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으켜 세우기

Q2. 글을 쓰기 위해 나만의 일으킴은?

by 삼삼

주변을 정리하는 것. 나의 정신을 일어나게 하는 방법이다.

책상, 옷장, 스마트폰 파일들, 문서, 다이어리 기록 등등

정리되지 않으면 산만함에 집중력을 잃고 일어나지 못하게 된다.


정리되지 않음을 참을 수 없다 보니

할일 시작전 나만의 워밍업으로 스마트폰 파일 외장하드로 옮기고, 금일 캘린더를 작성한다.

이것이 끝나면 할일에 집중한다.




문장이나 글 따위를 매끄럽게 다듬음. 공감의 상실일까? 심상의 깊이로 나 자신은 보존하고 타인의 감각은 무시하는 건 아닌지 생각해본다. 나만의 문장 결이 다소 서툴러 성급한 마음과 생각이 송곳같이 쑤시는 듯 글에 구멍을 내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평소, 문학, 시나리오 보다는 인문학, 깨달음에 관심이 많아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글에 눈이 갔다. 드라마, 예능은 안 본다. ‘왜 이런 걸 볼까?’하는 정도다. 이것이 ‘조탁 부재(彫琢 不在)’로 이어진 게 아닌가 싶다.


양적인 글에 집착하여 하루라도 글을 공유하지 않으면 불안한 마음에 하루가 휘발되는 듯 허공에 떠도는 글을 잡지 못했다. 기록 안에서 글과 글의 연결 고리를 찾을 수 있는데, 고상하고 남들과 다른 표현을 무조건 넣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처음엔 탐욕이라 생각했다.


글을 쓰고 있지 않으면서 ‘질적으로 멋진 글’을 간직하고 있다고 스스로 이상한 망상을 만들어 낸 것이, 과욕으로 인한 ‘하등한 글’의 거부로 치부했다. 양적으로 매일 공유하면 해결 될 줄 알았다.


지정된 요일에 글을 연재하여 사람들의 관심을 가지게 만든다면 ‘쓰는 강박’의 한결 나아질 것이라고. 나의 완벽한 착각이었다. 글은 쓰는 사람에 따라 글의 결과 깊이가 달라지는데 쓰는 사람에 따라 글의 느낌이 달라진다는 걸 읽는 사람은 알아챈다. 반응이 없어도 그것 또한 읽는 사람의 반응이다.


’어떤 반응을 원했던 건가?’ 비상한 스타처럼 여러 사람들의 반응을 원한 건가?

무반응을 참을 수 없어 어떻게든 양적인 글을 마구 쏟아낸 것인가?


자신의 글은 자신만큼 잘 아는 사람은 없다. 이를 외면하면 ‘글 속의 방황’으로 ‘글감의 광야’에서 헤쳐 나오지 못한다. 이를 바로 잡기 위해 필요한 것이 ‘조탁(彫琢)’인가 보다.


글과 글 사이, 문장을 연결시키는 자신만의 어떤 표현, 망망대해에 허우적 거리지 않고 글 속에서 자유롭게 유영할 수 있는 도구.


수만번의 난사로 과녁을 표적을 맞추지 못한다면 남는 건 무엇이겠는가?

자신만의 강렬한 표현 한 문장. 이것을 연결시키기 위한 도구는 ‘카피라이팅’이 될 것이다.




글을 쓰기 위해 자신의 정신을 일으켜야 하는 이유다. 매일 정리해야 함은 당연하다.

정리되지 않으면 어떤 글감을 찾느라 시간을 허비하여 집중의 에너지를 빼앗아 버린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웃풋 하나 나오지 않은 건 왜일까?

자신을 믿지 못함과 쓸데없는 고집이 그 원인인데,

당장의 해결책을 찾으려 하다 보니 외부의 시선과 말에 쉽게 휘둘리게 되었다.


그냥 꾸준히 가면 되는 걸 잦은 변화로 어느 것 하나 정착된 것이 없었다.

이 과정에서 정리해놓은 것들이 다시 여기저기 흩어진다.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하나의 큰 덩어리로 모을 수 없게 되었다.


정리도 하나의 비움인데, 손에서 떠나는 비움의 작별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약 2주의 공백이다.

텅빈 글에는 어떤 연결점도 없었다.

물질적 채움으로 내적 채움에 무관심 했기 때문이다.

그저 ‘공백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이정도면 되겠지’


물질적 채움은 욕심의 끝을 모른다.

짊어 질 수 없는 무게로 매일 육체적 피곤함을 만들어 냈다.

마치, ‘이만하면 됐다’는 자기합리화로 아무 것도 안 하는 하루를 보냈다.


결국, 한계에 부딪혔다.


두뇌는 ‘이대로는 안된다’는 위험 신호를 보냈다.

즉시 경보를 울려댔다.

모든 두뇌 신호는 한 순간 멈췄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멈춰진 신호는 ‘물리적 비움’으로 해결 할 수 있었다.

나를 짓누렀던 불필요한 무게를 덜어내기 시작했다.

그 순간, 내적 채움의 시작을 알리는 움직임이 느껴졌다.


당장 움직일 수 없었다.

휴식이 필요했다.

물질적 무거움에 잠시 동안의 휴식,

두뇌가 보내는 ‘또 다른 신호’였다.


48시간이 지나고 두뇌의 움직이 재개되었다.

2주의 텅빈 글에 연결되기 위한 움직임이다.




공백은 광야이고 텅빈 공간은 정리된 비움이다.

채움에 집착하여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이 짙어진 것이다.


흩어지면 제자리를 찾게 하고,

불필요한 건 버리고 간결화 함으로,

거대한 한 덩어리를 만들어 내기 위해 지금도 나를 일으켜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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