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록도 박물관
소록도의 아침은 어제보다 한결 조용했다. 바람은 숨을 죽였고, 파도 소리도 낮게 깔렸다. 마리안느와 마가렛 전시관을 나와 다시 소록도박물관으로 향하는 길엔 평온한 풍경이 펼쳐졌지만 마음은 더 무겁게 가라앉았다. 처음엔 고요함이 주는 안락함만 느꼈다. 그러나 이곳의 역사를 알고 나니, 침묵 속에 감춰진 상처와 아픔이 점점 또렷해졌다. 돌 하나, 나무 한 그루, 바닷바람 하나에도 말로 다 담을 수 없는 깊은 상처와 아픔이 숨어 있었다.
이곳은 한때 세상의 끝이었다. 나병에 걸렸다는 이유로 사람들은 가족과 삶에서 도려내졌다. 그들이 이곳에 도착한 것은 살아남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지워지기 위해서였다. 누구도 원하지 않았고, 누구도 가지 않으려 했던 외딴섬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곳에서 인간다움이 무엇인지를 다시 배웠다. 세상이 버린 자리에서조차 사람들은 여전히 사람으로 남기 위해 서로를 붙잡고 일어섰다.
소록도 박물관에 들어서자, 시간이 거꾸로 흐르며. 한센인들의 고단한 삶이 흔적이 되어 감돌았다. 낡은 목발과 휠체어, 손때 묻은 교과서, 바랜 사진 한 장까지 모두가 시간의 궤적이자 고통의 증표였다.
어제 만났던 해설사를 박물관에서 다시 만났다. 낯익은 얼굴이 반가워 자연스레 뒤를 따랐고 어제 미처 듣지 못했던 이야기를 마저 들을 수 있었다.
나는 한 벌의 바지저고리 앞에서 발을 멈췄다. 그것은 한 어머니가 아들의 결혼을 위해 정성껏 만든 결혼 예복이었다. 어머니는 직접 누에를 길러 명주를 짜고, 손수 한 땀 한 땀 바지와 저고리를 지었다. 그 옷을 입고 아들은 결혼식을 올렸다. 그러나 결혼 1년 만에 그는 한센병에 걸렸고, 결국 소록도로 보내졌다. 신부도 떠났다.
그러나 어머니는 아들을 포기하지 않았다. 아들이 보고 싶어 그 옷을 들고 소록도를 찾았고 바지저고리를 건네고는 울며 돌아갔다. 아들은 끝내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유리 진열장 속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그 옷은, 눈물로 지어진 사랑의 흔적이었다. 발길이 차마 떨어지지 않았다. 한 땀 한 땀에 스며든 기다림과 눈물, 그리고 이루지 못한 사랑의 무게가 공기 속에 스며 있었다.
이곳에 살던 사람들은 병보다 차별이 더 두려웠다. 육체의 통증보다 더 깊은 상처는 세상의 외면이었다. 손가락이 굽고, 코가 문드러지는 고통보다 더 깊은 상처는 사람들의 시선과 멀어져야만 했던 현실이었다. 마을에서 쫓겨나고, 가족조차 외면한 그들에게 세상은 너무나 가혹했다. 이제는 한센병이 치료 가능한 병이 되었지만, 오랜 세월 동안 쌓여온 편견은 여전히 존재하고, 상처는 아물지 않은 채 남아 있다.
아름드리나무가 늘어선 중앙공원에는 수십 년 된 소나무들이 군데군데 껍질이 벗겨진 채 바람을 맞고 있었다. 일본이 군수물자로 쓰기 위해 송진을 빼앗아 가느라 생긴 상처였다. 이곳에서는 사람뿐만 아니라 소나무까지도 수탈당하고 고초를 당해야만 했다.
환자들이 맨손으로 일군 중앙공원에는 소나무, 향나무들의 우아한 모습과는 달리 한센인들의 눈물과 고통을 머금고 있었다.
공원 안쪽, 낡은 건물들이 한적한 바람을 맞고 있었다. 검시실과 감금실.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서늘해지는 그곳은, 한때 인간이 인간을 가두고 절망을 강요하던 장소였다. 도망쳤다는 이유로, 시키는 일을 거부하고, 몸이 아파 강제노역에 나가지 않았다는 이유로 수많은 한센인들이 이곳에 감금되었다. 그들에게 감금실은 생과 사의 경계였다. 어떤 이는 다시 나가지 못했고, 또 어떤 이는 씨를 말리는 단종(斷種)의 비극을 겪어야만 했다. 허름한 벽돌 틈새마다 스며든 신음과 울음은 지금도 공기를 흔들 듯 서늘했다. 그들이 느꼈을 두려움을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지만, 그 침묵의 벽은 분명히 말을 하고 있었다.
단지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마음 하나뿐이었는데 세상은 그 소박한 염원마저 폭력으로 짓눌렀다.
구라탑이 하늘을 향해 솟아 있었다.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일구어낸 사람들의 상징이었다. 완치된 한센인들이 새로운 삶을 위해 시작한 오마 간척 사업, 소록도로부터 6킬로미터 떨어진 오마도를 중심으로 펼쳐진 그 대공사는 ‘살아남겠다’가 아니라 ‘다시 살아가겠다’는 다짐이었다. 대학생 133명이 봉사활동으로 함께하며 그들의 손을 잡았고, 그들의 이름이 구라탑 옆면에 새겨졌다.
현대의학이 한센병을 정복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담은 성 미카엘상이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그 빛은 더 이상 고통의 상징이 아니라 차별을 넘어선 회복과 연대의 빛이었다.
공원 한가운데는 커다란 바위가 자리하고 있었다. 정원을 장식할 거대한 바위는 수십 명의 장정이 들어도 꿈쩍하지 않았다. 옮기다 다치고, 게으름을 피우면 바로 채찍이 날아왔다. 옮겨도 죽고, 옮기지 않아도 죽는다 해서 한센인들은 이 바위를 ‘죽어도 놓고 바위’라고 불렀다.
그들은 생전에도 차별받았고, 죽음조차 존중받지 못했다. 사망 후에는 무조건 해부되었는데 그 검시실은 너무나 열악하고 초라했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 한켠이 오래도록 무거웠다.
한센인들은 세 번 죽는다고 한다. 첫 번째는 병이 발병했을 때, 두 번째는 시신이 해부될 때, 세 번째는 화장될 때라 한다. 이들이 죽고 싶은 날이 있었으니, 그날은 바로 ‘빨간날’이었다. 의사들이 쉬는 날인 토요일, 일요일, 공휴일에는 시신 해부가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그 날 죽으면 한 번의 죽음만은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햇살이 따스하게 내리쬐는 공원 위로 가만히 바닷바람이 불어왔다. 푸른 하늘 아래 수려한 정원수와 가지런히 정돈된 길, 붉은 벽돌로 지어진 단정한 집들이 평화로워 보였다. 그러나 그 단아한 외형 아래에는 말 못 할 고통과 인내가 겹겹이 스며 있었다. 손이 뭉그러지고 감각이 없어 천도가 넘는 가마 앞에서 맨손으로 벽돌을 구워내어 지었을 건물들은 아무 일 없었던 듯 잔재를 드러내고 있었다.
역사는 때때로 외면당한 이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할 때가 있다. 한센병 환자들의 이야기도 그러했다. 오해와 편견 속에서, 그들은 사회로부터 격리당했고 인권을 빼앗긴 채 긴 세월을 견뎌야 했다.
이제 한센병은 더 이상 불치병이 아니다. 감기약 먹듯이 약을 복용하면 완치가 가능한 질병이 되었다. 그러나 병이 나았다고 해서 상처가 저절로 사라지는 건 아니다. 몸은 나았더라도 마음은 여전히 회복되지 못한 채, 그들은 지금도 섬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
현재 소록도에는 약 삼백육십 명의 음성 한센인들이 남아 있다. 이들은 더 이상 전염성이 없고, 대부분 수십 년 전 치료를 마쳤지만 세상의 시선은 여전히 그들을 완전히 놓아주지 않는다. 차별은 존재하고, 상처는 아물지 않은 채 남아 있다. 절망을 이겨내며 피워낸 그들의 삶은 한순간도 가볍게 여길 수 없는 이야기다. 바닷바람에 실려 온 것은 그저 지나간 역사가 아니라, 끝내 인간으로 남고자 했던 이들의 숨결이었다. 박물관을 나서며 다시 걸음을 늦췄다. 이곳은 절망 속에서도 희망의 불씨를 놓지 않았던 사람들의 땅이었다.
여행은 결국, 길 위의 풍경을 담는 일만이 아니라, 그 풍경 속에 스며 있는 마음을 내 안에 심는 일이라는 걸 알았다. 소록도에서의 느린 걸음은 나에게 삶을 새롭게 바라보는 눈을 열어 주었다. 상처와 고통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나를 더 넓은 시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했다.
나는 다시 길을 걷는다. 시간이 흘러도 잊지 않으려는 마음 하나로, 조금 더 천천히, 그러나 더 깊고 따뜻한 마음으로. 바람에 스친 이야기 하나, 파도에 젖은 기억 하나가 내 안에서 잔잔히 숨을 쉰다. 여행이 끝나도 삶은 여전히 길 위에 있고, 그 길 위에서 나는 또다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누군가의 하루를 어루만지며 살아갈 것이다. 내가 걷는 이 길이 누군가의 상처를 덮는 바람이 되고, 함께 살아간다는 말의 무게를 잊지 않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