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길을 중간쯤 지나고 있을 때, 앞에 구급차가 보였다. 천천히 중앙선을 넘어 지나가면서 보니, 고라니 한 마리가 차도를 지나다가 로드킬을 당했는지 찌그러진 차 한 대와 고라니 한 마리가 피를 흘리며 죽어가고 있었다. 고라니는 이제 마지막 숨을 내쉬며 생명을 다하고 있었는지, 눈에 빛이 점점 옅어지고 있었다. 그 짧은 순간, 너무 생생하게 생명을 잃어가는 고라니의 눈을 바라보니, 순간 싸늘한 기운이 몸 전체를 감싸 안았다. 동시에 문득 아빠에게 질문을 던졌다.
“아빠, 만약 아빠가 죽으면 어떻게 하는 게 좋아? 아빠는 가족이 묻혀 있는 묘에 같이 묻히고 싶나?”
나 스스로가 왜 이런 질문을 했는지 잘 모르겠다. 아마도 한 생명이 꺼져가는 눈동자를 너무 선명하게 보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나를 감싸고 있던 의미 모를 두려움을 떨쳐내고자 가볍게 질문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아빠의 죽음에 대해 물어봤다.
“아빠의 묘를 해주면 네가 묘를 관리하고, 풀을 깎고, 보살필 자신이 있더냐?”
아빠는 매년 명절과 할머니, 할아버지 기일이 되면 항상 하시던 일이었다. 누구보다 이 집안의 장남인 내가 언젠가 그 일을 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 일이었다.
“솔직히 자신도 없고 아빠처럼 그렇게 잘 관리하지 못할 것 같긴 해”
아빠가 싫어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답한 말에 의외로 아빠는 호탕하게 웃어 보이셨다.
“그래 그래. 나도 네가 나처럼 묘를 관리하고 착실히 제사를 지내며 살 것 같지는 않다. 그러니 만약 아빠가 죽거든 태워서 강에다 뿌려라. 평생을 이 시골에서 살았으니, 죽어서라도 이곳저곳을 둘러보는 게 좋을 것 같다.”
아빠에게 대답하지 못했다. 아빠가 진심으로 나에게 말씀하신 것인지, 아니면 내가 나중에 부담을 느낄까 봐 그렇게 대답해 주신 것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뭐라고 답해야 좋을까 고민도 했지만, 더 큰 이유는 조금 늦게 도착한 탓에 등교 시간이 정말 얼마 남지 않은 상태에서 도착했기 때문이었다.
“태워다 주셔서 고마워요. 지각할 것 같다, 이제 갈게! 아, 그리고 정비소 오늘 꼭 가봐 아까 보니까 브레이크가 계속 말썽이더라! 이따 집에서 봐 아빠.”
서둘러 차에서 내리며 아빠에게 얘기했다. 아빠는 얼른 가라고 손짓을 하셨고, 나는 곧장 학교 정문을 향해 뛰어갔다
아슬아슬하게 학교 정문을 지나 담임 선생님께서 오시기 전에 내 책상에 앉을 수 있었다.
내가 다니는 고등학교는 이 조그마한 시골 동네에서 유일한 인문계 남자 고등학교로,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이 고등학교로 진학할 수밖에 없었다. 한 마디로, 대학에 진학하고 싶은 시골 동네의 남자아이들은 모두 이 학교로 온다는 말이었다. 그래서 인구가 그렇게 많지 않은 이 시골 동네에서 무려 6개 반이나 있는 규모가 있는 고등학교이다. 당장 내 초등학교를 떠올려보면, 6년 내내 단일 반으로 운영되었을 뿐만 아니라 한 학년의 인원이 14명 남짓이었고, 초등학교 전교생이 80명이 조금 넘는 굉장히 작은 초등학교를 다녔었다. 중, 고등학교를 올라와서 반이 나뉜다는 말을 처음 전해 들었을 때, 분반이라는 개념이 굉장히 새롭고 낯설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 영향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친구가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다. 이미 중학교가 시작될 때 큰 초등학교에서 넘어온 친한 친구들의 무리가 형성되어 있었고, 그런 파벌 싸움과 영역 싸움에서 나는 두각을 나타내는 편이 아니었다. 그래도 친구가 없지는 않았는데, 초등학교 때부터 죽마고우였던 김형오와 중학교에 올라와 친해진 신종현이라는 친구와 같이 다니곤 했다.
“야, 어제 내가 보라고 보내준 영상 봤냐? 그거 태백산 근처래!”
허겁지겁 들어오는 나를 보고 종현이가 흥분한 듯이 말을 걸어왔다.
“야 새벽 1시가 넘어서 보내서는 영상 길이가 50분짜리인 영상을 어떡해 보냐? 그리고 뭐? 강령술사를 찾아서? 뭐냐 그 말도 안 되는 사이비 비과학적 영상은 그냥 쳐다도 안 보고 누웠다.”
종현이는 평소 비과학적 현상, 오컬트, 비현실적 괴현상과 같은 주제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종종 자기가 흥미롭게 보거나, 알려 주고 싶어 하는 영상을 공유해 주곤 했고, 어제도 그런 날 중 하나였다.
“아니 넌 내가 그렇게 열심히 학교에서만 배우는 틀에 박힌 공부에서 벗어나 사회에서 숨기는 현실에 대해 밝혀야 한다고 매일 같이 설명해 주는데도 아직 이 정도 영상도 못 보다니 넌 교육이 다시 필요하다”
종현이는 급하게 가방을 뒤적거리며 자신이 지금까지 정리해 온 노트를 꺼내 들려고 했다.
“그만 그만 너야말로 공부 좀 그렇게 열심히 해봐라 내가 보기엔 넌 그 머리와 열정으로 공부했으면 아마 전교 1등은 우습게 했을 것 같다.”
옆에서 지켜보던 형오가 지겹다는 듯 손사래를 치며 종현이가 꺼내든 노트를 도로 가방 속에 넣었다.
“야 서진영 넌 오늘 왜 버스 안 탔어? 뭐 타고 학교에 온 거야?”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였던 형오는 우리 동네 맞은편 빌라에 살고 있어 같은 등교 버스를 타고 학교에 오지만 오늘처럼 서로의 부모님이 어쩌다 차를 태워다 주시는 일이 생기면 연락해 같이 타고 오는 암묵적인 룰이 있었다.
“아 미안하다. 오늘 내가 좀 늦게 일어나서 아빠 차 타고 왔어, 정신없이 준비하고 나오느라 너한테 연락한다는 걸 깜빡했다 야”
평소 형오의 부모님 차를 타고 등교하는 경우가 훨씬 많았기 때문에 연락하지 않고 혼자 타고 온 게 눈치가 보였다.
“일찍 좀 일어나라 너 때문에 오늘 버스에서 혼자서 잠자다가 못 내릴 뻔했잖아”
형오는 가벼운 농담으로 분위기를 풀었고 나도 따라서 멋쩍게 웃음을 지었다. 종현이는 아직 할 말이 많은 듯 보였지만 이내 담임 선생님께서 들어와 아쉽게도 자기 자리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