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하! 너무 오랜만이야ㅠㅠ 나 없는 동안 다들 잘 지냈어? 지지난주는 에픽레터 특별편으로, 지난주는 휴재 공지로 찾아왔지. 바쁜 시간이 슝슝 지나고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번 주가 2021년의 마지막 에픽레터 아니겠어? 그래서 어떤 이야기를 전할까 고민하다 오늘은 후회에 관한 이야기를 준비했어. 한 해를 마무리하며 올해 참 뿌듯하다! 생각하는 구독자도 있겠지만 아쉬움이 앞서는 구독자도 있을 거야. 어쩐지 후련함보다 아쉬움이 큰 구독자가 있다면 오늘의 이야기 주목해줘. 후회에 대해서 K와 함께 살펴보자.
오늘 살펴볼 이야기는 유고슬라비아 설화 <영원한 어둠의 세계>야. 유고슬라비아는 현재 이탈리아 옆 크로아티아, 세르비아 부근에 있던 공화국으로 지금은 사라지고 없어. 레터 제목은 <가볍게 읽는 한국신화>인데 지난번부터 왜 자꾸 외국 이야기를 소개하냐 궁금할 수 있는데, 그건.. 이야기가 너무 재밌어서야. 특히 이번에 소개할 이야기는 ‘후회’라는 감정을 살펴보기 아주 좋은 이야기거든. 한국 얘기 아니라고 창 닫고 그럴 거 아니지? 솔직히 이거 한국 얘기라고 내가 뻥 쳤어도 몰랐을 거잖아.. 먼저 이야기를 소개할 텐데, 아주 짧아서 전문을 소개할게.
이것은 세상 끝으로 자신의 군대를 이끌고 온 황제가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 영원한 어둠의 세계로 향하는 이야기이다. 그는 어떻게 되돌아갈지도 모른 채 자신이 이끄는 암소 무리만을 앞세우고 그저 앞으로 앞으로 향했다. 그들 모두가 영원한 어둠의 세계로 발을 내딛자 발밑에서 무언가 돌 같은 것이 밟혔다. 그때 어둠 속에서 어떤 말소리 같은 것이 들렸다.
“이곳에서 돌을 가져가면 후회하게 될 거요. 하지만 가져가지 않아도 후회하게 되죠!” 그러자 그중 누군가는 생각했다. “후회할 거라고 하는데 가져갈 필요 없지.” 그러자 다른 이도 생각했다. “난 한 개라도 가지고 갈 거야.”
그들은 저 어둠의 세계에서 돌아온 다음 자신이 가지고 나온 것이 보물이란 것을 깨달았다. 그러자 그것을 가지고 나오지 않은 사람들은 후회하기 시작했고 가져온 이들도 더 많이 가져오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오경근, 김지향, <세계민담전집(폴라드ㆍ유고) 10>, 황금가지, 2003.
참 짧은데 굵직한 메시지를 주는 이야기지. 이야기에서 중심을 이루는 요소로 “영원한 어둠의 세계와 그 속에서 들려온 누군가의 말소리, 그 말을 듣고 난 이후 사람들의 선택”을 꼽을 수 있는데, 이들은 모두 예측할 수 없다는 공통점이 있어. 어둡기 때문에 앞을 볼 수 없고, 그렇기에 말하는 이가 누구인지 알 수 없지. 무엇 하나 분명하지 않은 상황에서 돌을 가질지 말지 선택해야 하는데 이 선택에는 어떻게 해도 후회한다는 조건이 붙어. 결과는 지금 있는 어두운 세계를 벗어나야만 알 수 있지. 이거 참 나보고 어쩌라는 건지, 킹받지 않아? 그런데 이런 상황, 우리 인생과 참 비슷해. 우리도 항상 결과를 모른 채 무언가를 결정하고, 시간이 지나 결과가 나오면 자신의 선택을 돌아보며 후회하곤 하지. 결과를 예측할 수 없기에 언제나 후회가 생길 수 밖에 없어. 즉 후회란 인간이라면 어쩔 수없이 마주하는 자연스러운 감정인 거지.
이야기가 끝날 때 인물은 크게 두 부류으로 나뉘어. 돌을 하나도 갖지 않은 자와 돌을 조금 가진 자. 이야기를 보면 둘은 다른 선택을 했지만 같은 후회를 해. 이거 좀 신기하지 않아? 둘의 선택은 다른데 왜 후회는 같을까? 그건 돌을 적게 들고 온 사람이 자신이 돌을 들고 왔다는 사실은 생각하지 않고 적게 들고 왔다며 부정적인 생각만 하기 때문일 거야. 이건 우리 모습이기도 해.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하지 못할 것 같으면 안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하루하루 일을 미루곤 하지. 지나치게 완벽함을 추구하면서 높은 기대에 차지 못하는 스스로를 못마땅하게 여겨. 하지만 안 하는 것과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보는 건 달라. 보석이 하나도 없는 것과 하나라도 있는 게 다른 것처럼.
심리학에서는 후회를 ‘사후가정 사고’라고 불러. 우리가 후회할 때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해서 ‘만약 ~했다면, 혹은 만약 ~하지 않았다면 ~했을 텐데’라며 실제 결과와 반대되는 생각을 하잖아. 일이 지나간 후에(사후) 일어나지 않은 상황을 떠올리며(가정) 가상의 결과를 예측(사고)해보는 거지. 그런데 이때 과거 자신의 선택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몰입하면 ‘내가 그렇지 뭐, 제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어’라든가, ‘인생 너무 살기 힘들다’라는 부정적인 감정만 얻게 돼. 부정적 감정이 너무 커지면 심한 좌절감에 빠질 수도, 우울증이 올 수도 있지. 후회는 피할 수 없고, 그 결과 부정적 감정이 반복되고, 그럼 우리는 이렇게 우울하고 슬프게 살다가 죽어야 하는 걸까? 아니!! 다른 방법이 있어. 감정에 갇히지 말고 실패한 원인을 찾고, 다시 실패하지 않도록 현재의 내 삶을 수정하고, 그렇게 예측할 수 없는 미래를 대비해보는 거야. 과거의 선택에 관한 현재의 후회를 돌이켜 미래에 적용해보는 거지.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알지? 바로 그거야.
후회에는 내가 담겨있어. 내 걱정, 두려움, 소망, 나아가 결과를 인식하는 나의 성향 및 특성이 고스란히 담기거든. 지금 후회하고 있다면 그 후회가 어디서 비롯되는지 한번 돌아봤으면 좋겠어. 특정 사건에 대해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어느 지점을 바꾸고 싶었는지, 후회가 지나간 후에 나는 속상한 마음을 어떻게 다스렸는지 말이야. 후회라는 감정을 적절하게 처리하지 않으면 특정 사건과 상황에 대한 트라우마를 남길 수도 있다는 사실! 잊지 말아줘.
일 년을 마무리하는 우리의 모습이 이야기 속 병사들과 비슷할 거라 생각해. 누군가는 미래를 걱정하느라 보석이 하나도 없을지도, 누군가는 보석이 한 개만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어떤 모습이건 과거 자신의 선택에 갇히지 않았으면 좋겠어. 보석이 하나도 없다면 다음에는 하나라도 가지면 되고, 하나만 있다면 다음에는 조금 더 들면 되지. 어떤 결정이건 그게 앞을 예측할 수 없던 과거에 내린 최선의 선택이라는 사실은 변함없을 테니까! 2021년 구독자들 모두 고생 많았고, 다가올 2022년도 우리 조금만 기운 내보자. 새해 복 많이 받아��
참고자료 박시언, 「‘후회’에 대한 인간의 인지적 특징과 그 문학치료적 활용 방안 – 유고 민담 <영원한 어둠의 세계>를 중심으로」, 문학치료연구 59, 한국문학치료학회,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