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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PLERS Jan 30. 2017

윤경양식당 돈가스

밸런스, 플레이팅, 최적의 오퍼레이션

윤경양식당을 오픈하기 전, 토요일 오전이면 아이들 발레 수업하는 와이프를 위해 망원동까지 태워다 줬다. 와이프가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동안 망원, 합정에 있는 괜찮은 카페를 찾아다니며 커피 한 잔에 독서를 하곤 했는데 그때의 여유가 가끔 그립기도 하다. 와이프 수업이 끝나면 그 동네 맛집을 찾아다니며 점심을 해결했다. 어느 날 유명한 돈가스집이 있다고 해서 찾아갔다.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정광수의 돈가스 가게’에서 돈가스를 맛있게 먹으며 우리 부부는 돈가스를 발견했다. 팔기 좋겠다!


며칠 후 돼지고기 등심과 습식 빵가루를 사다가 무쇠솥에 돈가스를 튀겨본다. 와이프 한입, 나 한입. ‘아! 맛있잖아!’ 돈가스가 너무도 만만하게 완성되었다. 나중에 음식점을 하게 된다면 돈가스를 팔아야겠다는 결심을 그때 너무도 쉽게 했다. 몇 달 후 윤경양식당 자리를 발견하고 가계약을 하고서야 본격적인 돈가스 연습을 시작했다. 처음에 너무 쉽게 괜찮은 돈가스를 만들어서 한 두 번 해보면 완벽해지겠지 하는 자만이 가득했다. 


‘고기와 튀김옷이 분리되는 현상’, ‘튀김옷이 눅눅해지는 현상’ 이 둘은 돈가스를 만들어 팔겠다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겪게 되는 문제다. 기세 등등했던 우리 부부는 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며 점점 초초해지기 시작했다. 모든 자료를 다 찾기 시작했다. 튀김에 대한 책부터 돈가스 관련 창업자들이 모여있는 카페, 심지어는 일본의 레시피 사이트인 쿡패드를 유료 결제해서 번역해가며 돈가스에 대한 공부를 했다. 


공부와 테스트 앞에 장사 없다. 결국은 팔만한 돈가스를 만들어냈다. 이제 ‘어떻게 파느냐’라는 문제가 남았다. 우리 부부가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첫째 밸런스, 둘째 플레이팅, 셋째 최적의 오퍼레이션이다. 돈가스는 크게 경양식집 스타일, 일식 스타일이 있는데 우린 기존의 스타일이 아닌 윤경양식당만의 스타일을 만들고 싶었다. 경양식, 일식 돈가스 각각의 장점을 살리며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적용하며 우리만의 스타일을 만들었다. 


첫째 밸런스. 두툼한 고기와 고슴도치 같은 습식 빵가루 그리고 와인과 캐러멜 라이즈 한 양파로 산미와 당도를 살짝 더한 데미그라스 소스를 더했다. 돈가스와 소스가 아주 헤비 하기 때문에 사이드는 산뜻하고 가벼워야 밸런스가 맞는다. 비트로 색깔을 낸 새빨간 무 피클과 양상추, 치커리 그리고 라디치오가 들어간 샐러드에 색이 없는 새콤, 달콤한 드레싱을 더했다. 여기에 멸치와 다시마 육수로 만든 된장국을 함께 서비스했다. 성수동에는 일상의 식사를 하는 고객들이 많다. 우리 부부도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밥 먹을 때 국이 필요하다. 수프로 추억을 떠올려 줄 수도 있고, 우동 국물로 운영의 편의성을 더할 수도 있겠지만 밥을 먹는다면 감칠맛과 매콤함이 살짝 있는 국이 옆에 있어줘야 밸런스가 맞다.


둘째 플레이팅. 윤경양식당이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접시와 커트러리가 아닐까 싶다. 그릇은 무조건 이뻐야 하고 포크와 나이프는 무조건 묵직해야 한다. 그리고 공간이 좁기 때문에 무조건 한 메뉴는 한 접시로 끝내야 했다. 일반 식당에서는 잘 쓰지 않는 묵직한 앤틱 스타일의 접시에 돈가스와 소스는 갈색 계열, 피클은 빨간색, 샐러드에는 초록색 양상추와 치커리, 보라색 라디치오로 뻔하지 않고 찍어서 SNS에 올리고 싶은 플레이팅을 만들었다.


셋째 최적의 오퍼레이션. 업장이 워낙 작기 때문에 중요한 것은 회전율이다. 애초에 돈가스를 주메뉴로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누구나 빠르고 쉽게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주문을 받고 돈가스를 튀겨 손님에게 나갈 때까지 10분이 채 안 걸린다. 조리시간이 짧다는 장점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서 메뉴 종류도 단 3가지로 최소화하고 함박스테이크와 소스를 공유할 수 있도록 소스를 개발했다. 밥그릇과 반찬 그릇을 따로 주지 않고 한 접시로 해결한 것 모두 최적의 오퍼레이션을 위한 것이다. 효율성을 높이며 스타일을 유지하는 것은 항상 33TABLE의 숙제다.


3살 꼬마부터 20대 연인, 4,50대 부부, 80이 넘어 보이는 노인분들까지 좁고 불편한 계단을 올라와 윤경양식당 돈가스를 찾는다. 일 년에 30,000개 정도의 돈가스를 판매한 것 같은데 너무 감사하면서도 고민이 된다. 잘하는 걸 더 잘하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더 좋은 재료, 더 나은 조리법을 찾아서 지금보다 더 맛있는, 고객들이 감동하는 돈가스를 만들어 내고 싶다. 한 동안 좋은 재료를 찾아서 마장동을 비롯 전국을 수소문하고 테스트해봐야 할 것 같다. 혹시 이 글을 보시는 분 중에 훌륭한 품질의 돼지고기(등심), 빵가루를 알고 계신 분이 있다면 주저 없이 010-4703-2408로 연락 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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