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청25
일주일에 한 번은 멍하니 하늘에게 질문한다.
뭐가 그렇게 할 말이 많아서 매일 같이 구름을 띄우는지, 그토록 적을 게 많은지.
모순적이게도 그 내용은 궁금하지 않다. 어차피 하다 하다 안 되면 어떻게 해서든 감정을 표현한다. 비를 내리든 번개를 던지든 하물며 입을 꾹 닫고 뜨겁게 시위를 해서든 말이다.
단지 바라보며 구름의 무게를 듣고 있으면 생각이 단순해진다. 저렇게 이것저것 다 말하고 편지도 쓰는 게 철없고 눈치 없는 존재처럼 보이다가도, 저러면 무언가 놓치지 않을 수 있기도 하려나 싶어진다.
동시에 무언가 분명 놓치고 있는 기분이 드는데, 그게 찜찜하다. 절대 놓치면 안 될 것 같은데, 구름처럼 보이진 않고, 그래서 그게 무엇인지도 모르겠는데, 찾아야지 하고 구름을 코로 삼킨다.
이상하게 봉사를 가는 날 하늘이 퍽 그렇다.
“여기서는 죄송합니다 금지! 이 작은 방에서 죄송할 일이 뭐가 있겠어요. 알겠지?”
센터에 있는 친구들에겐 과거를 묻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다. 어쩔 수 없이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열일곱 학교 밖 청소년을 꿈드림센터에서 만났다. 나는 국어 멘토의 자격으로 일주일에 두 시간씩 그와 함께 공부했다.
첫 수업부터 그는 첫 휴가를 나온 군인처럼 말투까지 깍듯했다. 보통 아이들과 다르게 소위 말하는 -다나까로 질문하고 대답했다. 의젓하단 생각이 들면서도 어딘가 스스로를 묶어둔 느낌이 들었다.
우리의 옷차림이 패딩에서 반팔로 변할 때까지 멘토링 시간에 그가 가장 많이 한 말은 죄송합니다, 였다. 간혹 지각을 하면 쭈뼛쭈뼛 문을 열고 들어오며 선생님 죄송합니다, 설명을 듣다 내가 묻는 질문에 바로 답을 하지 못하면 죄송합니다, 고개를 바짝 숙여 사과했다.
그 모습이 싫었다. 다르다는 걸 틀리다로 받아들여야 하는 모습이 거울을 보는 듯 낯설지 않았다. 통상적인 과정에서 벗어나 아프거나 힘들다 말하면, 그것은 곧 실패자의 변명이 되었다. 이곳에선 아이에게 학생이라 부르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다.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이유로.
'죄송합니다' 금지령 이후 수업 중에 그는 내 말을 처음으로 갑자기 끊었다.
“선생님 죄송한데 혹시 화장실 좀 다녀와도 되겠습니까?”
그는 세수를 했는지 얼굴에 물기가 묻어 있었다. 갈 곳 잃은 눈동자에서 조금 편안한 안색으로 돌아왔다. 죄송합니다 금지 규칙을 상기시키려는 찰나에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선생님, 제가 공황이 좀 있습니다. 많이 좋아지긴 했는데, 아직은 약을 먹습니다. 그래서… 꼭 정신과 의사가 되고 싶습니다. 도와주고 싶거든요.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잘 알아서요…”
문득 처음 그를 만났을 때가 나를 스쳤다. 목표 점수보단 꿈을 물었었다. 사실 시험 점수가 꿈인 세계에서 그게 그거 같아도, 그가 꿈꾸는 세상의 향이 궁금했었다.
그래서 의대가 목표라 했었구나, 아픈 걸 인정해야만 하고 싶은 일도 말할 수 있겠구나, 또 아파봤기에 어떻게 아픈지도 알겠구나, 싶었다. 잔인하지만 용기 있는 고백에 부끄러웠다.
“그동안 그래서 가끔 그랬구나, 몰랐네… 미안해요. 내가 질문을 너무 몰아쳐서 한 것 같네.”
그가 처음으로 싱그럽게 웃었다.
“선생님, 여기 죄송해요 금지방이라고 하셨잖아요.”
내가 만든 룰을 내가 깨버렸다. 자기의 아픔을 꺼내기 위해 용기를 낸 아이에게 고맙다고 말하기는커녕 그 아이의 힘든 시간을 쉽게 생각한 듯하여 미안했다. 동시에 그의 눈동자에 비친 내가 보였다. 이상하게 그의 환한 웃음에 나 또한 용기가 생기는 듯했다.
적어도 이 방에서는 힘든 건 힘들다고 말해도 된다고.
아프고 힘든 건 잘못이 아니라고. 학생은 배우는 사람이지 학교를 다녀야만 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저도 요즘 좀 힘들었는데.”
봉사가 끝나면 몸속의 구름들이 뭉친다. 무게는 무거워지는데, 부피는 작아진다. 서로 비비고 버티며 조금씩 응축된다. 그중에서도 격렬한 쪽은 순간적으로 통증이 온다. 그러나 이내 금방 평온해진다. 본래의 구름보다 더 울퉁불퉁한 모양이라 무슨 말인진 더욱이 모르겠지만, 놓치면 안 되는 게 존재한다는 건 느껴진다. 나무가 흔들리는 모습이 들리면서 바람의 색이 보이는데, 묘하게 상쾌해진다.
돌아오며, 지하철, 계단, 골목, 건널목, 그리고 집 앞 공원을 지나며 조금씩 입으로 구름을 뱉는다. 하늘도 이런 마음인 걸까. 알던 모르던 놓치면 안 될 것 같은 것을 누구 하나는 매일 머금고 있다고 말하는 듯하게.
봉사에서 돌아오는 날 중 하루는 꼭 고지서가 온다. 그때마다 매번 또 새로운 구름을 누군가 던지고 간 느낌이 든다. 이렇다고 생각한 첫날 비경쟁과 무경쟁은 가능할까란 고민이 떠올랐다. 고지서와 대화하면서.
난 기다린 적 한 번 없는데
왜 기를 쓰고 거기 버티며 서 있니
자 얼마면 갈래
어차피 넌 또 올 거지
그래
네가 온 걸 보면
아슬아슬 위태롭게 살아도
내가 제대로 살고는 있나 보다
<우편함 고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