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 외국 설화
각 나라에 유명한 바보들이 있다. 보통 바보를 부르는 고유명사가 있는데 필리핀에서는 그 이름이 후안이다. 독일에서는 바보의 이름으로 한스가, 러시아에서는 이반이 많이 등장한다. (우리나라는 다른 이름 없이 그냥 바보라고 부르는 듯) 후안, 한스, 이반은 각 나라에서 우리나라 철수처럼 흔한 이름이다. 그래서인지 옛날이야기에도 많이 등장하는데 바보일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지만 바보인 경우가 높은 그런 이름.
필리핀에는 후안이라는 이름이 되게 많아요. 후안 왕자도 있구.
후안 이미지가 주인공이긴 한데 좀 착하고 남들이 봤을 때 모자라 보이는 그런? 대단한 이미지 그런 건 아니에요.
이야기가 시리즈로 전해지는데 필리핀에서 드라마도 만들어졌을 정도로 엄청 유명한 이야기이다. 검색해보면 나무위키에도 내용이 거의 없는데 찐 자국민들이 즐기는 콘텐츠라서 외국에 알려지지는 않는 듯하다. 이야기 보면서 우리나라 하이킥 시리즈가 생각나기도 했는데, 실제로 내용 보면 거의 시트콤 수준이다. 현실에서는 속 터질 것 같은데 얼탱없어서 웃긴 그런 느낌.
1편
옛날에 어느 한 마을에 후안이라는 아이가 엄마와 살고 있었다. 아빠는 돌아가셔서 엄마 혼자 생계를 꾸리느라 고생이 많았다. 후안은 엄마를 도와주지 않고 먹고 자고 놀기만 했다. 너무 게을러서 마을 사람들이 ‘게으른 후안’이라고 불렀다.
2편
하루는 후안이 너무 게을러서 구아바 나무 밑에서 익은 구아바가 떨어지기를 기다리는데 그 모습을 보고 한 여자아이가 다가와 적당히 좀 하라며 구아바 열매를 따줬다. 여자아이의 이름은 마리아였는데 후안이 마리의 모습에 반했다.
3편
엄마는 게으른 후안에게 자꾸 일을 시키려고 했다. 그래서 하루는 떡을 주면서 떡을 시장에 팔라고 했다. 후안이 시장에 가는 길에 너무 더워서 나무 밑에 앉아 있다가 배고파서 떡을 다 먹어버렸다. 먹는 중에 주변 개구리들도 배고플 것 같아 떡을 나눠줬다. 그리고는 집에 떡을 판 돈 대신에 개구리를 데려갔다. 엄마는 화가 나서 후안에게 물건을 마구 던졌다.
4편
엄마는 포기하지 않고 후안에게 계속 일을 시켰다. 이번에는 시장에 가서 게를 사오라고 했다. 시장에 다녀오는 길에 마리아 집 근처를 지나게 됐는데, 후안이 마리아를 보고 싶은 마음에 게를 풀어서 “나는 마리아 집에 다녀올 테니까 먼저 우리 집에 가 있어!”라며 집 위치를 설명해줬다.
5편
엄마가 계속 화나고 스트레스를 받아서 심장병이 생기고 말았다. 후안은 엄마가 아픈 모습을 보고 고민하면서 똑바로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이후로 후안은 조금씩 노력해서 엄마가 시키는 일을 점점 잘하게 됐다. 어느 날은 마리아 엄마가 진짜 후안이 변했는지 확인하려 후안을 찾아왔다. 후안에게 쌀을 사오라고 시켰는데 후안이 쌀을 잘 사왔다. 사람들은 바뀐 후안을 ‘옳은 후안’이라고 불렀다.
중간에 이야기가 엄청 많은데 자료집에는 여기까지 나와 있다. 옛이야기는 여기까지인데 이후 드라마로 나오면서 후안과 마리아가 결혼한다고 한다. (마리아도 후안 때문에 속 여러 번 터졌을 것 같은 느낌, 하이킥 준하-해미 커플 생각난다) 마지막 이야기는 우리나라 청개구리 설화와도 비슷한데 필리핀은 조금 더 가볍고 유쾌한 게 특징이다. 개인적으로 우리나라처럼 엄마가 죽는 비극적 결말이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마지막에 구연자가 왜 '부지런한 후안'이 아니라 '옳은 후안'인지 그 이유도 설명했다. 필리핀어로 타마드(tamad)가 게으르다는 뜻인데 여기서 한 글자를 빼서 타마(tama)가 되면 옳다라는 뜻이라 한다. 마지막까지도 말장난을 포기하지 않는 모습이 후안과 딱 어울렸다.
원문 출처 : 다문화시대 이주민 구술설화 DB, 마리사콘데(오혜진) 구연, 게으른 후안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