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픽로그 K Apr 19. 2022

콘텐츠 리뷰 : 설화탐정 제주편  

고전 콘텐츠 뿌수기

고전문학, 특히 한국 설화 전공자면서 막상 고전 콘텐츠를 잘 모른다. 논문을 쓸 때는 주로 원문을 참고하다보니 창작물을 접할 일이 드물다. 고전을 활용한 콘텐츠가 쏟아지는 이런 시기에 전공자의 시선으로 콘텐츠를 살펴보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콘텐츠는 주렁주렁스튜디오에서 나온 <설화탐정_제주편>이다. 이걸 첫 콘텐츠로 선택한 이유는.. 거창한 이유는 없고 책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


텀블벅에 올라온 설화탐정 이미지. 안드로이드 전용이라고 하는데 나는 앱스토어에서 잘 다운 받아서 사용했다.


설화탐정은 주렁주렁스튜디오에서 제작하는 시리즈물이다. 처음이 영월, 그 다음이 제주이고, 이후로도 충주, 단양 지역 설화를 소재로 시리즈물이 제작되었다. 시리즈물 모두 텀블벅 펀딩을 진행했는데 영월은 "우리 땅 수호신, 한국 전통 환타지 도감", 제주는 "제주 신들의 설화가 AR 도감으로 탄생하다", 충주는 "재즈를 만난 신비의 설화 도감", 단양은 "숲속의 헌책방 속으로"라고 설명하고 있다. 지역 설화(신화, 전설, 민담)을 활용한다는 기본 컨셉을 두고 지역에 따라 추가로 다른 요소를 활용하는 것 같다. 



1. 중심 스토리 인물 소개 : 이름도둑, 설화탐정, 메델

제주편 리뷰에 앞서 시리즈를 관통하는 큰 스토리 중심 인물을 소개한다. 이름도둑, 설화탐정, 메델이다. 


주렁주렁스튜디오 홈페이지에 나온 이름도둑의 모습


이름도둑

이름도둑은 말 그대로 이름을 훔치는 도둑이다. 책에 나온 소개로는 이름도둑은 1887년 제주 출생으로 천성이 욕심이 많아 어려서부터 물건을 잘 훔쳤고, 욕을 많이 먹은 덕분인지 남달리 명이 길다고 한다. 이름, 명칭, 이야기 등 닥치는 대로 훔쳐 노란 봇짐에 넣고, 쌓여 무거워지면 명첩에 정리한다. 1910년 일본 정부에 우리 땅 고유 이름과 유래가 담긴 이야기를 헐값에 팔아버리고 잠적했고, 6.25전쟁 이후 월북하여 함경도 일대의 지명을 모두 말살하였다고 한다. 

설화탐정 제주편에서 목차 이후 처음 접하는 내용이 등장인물이고, 이름도둑은 맨 처음 소개되는 중요 인물이다. 위에 요약한 간단 인물 소개를 보면 알겠지만 이름도둑의 설명이 음 뭐랄까.. 참 근현대적이다. 19세기 출생, 일제 강점기의 일화, 한국전쟁 이후 행보까지. 1887년, 토지조사사업, 월북같은 내용이 뜻밖으로 자세해서 설정에 이유가 있는 걸까 궁금했다. (19세기 출생이라고 설정한 건 조선 후기 혼잡했던 사회상을 반영하고 싶었던걸까? 월북해서 함경도 지명을 말살한 이유는 뭘까? 혼자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쳤음)

뒤에서도 언급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런 설정이 전체적인 책의 컨셉과 따로 논다는 느낌이 들었다. 설화탐정은 핸드폰을 활용하여 캐릭터를 띄우는 AR 콘텐츠를 제공하는데, 이때 녹음된 성우 목소리나 캐릭터 분위기와 따로 논다고 할까? 캐릭터는 귀여운데 기본 설정이 너무 현실적이고 역사적 내용이 많이 반영되어 있다. 이건 이후에 또 언급할테니 내용이니 여기서는 간단하게만 짚고 넘어가기로.



설화탐정 단양편 표지 속 설화탐정 모습. 작은 아이가 설화탐정이다.

설화탐정

2020년 이름도둑에게 이름을 뺏긴 11세 소년. 이름을 뺏긴 후 점점 세상에서 자신이 잊혀진다는 걸 깨닫고 서울 '중경 흥신소'의 메델을 찾아간다. 메델은 소년을 설화탐정이라 부르며 이름도둑을 쫓으라는 지령을 내린다. 설화탐정은 이후 메델의 말대로 도둑맞은 지명과 설화를 되찾이 위해 전국을 누빈다.

설화탐정의 정체는 이야기가 더 진행되어야 밝혀질 것 같다. 메델이 설화탐정이라 불렀다 하니 뭔가 숨겨진 사연이 있을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그런데 이름도둑을 잡기에는 아이가 너무 귀염뽀짝하다. 심지어 11세..? 이름도둑을 쫓는 실질적인 중심인물인데 제주편에서는 그닥 활약이 없었다. 충주와 단양편에서는 어땠을지 궁금했음.


주렁주렁홈페이지 소개에 나온 메델의 모습

메델

이름도둑을 붙잡을 단서를 쥐고 있는 유일한 인물. 1800년대 야사에 기록이 남아있는, 백 년이 넘게 이름도둑을 쫓고 있는 인물이다. 서울에서 '중경 흥신소'를 운영하는데 이 흥신소는 영혼이나 이름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실마리를 주는 사설탐정 사무소라 한다.  

메델이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은하철도999에 메텔이 떠올랐음. 설정도 좀 비슷한 것 같다. 이름도둑을 쫓는 어린 탐정, 어린 탐정을 도와주는 신원 미상의 여인. 은하철도 999처럼 반전을 노린 설정인건가? 중경흥신소라는 명칭도 뭔가 궁금했다. 처음 봤을 때는 고려시대 '3경_동경(경주), 서경(평양), 남경(서울)'을 활용한 말인가? 싶었는데 그건 아니고 서울이 한반도 가운데라서 가운데 중자를 활용해서 중경이라는 말을 쓴 것 같다. 


(참고로 고려 3경을 떠올리는 스스로가 너무 고인물 같았음. 이런 고인물 모먼트는 설화탐정 로고를 볼 때도 있었는데, 설화탐정 로고를 보면 반치음(세모 모양) 아래 이응 비스무리한 게 붙어 있는 걸 볼 수 있다. 근데 저 이응은 실제로 입술소리 순음 밑에서만 쓰였다. 저 이응이 입술소리를 연하게 내라는 표시이기 때문에. 그래서 저 이응 붙은 걸 입술소리를 약하게 내는 음이라고 해서 순경음 비읍이라고 불렸음. 그러니까 훈민정음에서는 실제 저런 글자가 없는 셈이다. 혼자서 이거 생각하고 진짜 고전 고인물 모먼트군 싶어서 소름 돋으면서 웃겼음ㅋㅋㅋㅋㅋㅋㅋ)

설화탐정 로고! 디자인 참 예쁘다

 


2. 설화탐정 제주편 리뷰

이야기는 에필로그까지 여덟 부분으로 나뉜다. 각 부분의 목차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설문대할망이 탐라를 맨들언

하늘서 선녀가 나려와

바라서 용왕님 옵데강

탐라가 신으로 다랑다랑

탐라를 탐하러 완

탐라에 인물이 났수쾅

탐라의 요상한 자연이라


목차에는 모두 제주도 지역 방언을 사용했다. 목차 뿐 아니라 이름도둑과 설문대할망이 이야기를 나눌 때도 제주도 방언을 사용한다. 개인적으로 이런 모습이 좋았다. 잊혀져 가는 지역 방언을 살리는 효과도 있을 것 같고, 디테일한 부분까지 신경쓴 게 느껴졌음.


설화는 대부분 지명과 관련된 지역 전설이다. 어떤 지형이 왜 생기게 되었는지, 왜 이런 이름이 붙었는지를 설명하는 이야기들. 이런 이야기들이 모여 있는 건 주렁주렁스튜디오가 추구하는 방향과도 연관있어 보인다. 회사 홈페이지에 보면 "지역 곳곳에 숨겨진 설화 속 캐릭터를 찾아 떠나는 여행! 사라져가는 지역 순우리말의 땅 이름을 발굴하고, 개성 넘치는 향토 캐릭터를 개발"한다고 나와 있으니까. 

회사가 추구하는 방향이니 지역 전설이 많은 건 이해했는데, 편집자의 감각이 현대적인 건 조금 아쉬웠다. (편집자의 감각이 현대적이라는 말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 음 전달이 잘 될지 모르겠다.) 설화를 접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설화의 코드에 접속하는 일이다. 설화는 소설이나 영화와는 다른 자체적인 코드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옛날 옛적에~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에~"와 같은 말들이 코드에 해당한다. 해리포터가 9와 4분의 3 승강장을 지나면 온갖 말도 안되는 일이 눈 앞에 펼쳐지는 것처럼 "옛날 옛적에~"라는 말을 거치면 사슴이 말을 하고 선녀가 내려오는 일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설화를 전공할 때 이 코드에 익숙해지는 일이 중요하다. 코드에 적응하지 못하면 설화는 끔찍한 이야기가 되어 버린다. 한때 유행했던 '백설공주가 알고 보니?~~' 하는 식의 잔혹동화가 딱 해당된다. 설화 코드를 모르고 설화를 현실로 읽은 예이다. 얼마나 코드에 잘 접속해서 설화의 매력을 살려내는가, 이에 따라 맛있는 이야기가 되기도 하고 딱딱한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내가 처음 대학원에 입학해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이기도 하다.(설화의 코드 관련 자세한 내용이 궁금한 분께는 <스토리텔링 원론>이라는 책을 추천한다. 설화 기본 이론을 쉽고 재미있게 소개해서 내가 좋아하는 책이다)


<설화탐정>은 설화의 매력을 살린 콘텐츠는 아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재미없다거나 질낮은 콘텐츠라는 건 아니다. AR이나 캐릭터가 돋보여서 충분히 매력적이다. 일러스트에 포인트를 준 느낌이 확확 난다. 다만 설화 전공자의 입장에서는 아쉬웠다. 예를 들면 설화를 소개하면서 지금으로부터 380년 전, 350년 전과 같은 표현이 나오는데 이런 표현은 설화적 상상력을 제한한다. 구체적인 수치가 나오는 순간 상상력보다는 역사적 사실이 되기 쉬우니까. 아마 참고한 자료집에서 이런 표현이 있어 사용한 것 같은데 (지역 역사문화지에 특히 이런 표현이 많다) 조금 아쉽다. 

책에 소개된 설화는 제주특별자치도에서 정리한 제주문화원형-설화편 자료집을 활용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책을 읽고 이 자료집이 궁금해서 온라인 사이트 접속해봤는데 나에게도 익숙한 자료집이 많았다. 진성기, 허남춘, 현용준 선생님 책은 공부하면서 많이 접했던 책이다. 굳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 활용한 자료의 출처가 의심된다거나, 잘못된 자료를 활용했다는 뜻이 아니라는 걸 강조하기 위해서다. 전공자의 입장에서, 조금 더 설화의 매력을 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각색하면 좋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남는다는 뜻이다.


이렇게 설화 전공자의 눈에 아쉬운 점이 또 있었는데, <산호해녀> 이야기에 보면 마마(천연두)를 막아주는 신비의 꽃을 선물하는 신비로운 인물 '면진국할망'이 등장한다. 이 면진국할망은 사실 <삼승할망과 저승할망> 이야기에 등장하는 '멩진국 따님'과 동일 인물이다. 구전 자료다 보니 인물 이름이 통일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학계 정식 명칭은 '명진국'이고 이 뒤에 따님애기, 아기씨, 할망 등이 붙는다. 멩진국, 면진국은 모두 명진국의 다른 표현이다. 그리고 이 명진국따님애기가 아기를 점지해주는 제주도의 삼신할머니(삼승할망)이다. 책에는 '면진국할망'과 '멩진국 따님'이 다른 인물로 나오는데 이런 부분을 살렸다면 훨씬 재밌는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3. 총평 : ★☆

장점 : 일러스트가 굉장히 매력적이고 지역이나 신의 특징을 잘 살렸다. 책 마지막에 보니 일러스트가 4명이던데 많이 신경 쓴 티가 났다. AR도 실감났다. 지역 지도도 간단하게 실려 있어 여행을 하듯 즐기는 재미가 있었음.

단점 : 이야기 각색 감각이 현대적이라 설화의 매력을 살리지 못한 점이 다소 아쉽다. 이건 이름도둑 캐릭터 컨셉이 지나치게 현실적이라는 감상과 통한다. 이름과 이야기를 훔치는 도둑, 중경 흥신소, 11세 설화탐정 등 상상력을 발휘할 설정이 여럿 있는데 틈틈이 과하게 현실적인 내용이 끼어 있다. 이 부분이 가장 아쉬웠음.


*이미지 참고

텀블벅 <주렁주렁스튜디오> 페이지

주렁주렁스튜디오 홈페이지

매거진의 이전글 콘텐츠 리뷰 : 사망여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