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 외국 설화
오늘은 필리핀에 전해지는 흥미로운 과일 전설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망고, 파인애플, 두리안에 관한 이야기이다. 필리핀은 과일이 정말 많은 나라다. 다양한 과일만큼 과일이 생기게 된 유래담도 많다. 과일과 주인공은 다르지만 유래담 구조는 대부분 비슷하다. 주인공이 등장하고, 그 주인공이 사라지면 과일이 남는 구조다. 보통 과일의 생김새, 맛과 주인공의 성격이 비슷하다. 이야기를 해준 필리핀 화자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필리핀의 전설들은 그냥 사라지는 사람 많아요. 두리안, 파인애플 전설도 다 그냥 사람이 없어지는 거예요. 그 과일은 그 사람의 성격을 대표하는 것 같아요.
사람이 죽어서 감자나 연근 같은 식물이 되는 걸 사체화생화소라고 하는데 이런 구황작물이 많은 나라에서는 흔히 등장하는 화소다. 특시 필리핀, 인도네시아 같은 동남아 쪽에 이런 이야기기가 많은 것 같다. (내가 본 이야기는 모두 동남아 쪽이었음) 한국은 사람이 죽어서 식용 식물이 되는 이야기가 거의 없다. 왜 둘은 차이가 있을지 그것도 흥미로운 연구 거리가 될 것 같다. 아마 문화가 달라서가 아닐까 막연하게 생각해보는데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오늘 소개할 과일 전설 이야기는 엄밀하게 말해 사체화생화소는 아니다. (주인공이 죽고 그 몸에서 과일이 자라는 건 아니라서) 하지만 주인공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생겨난 과일이라는 점에서 약간의 연관성은 있다. 과일과 주인공은 직관적으로 연결된다. 이야기가 만들어질 때 과일의 생김새가 많은 영향을 준 것 같다.
옛날 엄마와 마나라는 아이가 살았다. 마나는 착해서 엄마와 다른 사람을 잘 도와줬다. 마나가 너무 착하자 요정이 찾아와 마나가 착한 일을 하면 가슴에 하트 모양의 불빛이 나오도록 만들어줬다. 어느 날 마을에 벌레가 생겨 나무가 다 죽어갔다. 마나는 벌레들이 불빛을 보고 다라가는 것을 보고, 마을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심장의 불빛으로 벌레를 이끌고서 마을을 떠났다. 얼마 후 그녀가 살던 집 옆에 나무가 생겼는데, 심장 모양의 과일이 열렸다. 과일은 매우 달았다. 사람들은 그 과일이 마나의 심장이라고 생각했고, 이후로 과일은 망가 또는 망고라 불리게 됐다.
책에는 망고 이야기가 두 편 실려 있는데, 주인공 이름만 다르고 내용은 비슷하다. 포인트는 착한 아이가 마을 사람들을 위해 해충을 데리고 마을을 떠난 행동이다. 그럼 빛나는 심장을 갖게 해 준 요정의 행동은 선물인가? 아닌가? 어렵다. 솔직히 주변에 이런 사람 있으면 용기 있다, 대단하다 박수칠 것 같은데 내 가족이면 요정이 너무 미울 듯.
옛날 엄마가 나이 들어 낳은 피나라는 아이가 있었다.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두면서 편하게 키웠더니 피나는 말을 안 듣는 아이가 되었다. 하루는 엄마가 아파서 밥을 하라고 했는데,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서 하나하나 물어보았다. 밥을 할 때마다 일일이 물어보면서 움직이니까 엄마가 나중에는 화가 나서, “네 눈이 백만 개 천만 개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후 아이는 보이지 않았고 대신 눈이 많이 달린 과일이 생겨났다. 그 과일을 피나라고 불렀는데, 그것이 곧 파인애플이다.
파인애플 이야기도 소녀가 주인공이다. 망고는 착한 소녀가 나왔는데 여기는 게으른 소녀가 등장한다. 우리나라 옛이야기 중 <소가 된 게으름뱅이>를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다. 대신에 우리나라 설화는 ‘게으르게 살면 소처럼 매일 일만 해야 한다!’면서 더 교훈을 주려는 느낌이고 필리핀 설화는 게으른 딸을 둔 엄마의 마음이 더 잘 드러나는 것 같다.
두링이라는 이름을 가진 할머니가 산 밑에 홀로 살고 있었다. 남편과 자식이 있었는데 둘 다 죽었고, 그 이후로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않았다. 또 성격이 까다로워서 다른 사람들이 두링 할머니를 가까이 하지 않았다. 어느 날 마을에서 며칠 동안 이상한 냄새가 나서 사람들이 냄새가 어디서 나는지 찾아보았다. 두링 할머니 집에 갔는데 할머니는 없었고, 할머니 집 근처 나무에 뾰족뾰족하고 이상한 냄새가 나는 열매가 있었다. 열매가 벌어져 있어서 먹어봤는데 맛이 정말 좋았다. 마을 사람들은 이 열매를 나누어먹었고, 두링 할머니의 이름을 따서 과일을 ‘두리안’이라고 부르게 됐다.
두링 할머니 보면서 <나 홀로 집에 2> 비둘기 할아버지가 생각났다. 겉은 차갑지만 속은 따뜻한 사람. 겉바속촉의 의인화 댓츠 두링 할머니. 두리안 소개할 때 냄새는 지독하지만 맛은 정말 좋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사람으로 바꾸니 이런 이야기가 나와서 재밌다. 두링 할머니가 나쁜 짓을 하진 않았는데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아서 안 좋은 인식이 퍼졌다고 하니 딱 두리안과 잘 어울리는 인물같다.
원문 출처 : 다문화시대 이주민 구술설화 DB, <망고가 된 소녀의 불빛 심장>, <파인애플이 된 아이>, <두링 할머니와 과일 두리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