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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픽로그 K Nov 25. 2021

인도네시아 토바 호수 전설

끄적끄적 외국 설화

어디 유명한 관광지에 가면 표지판에 관광지가 생기게 된 유래 하면서 적힌 이야기를 자주 보았을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전설이라고 한다. 전설은 이야기의 증거가 되는 증거물과 함께 오랜 세월 전해진 이야기다. 그 증거물을 보면서 사람들은 전설을 떠올리고 전승한다. 그래서 증거물은 매우 중요하다. 증거물은 예로부터 전승 지역 사람들의 삶과 가까운 자연물인 경우가 많다.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여기 왜 이런 돌/바위/산/나무가 있지?’라는 궁금증이 이야기의 시작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토바호수는 인도네시아에 있는 가장 큰 호수이다.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크고 세계에서 가장 깊은 호수 중 하나로, 거대한 호수 가운데 싱가포르 크기만한 섬이 있다. 과학적으로는 옛날에 활화산이었던 곳이 호수로 변했으리라 추측하는데, 지역 사람들에게 전해지는 전설은 전혀 다르다. 자료집에 두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두 화자 모두 이야기에 강한 믿음을 보였다. 일 년에 한 번씩 기도를 하지 않으면 큰 사고가 난다고 믿기도 했다. 전설의 강한 영향력이 남아 있음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다. 우리나라는 전설에 대한 믿음이 줄고 이제는 관광 요소로만 남아 있는 상황이라서 설화를 공부하는 입장에서 이 모습이 참 부러웠다.      


호수 가운데는 섬이 있어요. 매년 무조건 가서 기도해야 해요.
안 그러면 지진 나고 사고 나서 사람이 죽어요. 지난달 호수에 비행기가 추락해서 사람이 많이 죽었는데 그것도 행사 안해서 그렇다고 믿는 거예요.     


옛날 어느 농부가 땅을 파는데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하루는 땅에서 갑자기 인어가 나와 말했다. “나는 하늘에서 왔어. 나랑 결혼하면 너를 도와줄게. 대신 결혼한 후로 내가 잘못한 일이 있더라도 나를 물고기 여자라고 부르면 안 돼.” 농부는 부자가 되고 싶어서 그러겠다 약속했다. 둘은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살았다

어느 날 엄마가 아이에게 농사짓는 아빠에게 점심을 가져다주라며 도시락을 줬다. 아이는 게으르고 장난만 좋아하는 아이였는데, 가는 길에 배가 고파 도시락을 다 먹어버렸다. 아빠가 이 사실을 알고 화가 나서 “넌 물고기 아이라서 그런 거야!”라고 했다. 그러자 갑자기 아내와 아이가 사라지고 바닥에서 물이 솟아나 큰 호수가 되었다. 혹은 아이와 엄마의 눈물이 모여 호수가 되었다고도 한다.     

이야기 초반 땅에서 튀어나온 인어는 한국의 우렁각시를 떠오르게 한다. 하지만 이야기는 전혀 다르게 진행된다. 인어의 조건은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줄테니 내 과거를 언급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남자는 가난이 지겨웠고 그래서 인어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부자가 되니 마음이 달라진 걸까, 남자는 아이의 사소한 실수에 금기를 어기고 만다. 아이가 배고파서 도시락을 먹은 행동은 물론 화가 난다. 그렇지만 그런 행동은 물고기의 아이어서가 아니라 모든 아이들이 보이는 행동이다. 남자는 그냥 짜증이 났고 그걸 풀 화풀이 대상이 필요했던 거다. 


토바호수의 모습, 호수의 크기는 제주도만하고 섬은 서울 크기와 비슷하다고 한다. 어마어마한 크기다! 출처 : <제주도에 서울이 빠진 형국 또바와 사모시르>, 한국일보, 2018


결혼생활에서 절대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의 표본이 아닐까 싶다. 결혼 전 과거 이야기, 본인에게는 상처가 될 수도 있는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남편이 벌을 받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주위를 보면 부부사이의 문제를 아이에게 화풀이하는 경우가 많다. "니 아빠가/엄마가 그래서 니가 그렇지." 같은 말들. 배우자와 아이 모두에게 상처가 될 수 밖에 없는 말이다. 얼마가 상처가 깊었던지 흘렸던 눈물이 세계에서 가장 깊은 호수를 이뤘다고 하니. 관계를 지속하면서 자신이 화가 난다고 상대의 상처를 후벼 파면 당연히 관계는 파국에 이를 뿐이다. 



사진 출처 : <제주도에 서울이 빠진 형국 또바와 사모시르>, 한국일보, 2018

원문 출처 : 다문화시대 이주민 구술설화 DB, <물고기 아내와 토바호수1>, <물고기 아내와 토바호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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