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마을
남해 독일마을은 바람이 쉬어가는 듯한 작은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익숙한 한글 간판들 사이로 이국적인 붉은 지붕들이 고개를 내밀었다. 오래된 엽서 속에서 봄직한 장면들이 눈에 들어왔다. 차에서 내리자, 날카롭게 날 선 바람이 사정없이 달려들었다.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을 만큼의 거센 바람이었다. 방금 도착했는데도 바람과 추위를 피할 곳이 필요했다. 바로 앞에 보이는 관광안내소로 무작정 들어갔다.
문을 여는 순간, 따스한 실내 공기와 함께 문화 해설사의 환한 미소가 우리를 반겼다. 서울에서 왔다고 하자 꽁꽁 언 우리를 보고는
예전부터 잘 알던 사람처럼 내 손에 따뜻한 입김을 불어가며 인사를 건넸다. 정말 그러게나 말이다. 이토록 매서운 바람이 기다리고 있을 줄은 상상조차 못했다.
해설사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마음을 데웠다. 남해의 첫인상은 차가운 바람보다, 낯선 이를 향한 다정한 환대였다. 어쩌면 우리가 이 여행에서 진짜로 찾고자 했던 건, 거창한 무언가가 아니라 이렇게 작고 소박한 배려와 사람의 온기일지도 모른다.
한쪽 벽에 가지런히 놓인 관광 지도를 하나 집어 들었다. 오래된 책장을 넘기듯, 해설사의 설명이 하나하나 덧붙여지며 독일마을의 이야기가 파노라마처럼 내 앞에 펼쳐졌다.
우리나라가 가난하던 1960년대, 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많은 이들이 머나먼 독일로 떠났다. 낯선 언어와 문화 속에서 땀과 눈물로 하루하루를 견디던 광부와 간호사들이었다. 고향을 그리워하며 오랜 세월 인고의 시간을 보냈던 파독 인부들은 인생의 후반을 조용히 머물고자 고국으로 돌아왔다. 이들이 정착하여 삶의 터전을 일군 곳, 그곳이 바로 남해 독일마을이었다.
해설사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니 오래전에 보았던 영화 ‘국제시장’의 장면들이 겹쳐 떠올랐다. 손에 땀을 쥐게 했던 피난길, 어린 나이에 가장이 되어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주인공 덕수, 먹고 살기 위해 결국 파독 광부를 자원했고 그곳에서 영자를 만나 사랑을 꽃피웠다. 가족을 위해 견뎌낸 그때 그 시절, 눈물과 땀으로 버텨온 굴곡진 삶의 이야기들이 해설사의 목소리를 타고 다시 살아나는 듯했다.
그 순간 오래전 꽁해 있던 내 마음도 떠올랐다. 효도 한번 해보겠다는 마음에 휴가를 내고 시부모님을 모시고 ‘국제시장’을 보러 갔었다. 6.25를 직접 겪으신 두 분이니 누구보다 깊이 공감할 것 같아 내심 기대하며 자리를 마련했다. 보는 내내 가슴이 먹먹했고, 침을 꼴깍꼴깍 삼키며 덕수의 삶을 따라갔다. 영화가 끝나고 극장을 나서며 두 분도 나와 같은 감정이었으리라 내심 기대를 하고는
하지만 내게 돌아온 대답은 뜻밖이었다.
선도 후도 없이 딱 잘라 한마디를 내뱉고는 앞서 걸어가셨다.
순간 말문이 막혔다. 너무도 의외의 대답에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남편 얼굴만 바라봤다. 어색한 분위기를 눈치챈 어머님이 한마디 하셨다.
점심을 먹는 동안에도 아무 말 없이 식사만 하셨다. 괜히 모시고 온 것 같아 눈치를 살폈고, 바늘방석에 앉은 듯 불편했다. 다시는 이런 자리를 마련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며 헤어지려는 순간,
한마디 툭 뱉고는 어머님이 따라오든 말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서가셨다. 아버님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았다. 혹시라도 내가 실수한 부분이 있었나를 곰곰이 생각해 봐도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다 훗날 어머님을 통해 알게 되었다, 영화 속 장면들이 아버님이 숨기고 싶었던 순간들과 맞물려 보는 내내 힘드셨다는 것을. 6.25 전쟁 때, 동네의 모든 청년이 군대에 끌려가자, 할머니는 장성한 두 아들을 산속 깊은 곳에 숨겼고, 막내인 아버님에게 매일 음식과 물을 나르게 시키셨다. 형들이 숨어 있는 곳은 외지고 험해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발밑이 미끄럽고, 바람이 몸을 쳤다. 들짐승이 숨어 있다가 달려들까, 간첩에게 들킬까, 한순간도 안심할 수 없는 두려움이 매일 아버님의 심장을 조였다. 가지 않으려 떼쓰면 할머니의 꾸중이 기다렸고, 조금이라도 늦으면 형들에게 야단맞기 일쑤였다. 그 지긋지긋한 전쟁의 상흔이 두려움으로 남아있는 아버님은 그 사실을 평생 꼭꼭 숨겨 두었다. 그런데 그날, 아무 방비도 없이 마주한 자리에서 그 모든 무게가 한순간에 드러난 것이다. 강인하고 무서울 게 없어 보이던 아버님의 숨기고 싶은 과거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날이었다. 그제야 나는 알았다. 아버님의 침묵은 무관심이 아니라, 들춰내고 싶지 않았던 두려움과 상처였음을.
천천히 거리를 걷다 보니, 유럽의 작은 마을에 들어선 듯, 아담한 독일식 건물들이 골목을 따라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그 조용한 풍경 너머에는 깊은 향수가 자리하고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았지만 그 시간들이 이 거리의 공기 속에 배어 있는 듯했다. 왠지 모르게 마음이 가라앉았다.
처음 44가구로 시작했던 이곳은, 세월이 흐르며 이제는 20가구 남짓만 남아있다. 조용한 삶을 원했던 몇몇은 관광지로 변한 마을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독일로 돌아갔단다. 정착과 이별을 반복하며 여전히 이곳에 남아 있는 사람들, 그들이 지키는 건 단지 집이 아니라 그들이 품고 살아온 시간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전망대에 올랐을 때, 눈 앞에 펼쳐진 풍경에 입이 떡 벌어졌다. 붉은 기와지붕들이 계단식으로 언덕을 따라 늘어서 있고, 그 너머로는 푸른 바다가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바다는 유리처럼 맑아 햇살 머금은 물결이 부서질 때마다 은빛 포말이 반짝였다. 멀리서 갈매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찬 바람을 타고 다가와, 마음 깊은 곳을 톡 건드렸다. 잔잔히 출렁이는 파도, 그리고 그 너머로 희미하게 떠 있는 섬들의 윤곽까지 모든 것이 완벽하게 어우러졌다. 바람은 차고 매서웠지만 그 풍경은 추위도 잊게 할 만큼 아름다웠다. 그 안엔 묘한 평온이 깃들어 있었다. 자연은 아무 말이 없었지만, 그러나 분명한 존재감으로 다가왔다. 한참을 움직이지 않은 채 그 풍경을 바라보았다. 오래도록 머물러도 괜찮은 자리였다.
파독 인부가 운영하는 카페를 찾아 생생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비탈길 중턱에 차를 세우고 계단을 오르자 동화 속 공주가 살았을 법한 하얀 성이 눈앞에 나타났다. 가쁜 숨을 고르자, 그 느린 걸음 끝에 작은 정원이 먼저 눈길을 사로잡았다. 잘 다듬어진 정원수와 아기자기한 소품들, 흰 벤치가 어우러진 풍경은 오랜 세월 묵은 마음의 먼지를 천천히 털어내는 듯했다. 우리는 그 정원에서 비로소 여행자의 느긋함을 되찾았다.
카페 안은 조용했고 독일의 작은 갤러리를 옮겨놓은 듯 묵직하고 아늑했다. 낡은 사진 액자와 창가에 놓인 고풍스런 양철 촛대, 독일어로 쓰인 메뉴판… 그 모든 것이 먼 시간을 건너와 이곳에서 숨 쉬고 있었다.
천천히 카페 안을 둘러보다가 창가 옆에 자리를 잡았다. 감미로운 재즈 음악이 흐르고 그 위로 색소폰의 부드러운 음색이 덧입혀졌다. 문득 작년에 처음 갔던 재즈 카페의 밤이 떠올랐다. 심장을 조였다 폈다 하던 연주에 몸을 맡긴 채,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리듬을 타던 그날이었다. 무대 위의 연주와 노래가 관객들의 혼을 빼놓았고 내 머릿속에는 그저 ‘미쳤다’라는 감탄뿐이었다. 젊은이들로 가득한 그곳에서 예순의 내가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2부 공연까지 즐겼다. 낯설지도 쑥스럽지도 않았고 모처럼 내 안의 생기가 다시 깨어나는 듯했다. 오늘 이곳에서도 그날의 기분을 다시 느껴보고 싶었다.
하지만 이상했다. 도착한 지 십 분이 훌쩍 넘었는데 아무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사람의 인기척이라곤 없이 오직 재즈 선율만이 잔잔히 흐르고 있었다. 여러 번 주인을 불러보았지만, 대답이 없었다. 아무도 없는 카페에 마냥 앉아 있을 수가 없어 조용히 일어섰다.
여전히 찬바람은 날이 서 있었다. 광장에 맥주 배럴을 가득 실은 자동차가 눈에 띄었다. 이곳에서는 세계 3대 축제 중 하나인 독일 뮌헨의 옥토버 페스트를 본떠 매년 10월, 맥주 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해마다 가을 햇살 아래 10만 명이 넘는 관광객들이 몰려들어 조용한 바닷가 마을을 들썩이게 만든다니, 그 풍경만으로도 충분히 상상할 만했다.
여행이란 보고 듣고 느끼며 인생이라는 수첩에 한 페이지를 기록해 가는 일이다. 내 수첩에 어떤 내용을 써 내려갈지, 어떤 마음을 담을지, 이곳에 서서 걸음을 돌아보았다. 오늘 여행이 일깨워준 것은 서두르지 않고 내 속도를 지켜내는 것, 그 느림 속에서 비로소 진짜 나를 만나게 된다는 사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