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을 배우는, 원예 예술촌

나의 속도

by 우먼파워

발끝이 얼어붙을 듯 시렸다. 한 걸음 내딛는 것조차 힘들었지만 마음은 이미 원예 예술촌을 향하고 있었다. 바삐 돌아가는 세상과는 다른 시간, 다른 호흡이 흐를 것만 같은 그곳에서 천천히 스며들며 여행의 맛을 느끼고 싶었다.


서로 다른 개성과 취향으로 만들어진 예술촌은, 하나의 거대한 정원 예술관 같았다. 각양각색의 세계 정원이 걸음마다 모습을 드러냈다. 이탈리아, 프랑스, 핀란드, 일본, 미국, 독일 등 각 나라의 정서와 감성이 조형물과 색감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유럽의 고즈넉한 품격, 동양의 절제된 아름다움, 북유럽의 차분한 숨결이 정원마다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다. 비행기를 타지 않고도 여러 나라를 여행하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낯선 길 위에서, 나는 나만의 리듬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어디에 이르느냐보다 어떻게 머무는가를 배우는 일, 빠르게 지나치기보다는 잠시 멈춰 숨 고르며, 마음의 속도를 느리게 맞추는 일. 진짜 여행은 결국, 내 삶의 속도를 되찾는 연습임을 깨달았다.


꽃잎이 바람에 흩날리고, 물결이 햇살에 반짝이듯, 모든 순간은 스쳐 가지만 그 안에 머무는 나의 마음만은 단단히 자리했다. 걷는 동안 나는 알았다. 세상을 보는 속도가 달라지면, 보이는 풍경도 달라진다는 것을. 남들이 앞서가도 조급해하지 않고, 나의 걸음으로 나의 길을 걷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짜 ‘여행자‘로 사는 법이었다.



푹 빠져 걷던 중 배우 박원숙씨가 운영하는 카페 ‘커피앤스토리’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스풍 건축 양식에 진파랑 간판이 어우러져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냥 지나치기엔 아쉬워 문을 열고 들어갔다. 몇 해 전 TV 프로그램에서 이곳이소개된 적이 있었다. 매력적인 분위기에 매료되어 그때부터 남해를 가슴 속에 품었다. 그리고 바로 오늘 그곳을 마주했다. 카페 안은 노랑, 민트, 진파랑이 조화를 이루었다. 배우의 사진들이 벽면을 장식했고 그녀의 이야기를 조용히 전해 듣는 듯했다. 잔잔한 음악과 은은한 조명, 그리고 창밖으로 보이는 정원의 풍경까지 더해져 카페 안은 더할 나위 없이 평화로웠다. 카페에는 우리 둘뿐이었다.


『열흘 운 년이 보름은 못 울어?』


벽 한쪽에 걸려 있는 책 표지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대학 1학년 때 만난 첫사랑, 두 남자와 세 번의 이혼, 그리고 마흔아홉을 푼수처럼 살아낸 이야기들을 담담히 써 내려간 이 책은 그녀가 자신의 지난날을 진솔하게 고백한 자전 에세이였다. 책 제목이 마치 그녀의 삶을 응축한 듯 묵직하게 다가왔다. 화려해 보이는 삶 너머, 그녀만의 시간과 아픔, 속도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진솔한 고백이 화려함보다 더 깊은 여운을 남겼다.


그렇게 감상에 젖어 있는 사이, 주문한 커피와 빵이 나왔다. 부드러운 라떼 향이 코끝을 스치자, 추위가 서서히 녹아내렸다. 고소함과 달콤함으로 허기를 달래며, 우리는 느린 시간 속에서 여유로움이 주는 작은 행복을 음미했다.


‘나는 지금, 내 인생의 어느 페이지를 걷고 있을까.’


그 물음이 계속 맴돌았다. 늘 바쁘게 앞만 보고 달리던 날들, 지나온 시간의 문장들이 문득 뒤돌아보게 했다. 누군가는 여전히 목표를 향해 달리고, 또 누군가는 잠시 멈춰 숨을 고른다. 그 어느 쪽에도 정답은 없겠지만, 오늘의 나는 잠시 쉬어가는 페이지에 머물러 있고 싶었다.


창밖엔 성난 바람이 나뭇가지를 뒤흔들었다. 오랜 침묵 끝에 무언가를 토해내려는 듯, 거센 숨결이 창틀을 타고 밀려들었다. 하지만 그 거친 바람조차 이 공간의 평화를 깨뜨리지는 못했다. 여기는 그냥 쉬어도 되는 곳, 누구도 서두르라 말하지 않고, 누구와도 견줄 필요 없는 곳, 그래서 나는 마음 편히 내 속도로 머물렀다.



삶이란 결국 완벽한 문장을 써 내려가는 일이 아니라, 때로는 비워두고, 덧붙이고, 고쳐 쓰며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라는 것을 그 순간 깨달았다. 라떼의 마지막 한 모금을 넘기며 나는 속삭였다.


“지금 이 페이지도 나쁘지 않다.”


여전히 거센 바람이 불어왔다. 오랫동안 억눌렸던 감정이 터져 나오듯, 바람은 쉼 없이 내 등을 밀어냈다. 최대한 몸을 웅크리고 바람을 견뎠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더 세차게 밀려드는 기세에 점점 중심을 잃어 갔다. 그 순간 문득 힘을 빼 보기로 했다. 어차피 맞서 봐야 버텨지지 않는다면, 차라리 그 흐름에 몸을 맡기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항을 멈추자 오히려 걸음이 가벼워졌다.


인생도 그렇다. 힘으로 안 되는 일, 애써 붙들어도 손에 쥘 수 없는 일이라면, 때로는 내려놓는 것이 지혜일지도 모른다. 포기가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 무력함 앞에서 그 현실을 받아들이는 용기가 살다 보면 더 필요할 때가 있다. 억지로 움켜쥐려 할수록 삶은 더 깊은 상처를 남긴 채 사라져 버린다. 가끔은 흐름에 자신을 맡기고 이그는 대로 사는 것도 괜찮다. 그때 비로소, 조금은 덜 아프게, 덜 애쓰며 나답게 걸어가는 길이 열린다.

그동안 붙잡고 버티느라 스스로 더 지치게 했던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삶은 내가 쥐고 있는 방향으로만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야 비로소 알겠다. 인생에 늦은 때란 없다는 것을, 그리고 지금부터 다시 나답게 살아가면 된다는 것을 삶이 가르쳐주고 있었다.


그 가르침을 곱씹으며 고개를 들었을 때,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앙상한 가지들 사이로 희미하게 봄빛이 번지고 있었다. 겨우내 잠잠하던 나무 끝에서 작은 목련 봉오리들이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나는 그 앞에 멈춰 섰다. 매서운 추위 속에서도 피어나는 생명의 기척이 나를 붙잡아 세웠다. 겨울 내내 침잠하며 품어온 생명이 이제 막 깨어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더 빨리, 더 많이, 더 앞서가야 한다고 믿었던 나와는 달리 목련은 묵묵히, 서두르지 않고 자신만의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의 바람은 나를 앞으로 밀어내는 듯했지만, 실은 내 안의 소리를 듣게 해주는 통로였다. 바람과 빛, 그리고 봉오리 하나에도 마음이 깊어지는 순간이었다. 그 짧은 멈춤이 오히려 나를 다시 걷게 해주었다.


독일마을에 왔으니 독일 음식을 제대로 즐겨보고 싶었다. 프랑크푸르트 육가공품 경진대회에서 금메달을 수상했다는 현수막을 보고 들어갔다. 붉은 지붕이 이어진 마을과 푸른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창가에 자리를 잡고 슈바이네 학센과 굴라쉬를 주문했다.




저 멀리 붉은 지붕들 사이로 노을이 내려앉고 있었다. 해 질 무렵의 바다는 왠지 어딘지 모르게 쓸쓸하면서도 묘하게 정감이 갔다.


먹음직스러운 접시 위로 시선이 멈췄다. 바삭하게 구워진 학센은 하루를 묵묵히 살아낸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운 이 요리를 보는 순간 나와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처를 감추기 위해 여러 겹의 단단한 껍질을 두르고 그 안에 내 감정들을 가두어 버렸던 나 같았다. 혹시라도 껍질이 깨져 속살이 드러날까 전전긍긍했던 내가 학센 위로 겹쳐졌다.


굴라쉬에서는 오래도록 우려낸 깊은 맛이 느껴졌다. 시간이 쌓여야 비로소 깊어지는 맛이 있듯이, 서두르지 않고 끓여낸 오늘이야말로 진짜 내 삶의 진국 같았다. 낯선 곳에서 낯선 음식을 마주했지만 그 순간 나는 오히려 낯설지 않은 나 자신과 만나고 있었다.

숙소의 포근한 공기 속에 몸을 누이자, 하루가 천천히 나에게 녹아들었다. 특별한 사건도, 거창한 일정도 없었지만, 마음이 묵직하게 채워졌다. 늘 ‘어디까지 갔는가?’를 되묻던 나였지만, 오늘은 ‘어떤 마음으로 걸었는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많이 보려고 애쓰지 않아도, 무언가를 남기려 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느리게 걸어도 충분히 도달할 수 있는 마음의 거리, 그 여백 속에서 오히려 더 깊은 나를 만나게 되었다. 오늘 하루, 나는 목적지가 아니라 방향을 따라 걸었다. 그리고 그 방향 끝에서 내 삶에 가장 어울리는 호흡을 알게 되었다.

참된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 코 끝에 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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