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록도 수탄장
물살처럼 흘러가는 시간 속에도,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있다. 그 상처는 소리 없이 존재하며, 때로는 섬 하나를 품은 채 고요히 숨 쉬고 있다.
지도 위에 점처럼 찍힌 이 작은 섬은 오랜 세월 병과 차별, 고통과 고독을 끌어안으며 존재해 왔다. 누군가에게는 끝이었고, 누군가에게는 유일한 시작이었다. 멀리 떨어져 있다는 이유로, 병들었다는 이유로, 세상은 이곳을 망설임 없이 밀어냈다. 그러나 외면당한 그 시간은 사라지지 않은 채, 바람이 되고, 침묵이 되어 이 땅 어딘가에 스며들어 있었다.
그 섬을 향해 가는 길은 깊게 뿌리내린 인간의 아픔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나로 제2대교에 들어서자 거센 강풍이 차창을 때리며 정신없이 포효했다. 매서운 바람에 차가 사방으로 흔들렸다. 다리 위를 지나는 내내 롤러코스터를 타듯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 긴장의 시간 끝에 넓게 펼쳐진 갯벌과 동백나무 가로수가 길을 안내했다.
섬 어귀에 이르자, 직원 한 분이 직접 마중을 나왔다.
“오늘 바람이 많이 붑니다. 따뜻하게 입고 다녀오세요.”
바람 때문에 뜻하지 않게 직원의 관심을 받으며 둘러하게 되었다.
텅 빈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문을 열려 했지만, 바람에 꽉 붙잡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한참을 씨름한 끝에 가까스로 문을 열고 한 발을 내디뎠다. 순간 상상도 못한 칼날 같은 바람이 온몸을 파고들었다. 옷을 단단히 껴입었다. 평소에도 추위를 타 겹겹이 챙겨 입는 편이지만, 오늘만큼은 차원이 달랐다.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뼈를 에는 듯한 추위 앞에서 스타일이나 체면은 이미 사치였다. 목 티 위에 경량 패딩을 입고 그 위에 짧은 패딩, 그리고 또 롱 패딩까지 껴입었다. 패딩만 무려 세 겹을 걸쳤지만 지퍼가 무리 없이 잠겼다. 평생 마른 체형으로 살면서 통통한 사람들을 은근히 부러워했지만, 이 순간만큼은 날씬한 몸이 이렇게 유용할 줄은 몰랐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목도리와 마스크로 얼굴을 꽁꽁 감쌌다. 눈만 겨우 드러낸 채 다시 차 문을 열었다. 하지만 한 발짝 내딛는 순간, 바람에 몸이 뒤로 밀렸다. 세 겹의 패딩 사이로 무서운 한기가 파고들었고, 몇 걸음 떼어보려 했지만, 한 걸음도 버거웠다. 이대로 몇 백 미터 남짓 떨어진 소록도박물관까지 걸어가는 것은 불가능이었다. 앞으로 나아가려 할수록 몸이 점점 뒤로 밀렸다. 결국 내일 다시 오기로 하고 발길을 돌렸다.
그런데 하필 수탄장의 안내 표지판이 바람 속에서도 눈에 들어왔다. 맹추위로 몸은 점점 굳어갔지만 그대로 발걸음을 멈추었다. 이곳은 한센인들과 감염되지 않은 아이들이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한 달에 한 번 만나던 장소였다. 한 달 만에 만났건만 서로 만져보지도, 안아보지도 못한 채 애타게 이름을 부르며 목 놓아 울어야 했던 곳, 눈물과 탄식만이 가득했던 그 자리, 바로 수탄장이었다.
그들은 얼마나 그 순간을 기다렸을까. 만남을 앞두고 벅차게 요동쳤을 마음, 가까이 있지만 결코 다가갈 수 없는 거리, 정해진 날이 아니면 만날 수 없던 현실 앞에서 흰옷과 흰 수건으로 감싼 채 마주한 오분 남짓의 시간은 얼마나 애틋했을까. 그 짧은 만남 속에서 쏟아냈을 그리움과 아쉬움, 절규의 눈물이 떠올라 가슴이 저릿했다. 수탄장의 표지판을 보는 순간, 이곳에 온 이유를 찾은 듯했다. 말없이 서 있어도 그들의 아픔과 애환이, 삶의 무게가 느껴졌다.
가슴이 먹먹해 쉽게 돌아설 수가 없었다. 추위는 활개를 치며 더욱 기세등등 달려들었다. 몸을 녹일 겸, 그리고 마음 한켠에서 올라오는 호기심을 달래고 싶어 관광 안내소로 향했다. 퇴근 준비를 하던 해설사가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강풍을 맞으며 먼 길을 찾아온 것이 안쓰러웠는지, 퇴근 시간을 삼십 분이나 넘기면서까지 소록도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소록도가 세워진 배경, 한센병 환자들이 겪었던 고통과 치유의 과정, 그리고 그 속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았던 한센인들의 여정을 들으며 가슴이 먹먹해졌다. 무서운 강풍 탓에 소록도를 돌아보지는 못했지만, 해설사가 들려준 이야기만으로도 가슴은 충분히 아프고 저렸다. 내일 아침, 다시 와서 그들의 삶과 아픔을 들여다보고 싶어졌다.
이번 여행에서 소록도를 포함시킨 이유는 남편의 어린 시절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서였다. 여수 돌산도와 함께 꼭 가보고 싶다던 곳, 소록도. 그곳은 그의 어머니, 즉 나의 시어머니께서 어린 시절 바라보며 가슴에 품었던 풍경이었다.
이 말은 남편의 마음에 오랫동안 남아 있었고, 이번 여행에서 그 아름다움을 직접 확인하고 싶어 했다.
어머니는 녹동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생계를 위해 늘 바빴던 부모님 대신 동생들을 돌봐야 했던 칠 남매의 맏이였다. 어린 나이에 가장 아닌 가장이 되어 동생들을 먹이고 입히고 업어 키워야 했던 어머니는, 지치고 힘들 때면 바람을 쐬고 싶었지만, 마음대로 밖에 나갈 수가 없었다. ‘문둥이들이 어린아이 간을 빼 먹는다.’는 무시무시한 소문이 떠돌았고, 그 말은 어머니의 발걸음을 움츠러들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다 건너 보이는 소록도는 너무나 아름다웠다고 했다.
어머니의 기억을 끝까지 간직하고 싶어 하는 그의 마음이 이해되어 이번 여행에 소록도를 더했다. 그리고 소록도와 가장 가깝고 어머니의 어린 시절이 깃든 녹동에 숙소를 잡았다.
나는 그 추억의 길을 따라 걸으며 어린 어머니가 바라보았을 바다와 바람, 그리고 그리움을 조용히 떠올렸다. 시간이 지나도 바래지 않는 마음의 흔적 속에서, 나 또한 그 애틋함을 느끼며 한 걸음 한 걸음 마음을 따라갔다.
바람에 실려 온 기억과 오늘의 내가 마주하는 순간, 마음 한켠이 서늘하게 요동쳤다. 멀리 떨어져 있지만 서로를 이어주던 바다, 그 위로 스며든 햇살과 바람, 그리고 잊히지 않은 그리움이 내 안에서 조용히 퍼졌다.
그렇게 우리의 여행은 끝까지 감동과 여운으로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