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우리 집에 왜 왔니

출발

by 다날

널 언제 처음 만났더라.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루에도 냉장고 문을 이유도 없이 두어 번은 열어본다. 배가 고파서도 아니고, 목이 말라서도 아니다. 특별히 무언가를 기대하거나 상상하지 않는다. 유독손이 닿지 않는 신선칸만 열어본다.

모순이다. 특별한 대우를 해 준 것에 대한 결과는 곰팡이었다. 최대한 신선하라고 극진한 자리에 모셔서였을까, 허리를 숙이고 자주 찾아뵙는 게 귀찮았다. 처음부터 귀하게 대접했으니 안심이라도 됐던 걸까.

유통기한. 분명 처음 만날 땐 꼼꼼히 살펴봤다. 언제 탄생했고 죽기 전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치밀하게 계산했다. 기간이 짧으면 금방 헤어질까 봐 조급했고, 길면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머리가 아팠다.

그렇게 하루이틀만 지나면 나는 고요했다. 내가 보고 싶으면 문을 열면 됐고, 생각나지 않으면 문을 열지 않으면 그만이었다.


그게 문제였다. 이런 마음으로 유통기한이 없는 존재들을 대하기 시작했다. 끝이 언제인지 알 수 없는 것과 끝이 없는 것은 달랐다. 보다 어렵고 잔인한 쪽은 전자였다. 끝이 없으면 막막하긴 해도 일말의 기대는 생겼다. 끝이 분명 존재하지만 언제인지 예상할 수 없으면 끝에 대해 둔해졌다.

어느 영화에서 그랬다.

이 지구상 어느 한 곳에 요만한 바늘 하나를 꽂고, 저 하늘 꼭대기에서 밀씨를 또 딱 하나 떨어뜨리는 거야. 그 밀씨가 나풀나풀 떨어져서 그 바늘 위에 꽂힐 확률. 바로 그 계산도 안 되는 기가 막힌 확률로 니들이 지금 이곳에서 만난 거다. 그걸, 인연이라고 부르는 거다.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 중)


인연이란 게 비단 사람과 사람 사이만을 연결하는 선일까.

택배를 뜯으면서도 어떻게 여기 내 앞까지 오게 됐을까 추적해 봤다. 그것도 인연일 테니 말이다. 내가 시켰어도 물건이 사라거나 택배 아저씨가 길을 잃었다면 오지 못했을 테다.

외동이 이유였을까. 유난히 우리 집엔 동물이 끊이질 않았다. 강아지, 고양이, 참새, 비둘기, 물고기……자기 발로 들어온 친구도 있었고, 어디가 다쳐 우리가 안고 들어 온 녀석도 있었다.

한 달부터 이십 년까지 유통기한도 다양했다. 벌써 떠난 친구도, 아직 떠날 친구도 있다.

다만, 인연의 끝은 파격적이라 기억에 남지만 그 시작은 흐릿해졌다. 그러나 유통기한을 훌쩍 넘기고 곰팡이까지 사라지면, 처음 만났을 때가 가장 그리워졌다. 희미하지만 그때가 생각날수록 행복했다.


요즘 그런 생각을 한다. 우리는 이별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존재일 수밖에 없다는. 하지만 이렇게 이별이란 것은 인연이란 시작에서 볼 때 반드시 과격하고 슬퍼야 하는 걸까. 어쩌면 우리의 유통기한이 아니라 제조일자가 신선해서 인연이 된 건 아닐까 하늘을 올려다본다.

다만, 동물이든 사물이든 우리 모두 언제 처음 만들어졌는지 우리 자신은 기억하지 못한다. 확실하진 않지만, 유통기한이 끝난 날로부터 우리가 처음 만났던 순간까지 걸어 보면 이유의 작은 부분은 알 수 있지 않을까.


우리 집에 왜 왔니?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