저기 꿰매고 알록달록한 천 조각들이 덧대어진 엄마의 팬티는 마치 한 사람의 인생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는 듯했다. 한 번 찢어진 곳을 꿰매고, 다시 닳아 헐렁해진 곳을 덧댄 엄마의 팬티. 그 속옷 하나에도 얼마나 많은 시간이, 얼마나 많은 수고가 묻어 있는지 그야말로 엄마의 발자취가 깃든 조각보 같았다.
어떨 때는 내 양말목으로 꿰매져 있었고, 어느 땐 내 옛날 팬티 자투리가 덧대어져 있었다. 총천연색이지만 그 어떤 화려함도 없이, 엄마의 팬티는 그렇게 무거워진 채로 내 기억에 남아 있다. 아버지의 헐렁한 메리야스를 엄마가 또 덧댔고, 어디선가 남은 자투리 천이 또 그 위를 덮었다. 실밥이 다 떨어져도, 엄마는 그것을 요리조리 꿰매어 걸레로, 발걸레로 다시 재활용하며 쉽게 버리는 법이 없었다. ‘가장의 팬티를 걸레로 쓰면 도둑이 안 든다’는 속설을 믿은 엄마는 팬티가 팬티의 역할을 다하고 다시 걸레로 재탄생되어 떨어질 때까지 꿰매고 꿰매고를 거듭했다. 이렇게 엄마의 손을 거치는 물건은 수차례 용도가 변하도록 알뜰하게 쓰임을 다하였다.
그뿐만이 아니다. 엄마의 알뜰함은 식탁 위에서도 빛이 났다. 엄마는 밥알 하나도 허투루 버리는 법이 없었다. 냉장고가 없던 더운 여름에, 쉰밥을 식혜로 만들어 내기도 하고, 여러 번 헹구어 다시 찜기에 쪄서 새 밥처럼 만드는 신공을 펼치기도 했다. 우리는 먹고살 만한데 엄마가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 볼 때마다 난리를 쳐도 엄마의 절약 습성은 그치지 않았다. 아버지와 자식들이 먹다 남긴 음식, 입다 버린 옷은 모두 엄마 차지였고, 조금씩 남겨진 것들조차 아깝다며 꿰매고 덧대며, 엄마의 인생은 자투리 인생이 되어갔고 엄마의 팬티는 세 겹 네 겹 덧대어지며 두꺼워졌다. 그 위에 또 덧대어진 엄마의 무지갯빛 팬티는 그렇게 삶의 무게를 하나하나 담아내며 무거워지고 있었고, 앉을 때 배겨 엉덩이가 아플 정도였지만 엄마는 묵묵히 감내하고 있었다. 어쩌면 엄마에게 팬티는 그저 속옷이 아니라, 당신의 인생을 버티고 또 버티며 이어가고자 했던 어떤 상징이었는지도 모른다.
매일매일 가족들을 위한 밥상을 차리면서도 정작 엄마 자신을 위한 밥상은 단 한 번도 차리지 않았던 우리 엄마. 나는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이었는지, 야채를 좋아했는지, 고기를 좋아했는지 아직도 모른다. 엄마가 사랑으로 가득 채운 밥상 덕에 우리는 늘 배부르고 행복했지만, 그 밥상에 엄마의 것은 어디에도 없었다. ‘내 새끼 입에 들어가는 것만 봐도 배부르다.’는 엄마 말이 진심인 줄 알았다. 엄마니까 희생하는 것이 당연하다 여겼는데 엄마가 되어보니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다. 엄마도 나처럼 맛있는 것이 먹고 싶고 예쁜 옷을 입고 싶었을 것이다. 엄마니까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에 모든 것을 내어 주었던 것임을 이제야 깨닫게 된다. 엄마의 사랑은 그저 기억 속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내 안에서 자라고 퍼져 내 삶을 따뜻하게 감싸고 있음을 매일 느끼며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