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두의 미학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마음이 불편했다. 글은 천천히 읽히고, 천천히 스며드는 것이라고 믿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곱씹을수록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 문장은 글쓰기에 대한 냉정한 충고라기보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에 대한 정확한 묘사에 가깝다.
봄인 줄 알았는데 자고 일어나면 여름이 되어 있는 세상. 계절도 관계도 생각마저 속도를 재촉받는다. 잠시 멈추어 바라보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전에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야 하는 시대. 이런 시간 속에서 글은 어떤 속도로 독자에게 다가가야 할까. 느려도 괜찮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면 처음부터 붙잡지 않으면 안 되는 걸까.
이런 질문 앞에서 독서의 풍경을 떠올려본다.
2024년 대한출판문화협회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우리나라 독서 문화 실태를 보면, 연간 출판 발행 종수가 6만 4천부, 신간 발행 부수는 7천 2백만 부가 넘는다. 하루 평균 176종, 약 19만 7천 부의 책이 쏟아져 나온다. 그야말로 책의 홍수다. 종이책 독서율은 여전히 80%를 넘지만, 웹툰, 전자책, 웹진까지 합치면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읽을거리’ 앞에 서게 된다. 선택지는 넘쳐나고, 집중력은 점점 짧아진다.
이렇게 많은 책 앞에서 우리는 질문하게 된다.
‘이 중에서 나는 어떤 책을 읽어야 할까? 아니 솔직히 말해 어떤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을까?’
책을 펼쳤지만 몇 장 넘기지 못하고 덮어버린 경험이 누구나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지루해서, 뻔해서, 내 관심사와 거리가 멀어서, 혹은 문장이 너무 어려워서. 책을 놓는 이유는 저마다 다르다. 하지만 반대로 어떤 책은 유난히 손에서 놓이지 않는다. 밤을 새워서라도 끝까지 읽게 만드는 책, 그 차이는 어디에서 생길까.
대부분의 독자는 책을 집어 들면 망설임없이 맨 앞부터 읽는다. 첫 장, 프롤로그, 혹은 첫 문단. 그것이 책과 독자가 처음 인사는 나누는 순간이다. 내가 아는 어떤 분은 책을 펼치면 꼭 ‘3편’까지 읽는다고 했다. 세 편을 읽고 마음이 움직이면 끝까지 읽고 그렇지 않으면 미련없이 덮는다는 것이다. 그 이유가 인상 깊었다.
“서두가 재미있는데 본문이 재미없는 책은 못 봤고, 서두가 지리한데 본문이 뛰어난 책도 못 봤어요.”
이 말은 단순한 개인의 독서 취향을 넘어, 글쓰기의 본질을 건드린다. 결국 책을 끝까지 읽게 만드는 힘은 서두에 있다는 이야기다. 사람을 만날 때 첫인상이 오래 남듯, 글 역시 첫 만남의 인상이 독자의 마음을 좌우한다. 그 글을 계속 읽을지, 아니면 여기서 인연을 끝낼지는 대부분 서두에서 결정된다.
특히 수필은 독자를 설득하는 글이 아니다. 독자를 머물게 하는 글이다. 모든 것을 설명하려 들지 않고, 일부러 남겨두는 여백 속에서 독자의 마음이 움직인다. 슬플 때 펑펑 우는 사람보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채 울음을 참는 사람을 볼 때 더 마음이 아픈 것처럼, 수필의 미학은 바로 그 ‘덜 말함’에 있다.
그래서 서두는 더욱 중요해진다. 독자가 그 책에 머물고, 그 글 속에 오래 앉아 있게 하려면, 시작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10초 안에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면 독자는 떠나 버린다.’
는 이른바 10초의 법칙은 독자를 조급하게 만드는 말이 아니라, 글을 대하는 태도를 묻는 문장이다. 이 글을 믿고 따라가도 될지, 시간을 맡겨도 괜찮을지를 독자가 판단하게 하는 첫 순간이기 때문이다.
“시작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한 계용묵 작가의 문장과 “첫머리 한마디가 전편을 밀고 나간다.”라고 한 윤오영 작가의 문장이 오래 회자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모든 이야기는 결국 첫 호흡에서 방향이 정해진다. 특히 속도가 지배하는 시대일수록, 글은 더 단단한 시작을 요구받는다.
결국 좋은 글이란 처음부터 독자를 붙잡아 끌고, 손을 내밀어 함께 걷자고 말하는 글이다. 그 손을 잡게 만드는 힘, 그 한 줄, 그 한 문장이 바로 서두에 있다. 우리가 글을 쓰며 가장 오래 머뭇거려야 할 곳, 가장 많이 공들여야 할 곳은 어쩌면 결론이 아니라 시작인지도 모른다.
독자의 마음은 언제나, 첫 문장에서 열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