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수필을 쓰는가

수필은 어떻게 나의 이야기가 되어 우리의 이야기가 되는가

by 우먼파워

우리는 살면서 수없이 많은 말을 삼킨다.

괜찮다고 웃어넘긴 하루,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마음, 말로 하기엔 어딘가 부족하고 그렇다고 묻어두기엔 자꾸 생각나는 순간들.

수필은 바로 그 틈에서 태어난다.


수필은 자유로운 글이다. 그래서 막연히 ‘아무렇게나 써도 되는 글’이라고 오해받기도 한다. 하지만 막상 써보면 알게 된다. 수필만큼 자유롭지만, 수필만큼 쉽지 않은 글도 없다는 것을.

누군가는 수필을 ‘잘 쓴 일기’라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수필은 일기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나만의 이야기’를 쓰되, 그 안에서 ‘누군가의 마음’을 만나 마침내 ‘우리의 이야기’가 되어야 한다.

수필에는 거창한 사건이 필요 없다. 밥을 먹다 문득 스친 감정, 친구와 다툰 뒤의 서운함, 비 오는 날의 풍경, 엄마에 대한 기억... 내 이야기, 내 생각부터 천천히 풀어내면 된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썼느냐보다 어떻게 바라보았느냐다.


같은 하루를 살았어도 누군가는 그냥 지나치고 누군가는 멈춰 서서 바라본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왜 이 장면이 마음에 남았을까?’

수필은 바로 그 질문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수필에는 정답이 없다.

수려한 문장보다 투박하고 흔들린 글이 오래 남는다. 독자는 글 속에서 작가를 만나지만 결국은 자기 자신을 마주한다.

“아, 맞아.”

그 짧은 공감 한마디가 수필을 읽는 이유이자 쓰는 이유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수필은 마음 가는 대로, 붓 가는 대로 쓰는 글이다. 하지만 붓 가는 대로만 쓴 것은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날 것’에 가깝다.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돌풍적인 인기를 섭렵한 흑백요리사에서는 우리나라 최고의 스타 셰프들과 이에 도전하는 숨은 고수들이 치열한 요리 대결을 펼쳤다. 예측불허의 긴박했던 대결이 끝난 후 파이널 라운드를 앞두고 생존한 셰프들에게 주어진 재료는 뜻밖에도 당근이었다. 당근을 주재료로, 요리 무한 지옥이 펼쳐졌다. 주재료라기보다 부재료로 보통 사용되던 당근. 하지만 대결에서는 당근을 주인공으로 하여 누가 더 창의적이고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내느냐가 승부의 관건이었다.

당근은 날것 그대로도 먹을 수 있다. 하지만 데치고 볶고, 찌는 과정을 거치면 전혀 다른 맛과 가치를 지닌 음식이 된다. 손질과 조리법에 따라 평범했던 재료가 전혀 다른 요리로 다시 태어난다.

시간과 정성을 들이는 만큼 경험이라는 재료가, 사유와 다듬는 시간을 거쳐 비로소 한 편의 글이 되듯, 수필도 마찬가지다. 마음 가는 대로, 붓 가는 대로 기록한다면 그건 일기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마음을 한 번 더 들여다보고, 생각을 얹고, 문학적 장치를 더할 때 비로소 ‘수필’이 된다.

수필에는 분명한 결과 방향이 있다. 그 방향에 따라 수필은 여러 모습으로 나뉜다.


수필은 내가 겪은 이야기에서 시작되는 체험의 문학이다.

가장 흔하고, 가장 많은 사람이 쓰는 형식이다. 여행 이야기, 가족 이야기, 일상에서 겪은 작은 사건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하지만 체험 수필은 단순한 경험담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사건이 아니라 생각이다. 같은 여행을 다녀와도 누군가는 풍경을 쓰고, 누군가는 그 풍경 앞에서 느낀 마음을 쓴다. 체험 수필은 ‘그래서 나는 무엇을 느꼈는가’에 답하는 글이다.


수필은 생각이 중심이 되는 사색의 문학이다.

사색 수필은 눈에 보이는 장면보다 마음속 질문에서 출발한다. 왜 우리는 쉽게 상처받는지, 왜 나이가 들수록 속도가 느려지는지, 왜 어떤 말은 오래 남는지. 겉으로 보기엔 조용하지만 가장 깊은 울림을 주는 수필이 바로 사색 수필이다. 짧은 일상 하나를 붙잡고 그 안에서 삶을 확장해 나간다. 그래서 독자는 ‘작가의 생각’을 읽다가 ‘자신의 생각’을 떠올리게 된다.


수필은 감정이 흐르는 서정의 문학이다.

서정 수필은 시에 가장 가까운 수필이다. 문장이 짧고, 여백이 많고, 말하지 않는 부분이 오히려 많다. 풍경, 계절, 그리움, 상실, 사랑 같은 감정의 결을 섬세하게 담아낸다. 설명하지 않으려 애쓰고, 느끼게 하려는 글. 한 편을 읽고 나면 이야기보다 기분이 오래 남는 수필이다.


또한 수필은 생각을 전하고 싶은 교훈 문학인 동시에 논설적 문학이다.

어떤 수필은 분명히 말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 삶에 대한 태도, 관계에 대한 생각, 우리가 놓치고 사는 가치들. 다만 수필에서 교훈은 ‘가르치듯 말하면 실패’한다. 자신의 경험과 사유 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야 한다. ‘이래야 한다’보다 ‘나는 이렇게 느꼈다’고 말할 때 독자는 고개를 끄덕인다.


결국 수필은 하나로 모인다. 내 이야기를 쓰지만 타인의 마음에 닿는 글. 오늘 하루, 괜히 마음에 남는 장면 하나가 있다면 그것을 그냥 흘려보내지 말자. 잠시 멈춰 서서 바라보고, 왜 마음에 남았는지 묻는 순간 수필은 이미 시작되고 있다.

keyword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