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콜라

술을 못하는 당신을 위한 최고의 짝꿍

by 유진리

남편은 술 담배를 안 한다. 담배는 30대 초반까지 열심히 피웠는데, 당시 여자친구였던 내가 “담배 피우는 사람이랑은 안 만난다”고 선언한 덕분에 끊었다. (내 말이 많이 통했던 시절이었다.) 술은 못한다. 남편 집엔 알콜 분해 유전자가 드문드문 전해진다. 시할아버지 대에는 모두가 말술이었다는데, 시아버지와 남편 대에는 술 잘하는 사람이 없다. 얼마나 약하냐면, 잘 익은 포도를 먹어도 얼굴이 불그레해질 정도다. 어느 여름엔 냉장고에 열흘 정도 묵혔던 포도를 혼자 한 송이 다 먹더니 어지럽다고 했다. 멀쩡했던 얼굴이 새빨개 어처구니가 없어 한참 비웃어줬다.

술 담배를 안 하니까 심심해서 그런지 그는 커피를 많이 마신다. 커피만큼 콜라를 사랑한다. 저녁 반주로 누구는 소주를, 누구는 맥주나 와인을 시킬 때 그는 예외 없이 콜라를 주문한다. 콜라 캔이 놓이면 이미 흐뭇한 얼굴이다. 캔을 따는 경쾌한 소리, 캔 콜라를 유리컵에 따르는 꼴꼴꼴꼴 치이이익 소리에, 마시기도 전에 얼굴이 이미 청량해진다.


잠시 해외에 나가 살았을 때 나는 마트에서 탄산수를 쟁였고, 그는 콜라를 궤짝으로 사서 저장했다. 더운 날엔 더우니까 딱 따서 치이익, 과식한 날엔 소화되라고 딱, 치이익, 손님 온 날엔 술 안 먹으니까 술 대신 딱 치이익. 콜라를 먹을 구실은 매일 새롭게 생겼다. 맥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맥주 캔 세워놓듯, 빈 콜라 캔들을 줄 세워놓고 뿌듯해하기도 했다.

어떤 날은 1일 1콜라, 어떤 날은 1일 2콜라. 콜라와 즐거운 나날을 보내다 보니 뱃살도 나날이 불어났다. 왜 뱃살을 영어로 러브핸들이라고 부르는지 깨달을 정도가 됐을 때, 그도 살을 빼야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콜라는 끊지 않았다. 밀가루를 자제한다거나 밤에 좀 걷겠다거나, 밥을 덜 먹어야겠다고는 했지만 콜라는 그의 다이어트 계획에서 늘 열외였다.

남편은 오리지널을 사랑한다며 항상 C사의 오리지널 콜라만 먹는다. 그를 알게 된지 십 몇 년이 되어가지만 다이어트 콜라나 제로 콜라 등 콜라가족을 먹은 건 세 손가락에 꼽는다. 김 빠진 콜라를 싱크대에 몰래 버릴 때면 왠지 뒤통수가 따갑다.


술 대신 콜라를 좋아하는 사람과 살다보니 몇 가지 장점이 있다. 일단 콜라는 안 비싸다. 아무리 많이 먹어도 앉은 자리에서 열 몇 캔을 먹을 수도 없다. 술 마시는 게 취미인 사람과 비교하면 돈이 엄청 굳는다. 둘째, 콜라는 어디에나 있다. 아무리 비싼 레스토랑에 가도, 아무리 싼 길거리 식당에 가도, 콜라 없는 곳은 없고, 캔 콜라는 맛이 다 같다. 그야말로 전지구적인 맛이며, 실망시키지 않는 맛이다. 셋째, 콜라는 엔간히 마셔서는 절대 취하지 않는다. 내 친구들이 회식 후 술고래가 되어 들어올 남편을 걱정할 때 나는 두 다리 펴고 맘 편하게 TV를 봤다.


굳이 찾자면 단점도 없진 않다. 술을 안 마시는 사람은 골프 약속에서 인기가 좋다. 모두가 운동 후 나른한 몸으로 맥주 한두 캔씩 마실 때, 콜라만 먹는 이 사람은 자동으로 운전기사 당첨이다. 골프 약속 갈 때도 누구누구를 태워가느라 일찍 나가고, 돌아올 때도 누구누구를 내려주느라 늦게 들어오면 뱃속에서 화가 부글부글 끓는다. 같은 이유로 회식에서도 늦게 온다. 알콜에 취해 제 집을 못 찾아갈 상태가 된 사람들을 수습해 택시 태워 보내고, 술자리에 흘린 물건 없나 놓고 간 가방이나 옷은 없나 뒷정리하고 오면 술 안 먹고도 늘 꼴찌로 온다.


나는 남편이 술을 배우겠다고 하는 말에, 어김없이 웃음이 터진다. 남편이 “나 이제부터 와인을 좀 배워볼까 해”라고 말하면 남편이 요새 근심걱정이 없다는 뜻이다. 그는 실제로 마트에서 알콜 함량이 0%인 무알콜 맥주를 6개 사서 냉장고에 넣어놓기도 했다. 그리고 그 맥주는 딱 두 모금 마셨다. 나머지 5개는 한 달 후 고스란히 남의 냉장고로 옮겨 갔다. 남편은 그래도 본인보다는 술을 잘 마시는 나에게 “술에 취하면 기분이 좋냐”고 묻기도 하고, “사람들이 술을 마시는 데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하고 자문자답하기도 한다. 그럼 나는 이렇게 맞장구치고 저렇게 대꾸하고 하다가, “그냥 콜라나 계속 마셔.”라고 대화를 끝맺는다. 콜라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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