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의 감자전

강원도에는 감자가 많이 나드래요

by 유진리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요리에 열정이 샘솟을 때다. 남편은 두부 지짐이 먹고 싶다고 했다. 두부 지짐이라니. 두부를 납작 썰어 기름에 부치거나, 부친 두부를 간장에 조려 먹어만 본 나는 남편이 주문한 음식의 정체를 파악하지 못했다. 남편 설명대로 넓적한 냄비에 콩나물이랑 두부를 넣고 조려봤는데, 너도 나도 아닌 정체불명의 두부요리가 됐다.


나중에 알게 된 시어머니표 두부 지짐의 정체는 조림과 전골 사이 그 어딘가 균형이 중요한 요리였다. 감자든 양파든 있는 야채를 납작납작 썰어 냄비 밑에 깔고 두부를 두껍게 썰어 올린 다음 어묵이 있으면 얹어준다. 간은 간장 마늘 고춧가루 깨소금으로 맞추고, 뚜껑을 덮기 전 올리브유를 휘리릭 붓는다. 전골처럼 육수를 넣진 않지만, 두부가 끓으면서 물이 자작자작 생긴다. 조림보다 물이 많은 상태가 되면 완성이다.


시어머니는 요리를 할 때 “아 이건 강릉식도 뭣도 아니고 그냥 내 식”이라면서 수줍게 웃으신다. 그 음식들은 99% 맛이 좋다. 시어머니는 한 때 한정식 집을 열까도 고민했다는데, 설득력 있는 얘기다. 시어머니 표 조리법은 재료 고유의 맛을 살린다. 표고버섯은 두툼하게 썰어 센 불에 마늘 없이 볶고, 꽈리고추 찜은 콩가루와 양념을 묻혀 한소끔만 익힌다. 고추와 마늘쫑을 잘게 잘라 절인 장아찌도 일품이고, 콩나물도 아삭아삭 맛있다. 다 맛있다. 맛이 없는 1%는 강원도에서 나는 개두릅 같은, 그냥 내가 싫어하는 음식들이다.


음식 솜씨가 좋은 사람이 흔히 그렇듯, 시어머니는 조리법을 계량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그래서 몇 분을 끓일까요?”하고 물으면, “글쎄 한 30초?” 라는 답이 돌아오지만 그렇게 하면 망한다. 그냥 어깨너머로 이리 보고 저리 보고 대여섯 번 본 뒤에, 시행착오를 몇 번 거치면 80% 정도까지는 비슷해진다.


시어머니는 아들만 줄줄이 넷인 집에 다섯째로 태어났다. 그 집 땅을 밟지 않고는 강릉 중앙시장을 지나가지 못할 정도로 금싸라기 땅을 많이 가진 유복한 집이었다. 시어머니는 결혼할 때까지 밥을 안쳐보지도 않았을 정도로 귀하게 컸다. 그래서인지, 시어머니는 “시집 와서 밥물도 제대로 못 맞춰 시어머니한테 혼났다”는 말을 자주 하신다. 결혼하기 전엔 흠이 아닌 많은 것들이, 결혼과 동시에 흠이 된다. 지금도 그때도 그렇다.


시어머니의 시댁은 성격 급하기로는 전국 1등인 집이었다. 가장 자주 나오는 레퍼토리는 ‘부침개 스토리’다. 시어머니가 나보다 어리던 시절, 시어머니의 시아버지(시할아버지)는 강원도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 아들집에 2주에 한 번씩 들르셨단다. 어느 날 “애미야, 나 출발하니 밥 해놓거라” 라고 말씀하셔서 시어머니는 오시면 따뜻한 전을 바로 부치려고 반죽을 준비해뒀는데, 신발 벗고 손 씻고 식탁에 앉은 시할아버지가 “밥 해놓으랬더니 뭐했냐!”고 호통을 쳐서 시어머니가 눈물을 쏙 뺐다는 그런 이야기다.


시어머니는 강릉, 시아버지는 삼척 분이다. 두 분 다 잘 드시지만, 그 중에서도 양으로 제일 많이 드시는 건 감자다. 강원도 식 감자전은 감자를 강판에 갈아 기름에 튀기듯이 부친다. 부침가루 같은 건 없이 오로지 감자만 넣고, 큰 접시 만하게 부쳐 인당 2장씩은 먹는다. 처음 시댁에서 감자전을 부쳤던 날 시어머니가 “감자나 부쳐 먹자”고 꺼내온 양푼에 놀랐던 걸 잊을 수 없다. 주먹 만 한 감자가 양푼을 다 채우는 걸로 모자라 산처럼 쌓여 흘러내릴 지경이었다. 시아버지는 “이 사람 무슨 감자를 이래 많이 부치나”고 투덜투덜했지만 그 감자를 부자가 다정히 앉아 다 갈았다. ‘이걸 누가 다 먹나’고 생각했던 나도 내 몫을 다 해치웠다. 감자전은 한 장도 남지 않았다.


시어머니는 항상 감자전을 한 10장쯤 부친 다음 식탁에 올린다. 아무리 와서 같이 드시라 해도 나는 괜찮다며 남은 반죽까지 다 부친다. 당신은 식구들이 먹고 남은 반찬에, 마지막 부친 감자전 2장을 드신다. 다음에는 꼭 다 부치고 나서 다 같이 먹자고 해야겠다.



<a href="https://pixabay.com/ko/?utm_source=link-attribution&amp;utm_medium=referral&amp;utm_campaign=image&amp;utm_content=1585060">Pixabay</a>로부터 입수된 <a href="https://pixabay.com/ko/users/couleur-1195798/?utm_source=link-attribution&amp;utm_medium=referral&amp;utm_campaign=image&amp;utm_content=1585060">Couleur</a>님의 이미지 입니다.

이전 04화아빠의 통밀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