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휘발성을 막기 위해 이 글을 남긴다. 소중한 경험은 기록하지 않으면 시간 속에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선릉 근처 회사에 다닐 때는 엄두도 못 냈던 평일 저녁 7시 30분 북토크를 드디어 다녀왔다. 최인아 책방에서 진행된 유현준 교수님의 신간 '공간인간' 북토크였다. 사회를 맡으신 최인아님을 직접 뵐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렘을 안고 행사장을 찾았다.
유현준 교수님은 건축을 "사람과의 관계를 디자인하는 일"이라고 독특하게 정의하신다. 이번 책 제목인 '공간인간'도 핵심 개념만을 담은 함축적인 표현이다. 두 단어 모두 '사이(간)'이 들어 있으며, 책 전체가 비어있는 공간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북토크에는 책을 읽고 온 사람과 읽지 않고 온 사람이 반반 정도였다. 많은 참석자들이 유현준 교수님의 유튜브나 TV 출연을 통해 그를 알게 되었다고 했다. 나는 책의 3분의 2 정도를 읽은 상태였는데, 초반 강연은 책의 핵심 내용을 요약해주는 시간이었다. 책에서 본 내용도 있었고, 강연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도 있었다. 개인적으로 북토크의 가장 큰 매력은 질의응답 시간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날은 특히 Q&A가 1시간이나 진행될 정도로 알찬 시간이었다.
첫 질문은 최인아님이 던지셨는데, 정말 본질을 꿰뚫는 날카로운 통찰력이 느껴졌다.
최인아: "유현준님은 여러 분야에 대한 깊은 이해와 지식이 있는데, 이 책을 쓰게 만든 근원적인 질문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이 질문은 다방면에 관심이 많은 한 사람이 왜, 어떤 의문 때문에 이 책을 쓰게 되었는지 그 동기의 핵심을 짚어냈다.
유현준: "지금까지 여러 권의 책을 냈는데, 이번 책은 이전부터 구상했던 것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작가로는 '사피엔스'의 유발 하라리나 '총, 균, 쇠'의 저자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있는데, 이처럼 한 분야의 전문가가 자신의 관점으로 세상을 해석하는 책을 쓰고 싶었습니다."
흥미롭게도 교수님은 대학 2학년 시절에 이미 "건축과 관련된 책은 앞으로 읽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그 나이에 이미 그런 통찰이 있었다는 점이 놀라웠다. 대신 다른 분야의 책을 읽으면서(많이 읽지는 않았다고 겸손하게 표현하셨지만) 항상 건축과 연결 지어 생각했다고 한다. 이것이 그의 접근법의 핵심이었다.
교수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건축을 향한 그의 진정한 사랑이 느껴졌다. 그 모습에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과연 내 일을 저만큼 사랑하고 발전시켜 왔을까?" 이제서야 나는 내가 교육 분야에 관심이 있음을 깨닫고 인정하게 되었다. 좋게 말하면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있어 여러 회사를 거쳐왔지만, 지난 회사에서는 부동산 자체보다 교육에 더 관심이 있음을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무언가를 깊이 사랑하면 세상을 바라보는 프레임이 그 대상을 중심으로 재구성되는 것처럼, 유현준 교수님은 세계사와 인류의 시작을 건축의 관점으로 풀어냈다. 그는 책의 구성을 건물의 층수에 비유하며, 아래층부터 차곡차곡 쌓아올리듯 읽어보라고 권했다. 바쁜 일정 속에서도 비행기에서 내용을 구상할 정도로 열정을 쏟았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물론 역사적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데 출판사 에디터의 도움도 있었겠지만, 그의 노력도 분명했다.
기억에 남는 또 다른 질문은 북한 개방에 관한 것이었다. 교수님은 양극화보다 더 심각한 사회문제로 계층 간 이동 사다리가 사라지는 현상을 지적하셨다. 한국이 새로운 기회를 만들려면 단순히 지방소멸의 대안으로 수도권으로 인구를 모으는 것이 아니라 영토의 확장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트럼프도 그린란드의 중요성이 증가하면서 북극 수로 개발에 관심을 보이고 있듯이, 우리에게는 북한이 이 주도권을 가질 수 있는 통로가 될 수 있으므로 통일을 통해 새로운 기회를 모색해야 한다고 했다.
이 책을 통해 교수님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AI의 등장으로 역사의 중요성을 다시 인식하게 된 요즘, 참석자들의 질문에서도 한국 사회의 미래 방향성과 해결책에 대한 갈증을 느낄 수 있었다. 분열과 같은 사회적 붕괴 조짐이 보이는 시대에, 지식인으로서 사람들과 소통하며 깨달음을 주는 역할을 해주신 유현준 교수님께 감사함을 느꼈다. 책에서 말한 것처럼, 그의 저서들이 인간을 이해하고 현재를 진단하는 데 유용하게 활용되기를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