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맨이 되어버린 그의 편식일기
동생이랑은 두 살 차이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편식이 심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나물을 먹으며 사회화된 나와 달리, 동생은 삼십 몇 년의 인생동안 아주 일관성 있게 편식해왔다. 주식은 감자 두부 고기 소시지 계란. 미역국에서는 미역을 잘 먹지 않고 콩나물국에서는 콩나물을 내켜하지 않으며 일식당에 가면 날 생선을 싫어한다. 성격도 대쪽 같다. 그 누가 아무리 맛있다고 우겨도 제가 내키지 않으면 절대 먹지 않는 편식계의 독립투사다.
그는 먹는 것보다 먹지 않는 것이 더 많은데, 편식하는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좋아하는 건 아주 좋아한다.
동생이 오랫동안 사랑한 아이템은 H사의 진한 초코 드링크였다. 한 모금 들이키는 즉시 몸에 설탕이 주입된다는 느낌이 드는 이 초코 우유는 한동안 그의 냉장고 선반 단골손님이었다. 누구는 맥주를, 누구는 탄산수를 쟁이는 자리에 초코드링크가 오와 열을 맞춰 지냈다, 아직도 초코 우유를 먹냐고 자주 타박했지만 그 맛은 거부하기 어려웠다. 핸드폰 급속 충전처럼 그 달달함에 당 수치와 행복이 급속 충전됐다. 둘이 앉아 초코 우유를 쪽쪽 빨고 있으면 그대로 행복해졌다.
우리는 사이가 좋은 축이었다. 대학생과 재수생으로 같이 살 때도 나름 의가 좋았다. 대신 동생은 나를 자주 한심해했다. “다른 사람들이 집에서 이러고 사는 거 아냐”, “다른 사람한테도 이렇게 하는 거 아니지” “누가 내 매형이 될진 몰라도 내가 엄청 잘 해줄 거다. 불쌍해서.” 다른 사람이 나를 그렇게 타박했으면 소심한 나는 분명 기분이 나빴을 텐데, 동생이 얘기하면 별로 마음이 상한 적이 없다.
그는 누나의 생태를 자세히 관찰한 덕에 이성에 대한 환상이 별로 없는 성인 남자가 되었다. 남중 남고를 나온 사람 치고는 이성에 대해 상당히 현실 감각이 있다고 칭찬해주면, 누구랑 같이 살아서 그렇다며 으쓱해했다.
동생과 같이 사는 동안 그는 재수생에서 대학생이 되었고, 군필자가 되었고, 복학생이 되었다. 나는 대학생이었다가, 취준생을 거쳐, 사회 초년병이 되었다. 모의고사 성적이 안나오면 원룸 옥상에서 샌드백을 치고 오던 재수생은 당당히 취업에 성공해 엄마아빠의 자랑거리가 됐다. 나에게 집이 더럽네 어쩌네 하며 잔소리를 그렇게 하더니, 자기도 혼자 살 때는 화장실 청소도 안하고 살았다. 그의 자취방에 들렀다가 아기 엉덩이를 닦아주려고 화장실 문을 열었는데, 애를 어디서 씻겨야 될지 난감해 조용히 다시 안고 나갔다.
그리고 그도 결혼하고 애 아빠가 되었다. 어느 날 동생네 집 냉장고를 열었더니 초코 우유는 한 개도 없었다. 대신 코스트코표 루이보스 차를 끓여 식힌 물이 들어 있었다. 아내가 임신했을 때 루이보스차를 마시던 게 습관이 되었단다.
그는 여전히 편식한다. 미역국의 미역은 아빠보다 조카가 더 잘 먹는다. 그래도 초코 드링크 애호가였던 동생은 코로나 시대에도 매일 수영을 다니며 단백질 보충제도 챙겨먹는 건강남으로 변신했다. 동생이 놀러오면 제법 단단한 허벅지 근육이랑 복근을 쿡쿡 찔러보며 “오~단단한데!” 하고 감탄사를 날려준다.
나의 어처구니없는 실수들을 이야기하면 “아하하하, 그럼 그렇지. 우리 누나네.” 박장대소하며 세상 누구보다 즐거워하는 사람. 엄마 대신 쓴소리 잔소리를 하면 팔짱을 끼고 앉아 턱을 쭉 빼면서 으흠 하고 생각하는 척을 하는 사람. 그에게는 나를 설명할 필요가 없어 언제나 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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