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1. 한해 마무리의 시작을 깨우는 나만의 방법은?
합평으로 한해를 시작, 소수의 사람들 앞에서 글을 낭독하고 타인의 의견과 피드백을 받았다. 쓸 때는 몰랐는데 내 손을 떠난 글은 내 것이 아니었다. 나 자신이 쓴 글인데도 낭독하기만 하면 낯선 글이 되버렸다. 혼자 썼을 때는 몰랐을 감정이었다.
낭독을 하며 사람들이 듣고 느낀 것을 전달 받으며 나의 사색에 난해한 문장을 나열함을 인지하지 못했다. 혼자 쓰고 모아놨기에 타인에게 전달되는 글의 영향력을 모르고 있었다.
‘다독 (多讀)의 위기’를 구제해 줄 ‘현재의 해결책’이라 생각한다. 거의 확신이라 주장하고 싶다. ‘책의 위기’에서 글을 읽히기 위해 여러 사람들이 모인다는 것, 서로의 글을 읽으며 의견을 나누고 비평 할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기 때문이다. 단순히 글쓰기 위한 모임이 아니다. 쓰고, 읽음으로 각자의 의견을 통해 생각해보는 시간은 ‘다작 (多作), 다상량 (多商量), 다독 (多讀)’의 의미를 되살릴 수 있다. ’책의 위기’에 심폐소생이랄까? 합평의 진정한 의미는 각자의 글쓰기 속에 독서의 선순환을 되살리는 것이겠다.
합평을 진행하며 나만의 정의를 내렸지만 스스로 낭독에 자신없었던 건 사실이다. 한번은 합평이 끝나기도 전에 집으로 간 적도 있었다. 나의 글에 힘을 주며 과시욕으로 에너지가 넘쳤다. 사람들의 말은 내 생각과는 달랐다. 이에 참을 수 없는 감정이 올라온 것이다.
여행 에세이 문집 출간 수업 첫째날, 각자 누구인지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소개를 들으며 나와는 전혀 다른 세계의 사람을 마주하는 듯 했다. 여행 전문 인플루언서, 전문 사진 작가, 여행 유튜버, 직장인, 시나리오 작가 등… 이질감이 느껴졌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떠난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세계 이곳 저곳을 여행 했어요.”
”저만의 세계 여행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요.”
”사진 작가지만 글쓰기를 해보고 싶어요.”
무슨 말을 했는지 전부 기억나지 않는다. 부분적으로 기억난 것들만 나열해본다. 어느 덧 나의 차례가 돌아왔다.
”16년째 글을 쓰고 있습니다. 홀로 전국 기차여행을 떠났고 책방 방문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뭔가 초라해 보였다. 스스로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고 괜시리 타인의 시선을 의식했다. 어떻게 말해도 나는 그저 ‘글만 쓰는 망상가’ 같았다.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혼자 망상에 빠진 듯 자유롭고 즐거운 분위기 속 이야기에 합류하지 않았다. 그냥 조용히 있었다. 20대, 홀로 떠난 첫 기차여행의 기억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화려한 여행 이력에 자신감을 상실한 첫째날에 나만의 여행 이야기에 어두운 막막함 만 드리웠다.
당시의 순간을 떠올린 글, 아주 오래전 홀로 떠난 국내여행의 기억을 되살려 보겠다며 호기롭게 도전을 했는데 시간이 지날 수록 부정적 감정만 남은 알 수 없는 이야기만 나열했다. 겨우 하나의 에피소드를 건져 올렸지만 합평 마지막날까지 기세를 이어가지 못했다. 머릿속 기억에만 의존하며 당시의 기록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 채로 방치되었다.
20대에 홀로 떠난 기차여행의 기억 짜내기가 시작되었다. 사진, 영상, 글로 작성한 것이 거의 없어 오로지 기억에 의존해야 했다. 떠오르듯 떠오르지 않는 기억에서 첫번째 에세이 1페이지 작성은 고난 그 자체였다. 첫째날의 기억을 꺼내 본다. 기차 안의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여행지를 방문한 내용이 없어 그 당시 기차 안에 있었던 나 자신의 상태를 떠올려 봤다. 정말 쉽지 않았다. 특히, 기차 안의 생각, 묘사는 두뇌의 노동력 한계를 경험했다. 머리 속이 깜깜했다. ’정말 떠오르지 않는 걸까?’ 최대한 두뇌를 짜냈다.
설레는 마음으로 떠난 기차여행, 높은 건물, 한강, 산과 천. 나를 마중이라도 하는 듯 한 장의 필름처럼 스쳐갔다. 건물의 숲에서 고요한 자연으로 향해, 멍하니 기억의 한 조각을 집어내며 산 속에 숨은 목적지, ‘언제 등장하시나?’ 복선도 단선도 아닌 게 바깥 풍경을 보는 재미도, 빨리 가고 깔끔히 정리된 선로를 지나는 재미도 없었다. 그래도 단선 구간은 바깥 풍경 보는 재미라도 있어 시골의 정겨운 모습과 산이 잘 어우러진 자연의 모습을 느끼고 있다. 철길 하나에 각기 다른 목적지, 일면식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만 들렸다. 따뜻한 온실에서 차가운 바깥 공기가 낯선 외지로 향하는 알림판이 되어주는 듯 했다. 산속에 감춰진 목적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장항역이다.
’에라 모르겠다’ 손 가는 느낌대로 썼다. 내 기준에선 잘 썼다. 근거 없는 잘씀이다. 영혼이 탈출하여 안드로메다에 다다랐다. ’괜히, 16년전 기차여행으로 주제를 잡았나…?’ 주제를 바꿔 쓸 수 있었지만 뭔가 스스로의 약속을 깨는 것 같았다. 두뇌를 짜낸 첫번째 에세이. 나름 잘 썼다 생각하며 낭독했다. 낭독이 끝난 후 몇 초간의 정적이 흘렀다. 당황했다.
’뭐지, 이 반응은?’
첫 합평에서 느낀 차가운 공기다. 스스로 나름 잘 썼다고 생각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정적만 가득한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중구난방함의 글이 몰입을 방해하여 여행의 생동감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 문제였는데 기억으로 당시의 기억을 짜내듯 썼던 것이 부작용을 일으킨 것 같았다.
어렵게 짜낸 여행의 기억을 나만의 방식으로 표현했다. 걸레의 물 한방울까지 짜내듯 그 당시를 묘사했다. 스스로 ‘나름 잘 썼다’는 생각과 ‘이렇게 써도 될까?’는 의문이 동시에 들었다. ”여러 고민을 하느니 그냥 올리자.” 스스로 글의 강한 자신감을 가지며 첫번째 합평을 기다렸다.
”글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어요.”
”부분적인 표현은 나쁘지 않은데 전체적으로 어떤 이야기를 말하는지 머리 속으로 떠오르지 않아요.” ”병렬식 구성으로 문단을 나눈 것 같은데 이를 더 강조하도록 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상당히 당혹스러웠다. 정말 어렵게 짜낸 첫번째 여행 글 인데 혹평 아닌 혹평에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순간, 자신감이 바닥을 치고 어둠의 지하로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내 글이 이렇게 형편 없는가?’
순간의 욱함에 자기 비판과 자책에 빠졌다. 글쓰기에 자의식이 강해 타인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나는 이것 밖에 안된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사실, 16년 전 홀로 떠난 기차여행의 기억은 아무런 기록이 없었다. 사진, 영상, 글 등 기억을 되살릴 것이 없었다. 순전히 나의 기억에 의존해야 했다. 좋은 글이 나올 수 없었다. 10년이 훨씬 넘은 그 당시의 여행이 어떠했는지 다시 가보지 않고 서는 ‘기억 반 왜곡 반’일 수 밖에 없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왔던 길로 다시 돌아갈 수 없었다. 미리 예매한 기차표는 변경할 수 없었다. 주변의 모든 것이 나를 적대시하는 것 같았다. 두근거리는 심장은 침착함을 잃어버렸다. 사람들의 시선을 어떻게든 피해 보려 했다. 헛수고다. ‘이대로 여기서 삶이 끝나는 게 아닌가?’ 어떤 것도 나를 구해주지 않을 것 같았다. ‘어떻게든 여기서 벗어나야 한다.’ 첫번째 합평의 느낌이다.
그랬다. 당시의 여행은 군 입대 전 홀로 떠난 국내여행으로 기차만 타고 전국을 돌았다. 관광지, 맛집, 자연 명소 등에는 관심이 없었다. 3박4일 여행 중 기차 안에만 있었던 시간은 대략 2일반 정도 되었기에 여행의 에피소드라 할 것이 별로 없었다. 사색에 의미를 찾는 것으로 추억이 아닌 내적 깊숙히 파고듬이 좋다면서 여행이지만 여행이라 하기엔 밋밋했던 그런… 느낌이었다. 현재의 시점에서 보면 그러하다.
글쓰기에 강한 자신감은 합평으로 한번에 무너졌다. 바닥을 뚫고 지하로 들어간 느낌이었다. ‘글쓰기는 내 길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었다. 처음 소개 때 오랜 기간 글쓰기를 해왔던 걸 자신있게 어필하지 못함이 내심 후회스러웠다. ‘왜 그랬을까?’ 스스로 자책 아닌 자책을 했다. 아무 기록도 없는 여행이야기를 기억에 의존해 글을 쓴다는 것. 무모할 수 있는 도전이지만 해볼 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적으로 느낀 것을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전략으로 가면 색다른 에세이가 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화려함 보다는 소소하게 여백 있는 나의 이야기가 어필되길 원했다. 시작이 좋지 못했다? 아니다! 당연한 결과다! 어디서 내가 쓴 글을 피드백 받을 수 있겠는가?! 피드백을 받아 들이며 처음 썼던 글에서 어색한 부분을 수정했다.
- 병렬식 구조로 장면을 넘기는 것은 그대로 유지
- 각 문단 별 묘사를 ‘자연-역-방황-밤’으로 진행 (정확하진 않다)
- 초고에서 내가 느꼈던 감정이 드러나게 함
- 긍정적 흐름은 아니지만 이 느낌을 끝까지 유지하도록 함
홀로 낯선 곳을 가는 경험,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경험이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지금에만 집중하도록 노력 중이다. 시간은 잠시 타이머를 멈춘 듯 천천히 흘러가는 것 같았다. 주변의 모든 것이 나를 적대시하는 것 같았다. 두근거리는 심장은 침착함을 잃어버렸다. 방황 속에서 찾은 한줄기의 빛이 나를 보호해주는 듯 안내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완벽한 글은 없다. 못쓴 글도 계속 보여줘야 문제점을 안다.
현재의 고통에서 벗어나기란 쉽다.
누군가와 함께 생활하는 공간에서 서로 소통이 안된다면 사소한 것도 고통스럽게 느껴진다.
선택을 하게 된다.
맞설 것인지, 그냥 회피해 버리는 지 말이다.
지평선에 해가 올라오기 전, 공동의 공간에서 밖으로 마주함을 피해 버린다.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 그냥 소통을 피했다.
모든 생산적 활동이 멈추는 날, 그냥 공동의 공간에 머물러 있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고요했다. 혼자만의 과민 반응이다.
내적 공간은 그대로 멈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