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문장은 설득하지 않는다

질문을 남기는 서두, 여운을 만드는 글쓰기

by 우먼파워

독자를 머무르게 하느냐, 떠나게 하느냐는 서두에서 결정이 난다.

첫 문장을 읽고 ‘계속 읽어볼까?’라는 마음이 생기지 않으면, 그 글은 이미 독자를 놓친 셈이다. 끝까지 읽히지 않은 글의 대부분은 내용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서두에서 이미 설득을 끝내버렸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좋은 서두와 그렇지 못한 서두의 차이는 무엇일까.

그 차이는 ‘얼마나 잘 설명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말하지 않았는가’에 있다. 수필의 철학은 깊이 생각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끝까지 말하지 않아서 생긴다.


글을 쓰다 보면 우리는 자꾸 친절해지고 싶어진다. 독자가 오해할까 봐, 내 마음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을까 봐, 모든 생각과 감정을 문장 안에 쏟아붓는다.


하지만 그 순간 글은 단정해지고, 독자는 더 이상 생각할 필요가 없어진다. 말해버린 감정에는 머물 자리가 없다. 남겨둔 감정에만 여운이 남는다. 예를 들어 이런 문장을 떠올려 보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나는 폭포 같은 눈물을 3일 밤낮 동안 하염없이 쏟아냈다.”


분명 슬픈 이야기다. 하지만 이 문장은 슬픔을 이미 완결시켜 버린다. 독자는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인 뒤, 더 이상 들어갈 틈을 찾지 못한다. 그런데 문장을 이렇게 바꾸면 상황이 달라진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나는 전혀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여기에는 설명이 없다. 대신 질문이 남는다. 왜 울지 않았을까. 너무 슬퍼서일까,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울 수 없는 상황이었을까. 슬프다고 말하지 않았는데, 오히려 슬픔은 더 깊어졌다. 이것이 말하지 않음의 힘이다.

감정을 숨겼을 때 감정은 더 선명해진다. 그래서 수필에서는 다 말하려고 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말하지 말아야 할 것을 골라낼 줄 알아야 한다.

때로는 자기 감정조차 예외가 아니다. 슬펐다. 즐거웠다. 좋았다. 행복했다. 기뻤다. 맛있었다. 이 말들은 모두가 이미 알고 있는 감정이다. 다만 너무 익숙해서 독자의 감각을 깨우지 못한다. 굳이 써주지 않아도 독자는 느낄 수 있다.



수필은 감정을 붙이는 글이 아니라, 감정이 스며들게 하는 글이다.

서두의 역할은 감정을 설명하는 데 있지 않다. 서두는 글의 분위기를 만들고, 방향을 암시하며, 무엇을 말하려는지 일부러 숨겨두는 자리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드러내면 독자는 더 읽을 이유를 잃는다.

좋은 서두를 가진 글은

“이 글은 이런 이야기입니다”

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묻는다.

“당신은 이 장면을 어떻게 느끼나요?”

그래서 서두에는 늘 약간의 불친절이 필요하다. 다정하지만 과하지 않은 거리감. 설명하지 않고 멈추는 용기. 그 멈춤의 자리에 독자는 자신의 기억과 감정을 놓고 간다.


반대로 나쁜 서두는 대개 설명으로 시작한다. 상황을 정리하고, 이유를 밝히고, 감정을 해설한다. 변명이나 불평으로 문을 여는 경우도 많다.

“사실은 이런 사정이 있었고”,

“요즘 너무 힘들어서”,

“어쩔 수 없었지만”.

이런 문장들은 작가의 마음을 먼저 풀어놓을 뿐, 독자의 마음을 초대하지는 않는다. 누구나 부정적인 것보다 긍정적인 것을 좋아해서가 아니다. 설명은 독자를 구경꾼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사전적 정의나 교훈으로 시작하는 서두도 마찬가지다. 이미 알고 있는 말, 교과서에서 본 문장들은 독자의 발걸음을 붙잡지 못한다. 좋은 서두에는 몇 가지 공통된 조건이 있다.


첫째, 단문으로 시작한다. 문장이 짧을수록 독자의 마음은 빨리 열린다.

둘째, 호흡이 편해야 한다. 서두를 소리 내어 읽었을 때 숨이 막히거나 중간에 쉬어야 한다면

그 문장은 이미 길다. 독자는 숨이 차는 글 앞에서 멈춘다.

셋째, 명시하지 않는다. 수필은 말하는 문학이 아니라 남겨두는 문학이다. 남겨두어야 독자는 생각할 시간을 갖는다. 명시는 독자를 수동적으로 만들고, 암시는 독자를 참여하게 만든다.

넷째. 인용문을 사용한다. 작가가 길게 말하지 않아도, 한 문장이 글의 방향을 단번에 보여준다. 특히 서두에서의 인용은 독자를 설득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독자의 생각을 흔들어놓는 역할을 한다.

법정스님은 이렇게 말했다.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이 문장을 처음 읽는 순간, 독자는 멈칫한다. 무소유는 비움이고 포기이며,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 삶이라고 믿어왔기 때문이다. 그 통념이 이 한 문장으로 부정된다. 그리고 독자의 마음에는 자연스럽게 질문이 생긴다.

그렇다면 무소유란 무엇일까. 좋은 서두는 바로 이 지점에서 힘을 가진다. 익숙하다고 믿었던 개념을 뒤집어 독자의 선입견을 흔들고, 새로운 정의의 문 앞에 세운다.


몽테뉴의

“좋은 문장은 독자를 설득하지 않는다. 독자가 스스로 고개를 끄덕이게 할 뿐이다.”

이 말이 서두에 놓이는 순간, 독자는 이미 고개를 끄덕일 준비를 한다. 정답을 주지 않고 대신 함께 생각하자는 글이겠구나 하고 마음을 연다.


밀란 쿤데라는 또 이렇게 말한다.

“문학은 대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남긴다.”

이 문장은 서두의 역할을 정확히 말해준다. 서두는 질문을 던지는 자리다. 결론을 알려주는 곳이 아니다. 여운을 남기고, 생각할 거리를 남기고, 독자가 한 걸음 더 들어오게 만드는 문장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다만 인용은 장식이 되면 안 된다. 멋있어 보이기 위한 문장, 아는 척하기 위한 문장은 서두를 무겁게 만든다.


좋은 인용은 글 전체의 방향을 암시하고, 나머지 문장들이 흘러갈 길을 미리 보여준다. 그래서 서두의 인용은 길 필요도 많을 필요도 없다. 한 문장이면 충분하다. 그 한 문장이 통념을 흔들고 질문을 남길 수 있다면 독자는 절대 떠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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