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자유롭고도 어려운 글, 수필

수필을 쓴다는 것

by 우먼파워

수필은 문학의 형식 가운데 가장 자유로운 장르라고들 말한다.

형식도 없고, 분량의 제한도 없으며, 주제 역시 마음 가는 대로 고를 수 있다.


시작이 꼭 도입일 필요도 없고, 마무리가 결론일 필요도 없다.

그 자유로움 때문에 수필은 누구나 쓸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막상 펜을 들면 알게 된다. 이토록 자유로운 글이 왜 이렇게 어려운지. 오히려 자유롭기 때문에 더 어렵다는 사실을.


수필은 꾸며서 쓰는 글이 아니다.

화려한 미사여구로 삶을 포장하거나, 감정을 과장해 독자의 눈물을 끌어내는 글도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수필은 최대한 덜 꾸민 상태로, 있는 그대로의 나, 숨김없는 마음, 삶의 결이 고스란히 드러나야 한다. 그래서 수필은 기술보다 태도가 먼저다. 얼마나 잘 쓰느냐보다 얼마나 솔직하냐가 중요하다. 글을 잘 쓰려 애쓰기보다, 나를 속이지 않으려 애써야 하는 장르다.


수필을 쓰다 보면 문득 멈칫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이 이야기를 써도 될까, 이 마음을 그대로 꺼내도 괜찮을까, 스스로에게 묻게 되는 순간이다. 그 질문 앞에서 한발 물러서면 글은 안전해지지만, 동시에 힘을 잃는다.


수필은 결국 용기의 글이다.

나를 드러내는 용기, 나의 부족함과 흔들림까지도 글 위에 올려놓을 수 있는 용기 말이다. 그래서 수필에는 글쓴이의 삶과 인격이 자연스럽게 배어 나온다. 사용하는 어휘와 문장의 호흡, 자주 머무는 감정의 결에는 그 사람이 살아온 시간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수필을 오래 읽다 보면 굳이 이름을 보지 않아도 누구의 글인지 알아차리게 된다. 그것은 문체가 닮아서가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고유하기 때문이다.


사실적인 사진 스타일의 컴퓨터와 종이.png



수필은 체험에서 출발한다.

책에서 배운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직접 겪은 일, 마음에 남는 순간들이 글의 씨앗이 된다. 거창한 사건일 필요는 없다. 시장에서 마주친 노인의 뒷모습, 오래된 컵 하나를 버리지 못한 이유, 버리지 못한 메모 한 장, 문득 떠오른 어린 시절의 냄새 같은 사소한 순간이면 충분하다. 중요한 것은 사건의 크기가 아니라, 그 순간을 바라보는 나만의 시선이다. 수필가의 눈은 언제나 일상에 머문다. 사소한 것들 속에서 의미의 실마리를 발견하는 감각이 중요하다.


하지만 체험을 그대로 옮겨 적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단순한 사실의 나열은 일기에서 그친다. 수필은 그 경험을 통해 무엇을 느꼈는지, 어떤 생각에 닿았는지를 함께 건져 올려야 한다. 개인의 체험을 나만의 사유로 통과시켜, 다시 보편의 자리로 내놓는 작업. 그것이 수필의 핵심이다. 개인적인 경험을 나만의 생각으로 숙성시켜, 다시 독자의 자리로 내어놓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 지점에서 수필은 ‘나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우리의 이야기’가 된다. 좋은 수필은 읽는 이로 하여금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게 한다 “나도 그랬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게 만드는 글, 그것이 공감의 힘이다. 그래서 수필은 설득하지 않는다. 주장하지도 않는다. 다만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건넬 뿐이다.


문장의 리듬 역시 수필의 중요한 요소다.

수필은 읽히는 글이기 전에, 숨 쉬는 글이다.

짧은 문장은 생각을 또렷하게 만들고, 긴 문장은 감정을 천천히 데려간다. 이 둘이 적절히 어우러질 때 글에는 리듬이 생긴다. 문장이 단조로워지면 독자의 호흡도 끊긴다. 글쓴이는 독자의 숨결을 상상하며 문장을 고르고, 쉼표 하나에도 마음을 담아야 한다.


수사법은 수필을 더욱 생생하게 만든다.

비유와 은유, 반복과 여백은 독자를 글 속 장면으로 끌어들인다. 독자가 글을 ‘읽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함께 ‘서 있는’ 느낌을 받을 때 수필은 비로소 살아난다. 좋은 수필은 머리보다 마음에 먼저 닿고, 읽고 난 뒤에도 오래 여운을 남긴다. 한 편의 그림처럼, 한 장면의 기억처럼.


무엇보다 수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만의 목소리다.

누군가의 문체를 닮으려 애쓰기보다, 서툴더라도 나다운 언어를 찾는 일이 먼저다. 처음에는 투박하고 어색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어색함을 지나지 않고는 나만의 문장은 생겨나지 않는다. 수필은 속도를 내는 글이 아니라, 자기 속도를 지켜내는 글이기 때문이다.


수필을 쓴다는 것은 삶을 대하는 태도를 기록하는 일이다.

하루를 흘려보내지 않고 마음이 머문 순간을 붙잡아 바라보는 일. 그 태도가 문장이 되고, 문장이 다시 나의 삶을 닮아간다. 그래서 수필은 가장 자유로운 글이면서 동시에 가장 정직해야 하는 글이다.


오늘도 나는 완벽한 문장보다 진실한 문장을 쓰고 싶다. 잘 쓴 글보다, 오래 남는 글을 꿈꾼다. 수필은 나를 드러내는 동시에 나를 돌아보게 하는 자유롭지만 가장 어려운 글쓰기이기 때문이다.

keyword
금요일 연재
이전 04화좋은 문장은 설득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