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을 그려 달을 드러내는 법, 홍운탁월

수필에서 ‘홍운탁월’이 필요한 이유

by 우먼파워

수필을 쓰다 보면 자꾸만 마음이 앞선다. 하고 싶은 말이 분명할수록, 전하고 싶은 깨달음이 또렷할수록 우리는 그것을 직접 말하고 싶어진다. 혹시나 독자가 놓칠까 봐, 혹시나 오해할까 봐 친절하게 설명을 덧붙인다. 그러다 보면 글은 어느새 설교가 되고, 고백은 훈계가 된다.


그러나 좋은 수필은 정반대의 길을 걷는다. 말하고 싶은 것을 곧장 말하지 않는다.

여기 ‘홍운탁월(烘雲托月)’이라는 표현이 있다. 뜻을 풀면 ‘구름을 부풀려 달을 맡긴다’는 말이다. 동양화에서 달을 드러내고자 할 때 달을 직접 그리지 않고, 그 주위를 감싸는 구름을 그려 달이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하는 기법이다. 화폭 속 달은 여백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히 그 달을 본다. 구름이 달의 존재를 증명해 주기 때문이다.


수필에서도 이 방식은 유효하다.

핵심을 정면으로 설명하지 않고, 주변의 사물과 장면, 분위기와 정황을 충분히 보여 줌으로써 독자가 스스로 의미를 발견하게 하는 것이다. 작가는 구름을 그릴뿐인데 달은 독자의 마음에서 떠오른다.


예를 들어 ‘어머니의 희생’을 말하고 싶다고 하자.

“어머니는 위대했다.”라고 쓰는 순간, 달은 사라진다. 대신 설교가 남는다. 그러나 새벽 네 시 부엌 불빛, 식어버린 국 한 그릇, 다 해진 고무장갑 같은 장면을 차분히 보여 준다면 어떨까. 독자는 스스로 '어머니의 희생'을 깨닫는다. 그 깨달음은 작가가 쥐여 준 문장이 아니라, 독자가 스스로 건져 올린 감정이 된다. 그때 글은 비로소 오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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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운탁월이 중요한 이유는 분명하다.


첫째, 교훈과 감상의 과잉을 막아 준다.

수필은 마음의 장르이지만, 감정이 넘치면 글은 쉽게 무거워진다. 설명은 많아지고, 문장은 단정해진다. “그래서 나는 깨달았다.”는 문장이 반복될수록 독자는 한 발 물러난다. 반면 보여 주기에 집중하면, 글은 담백해진다. 감정은 직접 외치지 않아도 배어 나오며 절제는 곧 품격이 된다.


둘째, 독자의 해석 참여를 이끈다.

모든 의미를 다 말해 버린 글은 다시 읽을 필요가 없다. 그러나 여백이 있는 글은 다르다. 독자는 자신의 경험을 가져와 빈자리를 채운다. 작가의 이야기 속에 자신의 기억을 포개 본다. 그 순간 글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이야기’가 된다. 홍운탁월은 독자를 수동적인 독해자가 아니라, 함께 완성하는 공동 창작자로 초대한다.


셋째, 글의 여운을 살린다.

달을 또렷이 그려 넣은 그림은 한눈에 이해된다. 하지만 구름 사이로 스며 나오는 달빛은 오래 바라보게 한다. 수필도 마찬가지다. 직접적인 문장은 즉각적이지만, 여백이 있는 문장은 오래 남는다. 읽고 난 뒤에도 문득 떠오르는 글, 어느 날의 풍경과 겹쳐 다시 생각나는 글은 대개 다 말하지 않은 글이다.


우리는 흔히 ‘진솔함’을 오해한다.

진솔함이란 모든 것을 낱낱이 고백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진짜 진솔함은 절제 속에 있다. 하고 싶은 말을 다 드러내지 않을 용기, 설명하지 않아도 믿는 태도, 독자를 신뢰하는 마음이야말로 깊은 글을 만든다.


글을 쓰다 보면 이런 유혹이 찾아온다.


‘이쯤에서 한 문장으로 정리해 줄까?’

‘혹시 독자가 못 알아들으면 어쩌지?’


그럴 때 잠시 멈춰 보자. 이미 충분히 보여 주지 않았는지 돌아보자. 장면이 살아 있다면, 감정은 스며들어 있다. 굳이 이름 붙이지 않아도 된다. 달은 구름 뒤에 있어도 빛난다.


브런치에 올라오는 수많은 글들 속에서 오래 기억에 남는 글은 대개 설명하지 않는다. 뻔한 타령을 반복하지도 않는다. 대신 한 장면을 오래 붙들고, 한 사람의 뒷모습을 천천히 따라간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에서조차 결론을 강요하지 않는다.


좋은 수필은 독자에게 숙제를 남긴다.

‘그래서 무엇을 말하려는 걸까?’가 아니라,

‘나는 무엇을 느꼈지?’라는 질문을 남긴다.


글은 다 보여 줄수록 가벼워지고, 조금 남길수록 깊어진다. 작가가 움켜쥔 주제를 끝까지 쥐고 흔들면 글은 닳아 버린다. 그러나 슬며시 내려놓으면, 그 자리에 여운이 남는다.


구름을 정성껏 그리자.

달은 독자의 생각에서 떠오를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밝히는 것이 아니라, 비추는 것이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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