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의 시간
수필은 단순히 글을 잘 쓰기 위한 연습이 아니다. 그건 나를 들여다보는 가장 정직한 방법이고 삶을 천천히 되새기는 태도이다. 수필을 쓴다는 것은, 하루를 그냥 흘려보내지 않겠다는 다짐에 가깝다. 말로는 끝내하지 못한 마음을 문장으로 건너 보내고, 그 과정에서 나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일이다.
우리는 매일 수없이 많은 생각을 품고 살아간다. 그러나 그 생각들이 무엇이었는지, 어떤 감정에서 비롯되었는지는 알지 못한 채 지나친다. 마음속에 쌓인 감정은 깨우쳐주기 전까지 막연한 무게로만 남아있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순간, 생각은 비로소 자신의 얼굴을 드러낸다. 수필은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말들, 변명하지 않아도 되는 감정들을 가장 솔직한 모습으로 종이 위에 얹어놓는다.
수필을 쓰기 시작하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진다.
늘 지나던 골목에서 문득 발걸음을 멈추게 되고, 무심히 들렸던 한 마디 말이 오래 마음에 남는다. 커피잔에 내려앉은 빛, 버스 정류장에서 들려온 낯선 한숨, 창밖으로 스쳐 간 오후의 그림자 같은 것들도 다시 바라보게 된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수필은 사물을 한 번 더 바라보게 하고, 그 안에 숨은 의미를 조심스럽게 끄집어내게 한다. 관찰은 곧 사유가 되고, 사유는 나만의 시선을 만든다. 창의성은 특별한 재능이 아니라, 이처럼 일상을 쉽게 지나치지 않는 태도에서 자란다.
수필은 삶을 되짚는 일이다.
바쁘다는 이유로 외면했던 감정들, 시간 속에 묻어두었던 기억들이 문장 사이에서 다시 숨을 쉰다. 글을 쓰며 나는 묻게 된다. 그때의 나는 왜 그렇게 흔들렸는지,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었는지, 그리고 지금의 나는 어떤 방향을 향해 서 있는지.
수필은 과거를 미화하지도, 현재를 재단하지도 않는다.
다만 한 사람이 지나온 시간을 있는 그대로 기록한다. 그래서 수필은 한 편의 글이면서 동시에 한 사람의 성장 과정이 된다.
문장을 다듬는 일은 삶을 다듬는 일과 닮아있다. 불필요한 말을 덜어내고, 끝내 남겨야 할 문장을 골라내는 과정 속에서 글쓰기의 힘은 자라난다. 수필을 꾸준히 쓰는 사람은 어떤 글 앞에서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자기 언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언어는 논설문이 될 수도 있고, 다른 장르의 에세이로 확장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뿌리는 언제나 수필에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수필을 쓴다. 더 잘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진실해지기 위해서. 흘러가 버릴 하루를 붙잡아 의미라는 이름으로 남기기 위해서. 수필은 나를 드러내는 글이 아니라, 나를 다시 나에게 데려오는 길이다. 말로는 끝내 건너지 못한 삶의 순간을 문장 하나에 실어, 끝내 나 자신에게로 돌아오게 하는 가장 느리고도 가장 정직한 귀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