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니에 매우 진심인 1948년생의 최애 아침 메뉴
시아버지는 대식가다. 1948년생이라 그런 거라고, 시어머니는 주장한다. 갓난쟁이가 태어나 제일 잘 먹어야 할 때 전쟁이 났으니, 배가 곯아 식탐이 생겼단 얘기다.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지는 모른다. 어쨌든 시아버지는 먹는 걸 아주 좋아하고, 허기진 걸 제일 싫어하신다. 시아버지는 ‘아이들이 배고픈 걸 못 참지, 어른들은 배가 좀 고파도 화는 내지 않는다’는 나의 편협한 생각을 바꿔주셨다. 나는 마감이 있는 일을 해서, 마감 시간이 되면 심장이 조여 오는 게 익숙하다. 하지만 밥 때가 지났는데 시아버지 밥을 들고 막히는 길 위에 섰을 때보다 심장이 쪼그라드는 때는 없다.
시아버지는 아침은 8시, 점심은 12시, 저녁은 6시 경에 규칙적으로 드신다. 시아버지는 삼시세끼를 열심히 차리는 아내를 둔 복을 타고 나신 덕에 이상적인 생활을 큰 무리 없이 이어오셨다.
그 생활은 마침내 70년 만에 난관에 봉착했다. 시아버지는 해외에 나간 아들네 집에 왔는데, 이 집 며느리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나는 가끔 새벽 5시나 6시에 시어머니가 쌀 씻는 소리, 그릇을 정리하는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깨기도 했지만, 도저히 몸을 일으킬 수는 없었다.
가끔 내가 아침을 준비하게 될 때는 밥 되는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빵을 내놨다. 코스트코의 통밀빵이나 집 앞 슈퍼마켓의 바게트, 식빵을 돌아가면서 올렸고, 양상추와 토마토를 씻어 샐러드를 만들고, 계란 프라이와 요거트를 곁들였다.
시아버지는 의외로 이 식단을 맘에 들어 하셨다. 커피 말고는 뜨거운 음식이 하나 없는 아메리칸 스타일이었는데, 식탁에 뭔가가 잔뜩 올라간 데다, 먹고 나면 나름 배가 부른 점을 높이 사신 것 같다. 미국에서 석 달간 아침 빵을 드신 시아버지는 귀국하고도 아침은 빵을 먹는 습관을 이어갔다.
시아버지는 집에 먹을 게 떨어지는 걸 불안해했다. 그건 시어머니도 마찬가지다. 두 분 눈에는 당장 내일 먹을 쌀이 없는데도 천하태평인 며느리가 이상했을 거다. (우리에겐 새벽배송과 햇반이 있다.) 쌀통에 쌀이 절반 정도 남으면 시어머니는 쌀을 얼른 시키라고 이야기했고, 김치가 떨어지기 전에 김치가 없다고 말했다. 빵이 아침 메뉴가 되면서 식빵도 그 보급품 목록에 올랐다. 식빵 한 봉지에는 보통 빵이 적으면 7조각 많으면 12조각 정도 들었다. 식빵 한 봉지로는 5인 식구가 사흘을 버틸 수 없다. 시아버지는 라면을 끓일 때를 제외하면 부엌에 머무는 경우가 극히 적었고, 냉장고에 뭐가 들었는지도 잘 모른다. 하지만 거의 유일하게 먹을 것과 관련된 미션을 내리는 게 식빵이었다. “애미야 식빵을 꼭 사와라”하고 시아버지가 미션을 내리면, 그 미션은 반드시 완수해 내야했다.
나는 평소 10을 생각하더라도 3이나 4로 표현하는 집에서 컸다. 배가 고프면 10은 15로, 화가 나거나 언짢으면 10은 12로 표현하는 시아버지가 무척 낯설었다. 강원도 사투리 특유의 억양과 큰 목소리 때문에 시아버지가 화내지 않을 때도 화난 것처럼 들려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래도 앞뒤가 다른 사람보단 솔직한 사람이 좋다. 처음엔 그 직설적인 표현이 부담스러웠지만 10년쯤 되자 그 투명함이 오히려 편해졌다. 시아버지는 싫으면 “싫다”고 했다. “너네가 알아서 해라”하고 나서 뒤에서 꽁 하는 일이 없었다. 이사든 여행이든 결정을 오래 망설이지 않았다. 어느 날 이사하자, 하면 그 다음날 계약서 도장을 찍으러 가면 되고, 통영 여행을 가겠다 하면 다른 데는 곁눈질할 필요 없이 그냥 통영을 가면 됐다.
나는 10년 전보다는 시아버지를 많이 이해하게 되었다. 가끔은 시아버지가 나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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