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를 준비하며 운명에 이끌리듯 심리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지인이 xx심리상담센터에서 인턴 상담사에게 10회기 무료 상담을 받을 수 있는 이벤트를 공유해주었다.
장소를 검색해보니 회사 점심시간마다 지나가는 건물로 걸어서 5분이면 갈 수 있는 근처에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평일에는 가장 늦은 시간이 7시인데 칼퇴가 불가한 사정상 주말에 출근하는 느낌으로 회사 근처로 와야만 했다.
(후에 알았지만 요일마다 상담사님이 배정되어 있는 거라 일정을 변경하는 건 어려워보였다)
첫 상담 때 2시간이 소요될 거라고 안내해주셔서 ‘와 엄청 오래하나보다’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이것도 상담사마다 달랐다.
돌이켜보면 나의 첫 상담은 대학교에 있던 상담센터에서 있었다.
아마도 진로 고민이 많았던 4학년이 아닐까 싶다. 당시 졸업 전 마지막 한 학기를 남겨두고 휴학을 했다. 내가 좋아하는 걸 찾고 싶다는 마음으로 최대 휴학할 수 있는 2년이라는 시간을 썼다. 상담은 5번 내외로 했던거 같고 사실 크게 기억이 남는게 없다. (중간에 전화가 와서 거절하지 못하고 받았는데, 그걸로 한마디 들었던 기억만 있다)
그래서 상담의 의미를 느끼지 못하고 사회에 나왔다. 정부 기관에서 지원하는 상담 프로그램이나 정신건강의학과 정도만 알고 지냈다.
처음 상담실 문을 열고 들어가서 어렸을 때 피아노 학원 같았다. 작은 방이 여러개 있고 방마다 상담이 진행 중이었다. 기본정보를 적어 나가는데 이전 이력서에서 봤던 가족란이 있었다. 엄마, 아빠, 동생의 학력과 나이 그리고 직업까지. 이런걸 요구하는 회사는 보수적인 제조업이나 중소기업일거라며 탐탁치 않아했는데 여기서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심리상담은 첫 만남부터 이런 깊숙한 부분까지 디테일하게 물어보는구나 실감하며. 모든 단서를 최대한 끌어모으려고 하는 거 같았다. 나뿐만 아니라 내 주변 환경에 대한 것도 말이다. 자살방지서약서 같은 걸 쓸 때는 사뭇 진지해졌다. 최근 가수 휘성의 자살 소식을 들었을 때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던 기억이 났다.
그렇게 문장완성검사도 하고 상담사님을 만나게 되었다. 작은 방에서 책상을 공유하고 마주보며 앉았다. 조명은 어둡게 깔렸고 서로의 뒤 벽면에 시간을 확인 할 수 있게 시계가 있었다. 말을 하지 않았을 땐 시계소리만 들렸다. 상담사님은 여자분으로 나이가 50대 가까워보였고 후에 알게 되었는데 직장을 다니면서 상담을 공부하는 중이라 하셨다. 처음 제출했던 양식을 토대로 상담의 목표를 정했다. 이 과정에서 내가 적어낸 TCI(성격기질검사) 결과를 알고 싶다는 내용에 정말 결과만 알고 싶은 건지, 그럼 10회기 상담을 다 안해도 된다고 하셨다. 체리피커처럼 보이기 싫어서 꼭 검사결과만 듣고 싶은거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렇게 우리가 가야할 방향, 이정표부터 세워야 했다. “나의 성격과 기질을 이해하고, 진로 선택에 확신을 가진다”를 목표로 세웠다. 사실 상담을 하기 전에 진짜 내가 이걸 왜 필요로 하는지 깊게 생각하지 않고 단순히 TCI검사에 대한 호기심이 커서 신청했다. 그래서 앞 문장은 명확한데 문장을 어떻게 끝맺어야 할지 몰랐다. 고민을 하고 상담사님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온 목표였다. (하지만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아, 두번째 상담 때 상담목표를 다시 물어봤다)
그리고 TV에서 많이 본 그림검사를 진행했다. 집과 사람, 이성, 가족을 그렸다. 그리고 각각 질문에 대한 설명을 했다. 그림검사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라고 들은게 있어서 그런지 내가 그리는 게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집을 그릴 때 문이 없거나 이러면 고립된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주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상담 첫시간에도 상대의 생각이 어떨지 눈치를 보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물론 상담 환경 탓을 할 수도 있겠다. 상담사는 휴대폰 녹음에 바로 앞에서 종이에 열심히 적고 있었기 때문. 면접도 아니지만 나를 평가하는 느낌을 받았다. 이성을 그릴 때도 내가 생각하는 남성성이 이상한 방향으로 보이진 않을까? 싶었다. 문장검사에서도 마찬가지긴 했다. 단지 그림실력이 내가 표현하고 싶은대로 다 보여줄 수 없어 아쉬웠지만, 내키는 대로 쭉쭉 그려나갔다. 그림 관련해서 피드백은 받지 못했다.
이렇게 1시간이 넘어가고 나머지 40분은 나의 이야기를 했다. 첫 시간이니만큼 나의 히스토리를 이야기하는데 주로 대학 이후 직장생활에 관한 것이었다. 마치 나의 이력서를 다른 사람 앞에서 낱낱이 훑어본 느낌이었다. 그러면서 시간의 궤를 정리하며 나의 행동 패턴에 대한 제 3자의 시각, 해석을 들을 수 있었다. 나의 아킬레스건이라고 생각했던 전문적이지 않던 지난 회사 생활은 2년을 주기로 다른 영역을 넘나들고 있다. 병원 원무행정 → 해외영업 → 카페 창업 → 공인중개사 → 부동산 학원 → 현재 교육 일로 이어졌다. (그리고 다시 또 퇴사를 준비하고 있다)
나의 행적을 과거순으로 살펴보니 그동안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부분도 다시 들쳐서 보게 되더라. 이미 상처가 났다면, 어떻게 그 상처를 치료하고 대하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말뿐이 아니라 마음으로 이해한 순간이다.
나라는 사람은 끝없는 성장욕구와 호기심으로 인해 한 곳에 오래 머물지 못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는다고 시작했던 일들이 결국 반복 소모되는 과정에 지치면서, 다른 새로운 것을 갈망했다.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공백 기간에도 불안해하며 1인분의 몫을 하려고 했다. 대충 내가 이런 사람이다라는 건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타인의 입에서 들으니 다시 한번 객관적으로 정리되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